봄_생명의 경영으로 만물을 소생시키다
그대는 산을 타는 게 아니라, 마음을 타는 것이다. 강인한 의지로 마음의 산을 넘어 자신과의 약속을 이뤄내는 것이다. 산 아래서 잠재울 수 없던 욕망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대의 산은 그대 안에 용솟음친다.
오늘도 누군가는 산을 오른다. 산에 오르는 것은 정상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며, 매 단계 높아지는 고도에 따라 풍광을 달리 보게 만든다. 그때는 사람이 보이고, 내가 보이고, 만물이 소생하고 약동하는 살아있는 생태계가 손에 잡힐 듯하다. 뭇 생명들은 눈 속에서도 눈을 뜨고 있었을 터. 얼음장의 결박을 풀고 약동하는 계절을 기다리고 있었을 터. 봄 산은 뭇풀과 나무들의 쑥덕거림 속에서 온다. 밤새 나무들은 몸을 키우고, 뿌리는 물을 찾아다닌다. 이 산 언저리에 피어나는 뭇 생명들에 양 도식 산꾼은 감회가 어린다.
산다는 건 돌고 돌아 제 아무리 힘겨운 날이라도 봄철 양광(陽光)처럼 눈을 녹여내며 다시 졸졸졸 흐르는 것이다. 흘러가는 게 산다는 것이리라. 계곡을 따라 트래킹 하며 그는 등로 변으로 펼쳐진 새싹들의 진군을 목도하고 있다. 저들은 어디에 숨어 있다가 쇠칼 같기도 하고, 곧추선 창날 같기도 한 연록의 잎을 피워내며 하늘을 찌르고 있는 것인지. 쇠창처럼 솟는 풀잎들, 깃대 같은 나무들, 병정 같이 도열한 숲들... 계절이 치장하는 등로 옆으로는 산이 우뚝 서서 마중한다.
나를 나로 보지 말고, 나의 진면으로 보라. 네가 지금 보는 것이 스스로 그러한 자연이다. 산은 이렇게 속삭이는 것만 같다. 미풍이 흔들리는 나무 이파리는 그것이 소생(疏生)의 의식을 치루는 것이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언 땅이 풀리고, 지난 가을의 낙엽을 헤치고 봄은 종달새의 노랫소리로 다가온다.
봄철, 왕성한 생명력으로 산을 키워내는 무릇, 자연의 한가운데에 그는 서있다. 부쩍 부쩍 크는 아이들처럼 산은 자라고 그는 감탄어린 탄성을 지른다. 그 앞으로 산군(山群)은 앞을 막아선다. 진군하듯, 멈추어 선듯, 그는 산이 호령하는 말의 뜻을 안다. 필기단마로 산군을 넘듯 저 녹음의 여름으로, 풍요로운 숲의 계절로 치달리며 가야하는 하리.
지금 그 앞에는 산이 버티고 서 있다. 뽑히지만 않는다면, 산도 식생도 다 제 뜻을 이루게 되리라. 불현듯 테니슨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
“틈이 난 벽에 핀 꽃 / 그 갈라진 틈에서 너를 뽑았다. / 여기, 뿌리째, 내 손에 들고 있다 / 작은 꽃 ㅡ 하지만 너는 무엇인지, / 뿌리째, 전부, 내가 이해할 수 있다면 / 신과 인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련만.( '천국으로 가는 시')”
시인은 삶속에서 신성(神性)을 얻고, 신의 품에 든 자신을 보았을지 모른다.
결국 산을 오르는 것은 자신을 찾는 것이다. 육신을 적시는 땀보다 더 큰 크기로 산꾼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다. 봄철 미풍은 산꾼의 몸에 깃든 혼령을 일으켜 세운다. 나를 깨움으로써 끝내 산이 되어라. 네가 산의 크기를 결정할 수는 없지만, 너의 크기는 결정할 수는 있을 테니까...
양씨는 계곡 옆으로 줄지어 도열하며 봄을 뿜어대는 초목들의 장관을 바라보고 있다. 생명 속에 산꾼이 있다. 이 산을 내려가면 넘치는 생명으로 삶을 적셔야 하리. 산꾼은 협곡을 지나 봄철 작렬하는 볕을 쪼이며 가슴에 산을 품는다. 봄철 산은 분분하다, 귀속말로 속삭인다, 격정을 노래한다. 나는 바람처럼 흔들린다.
전경일, <CEO 산에서 경영을 배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