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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CEO산에서 경영을 배우다

사계(四季)가 넘실대는 통찰의 山 - 여름

by 전경일 2009. 2. 2.

여름_저 산의 숲이 내 안에 새처럼 깃드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은 제각각 다르다. 태산을 올라서도 동산을 오른 이만 못한 사람이 있을 것이고, 동산을 올라서도 태산을 품는 자가 있을 것이다. 좁쌀 한 알로 천하를 살찌우는 자가 있을 것이고, 천 만 석 쌀로도 헐벗은 자가 있을 것이다.

소백산

 

여름 산은 풍요롭다. 풍요가 지나치면 속을 올곧이 들여다 볼 수 없는 법. 풍요 속의 허전함, 넘치는 숲 속에서의 허기처럼 진실에 가려진 게 인생일런지 모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웰빙을 외쳐댔던 세상은 이제 생존을 화두로 다시 끄집어내고, 쑥부쟁이 같던 말의 잔치는 여름 산의 숲처럼 한껏 자라 있다.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폭염을 뚫고 김 명화 산꾼은 소백산 등성이를 오른다.

 

 

이런 더위엔 되도록 폭염을 피해 숲길을 걸어야 한다. 볕을 피할 숲 길을 찾아 걷는다. 길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 길이 사람을 인도한다. 사람이 만든 길이 사람에 시달리며 사람을 인도해야만 하는 아이러니가 등로변에는 깔려있다.

 

 

내가 넘어야할 산은 마음속에 있다. 한여름 소백산을 오르며 그는 거두절미, 진산(眞山)을 이루는 자신을 만나고 싶다. 겉만 풍요로운 산이 아닌, 속으로 그득 찬 풍요의 산, 그런 산을 내면에 키우고 싶다. 나뭇잎 하나에 태산이 가려지는 우(愚)를 떨쳐버리고, 본디 생긴 그대로의 산을 맞이하고 싶다. 여름 산의 나무들은 싱싱하다. 온갖 생명을 먹여 살린다. 산은 그들을 키우지만, 산의 본질은 다른 데 있다. 메마른 산이거나, 바위투성이 산이거나 산은 산대로 하늘과 맞서 자신을 일으켜 세운다. 누구나 그런 산이 되고 싶다.

 

 

녹음은 우거서고, 숲은 새들을 받아주고, 산은 산꾼을 끌어안는다. 모퉁이를 돌아서자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소백산에는 송림 길이 펼쳐진다. 산을 형해(形骸)만 받아들이고자 했던 그에게 산은 ‘무슨 소리! 산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주문한다. 등로변의 나무들은 장승처럼 서서 나뭇가지, 풀잎 하나라도 다 모아서 ‘더불어 산!’이라고 외친다. 그래, 어느 것 하나 뺄 것 없이 더 하는 게 산이지, 빼야 할 것이, 내려놓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건 내 망령된 집착뿐이지...



나무들은 산에 들어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친다. 그런 나무를 보면 절로 다가가 끌어안고 싶어진다. 다들 자기 자리를 알고 뿌리 내리고 있구나, 다들 든든히 하늘을 떠받치고 있구나. 산이 그렇듯 이 산 언저리 어느 곳이나 다 자기 자리를 알고 살고 있구나, 그런데 산 아래 사는 삶은 왜 이리도 팍팍한가.



김씨는 산에 올라 자신의 본질과 대면한다. 한없이 겸손해 져야만 하는 시간... 그러함에도 자신을 넘어서지 못한다. 저 쑥부쟁이 같이 솟은 집착과 욕망! 그것에 가려 평원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생각은 산에 묻힌다. 다시 돌아가면 달라져야 하리. 그런데도 나는 나를 넘지 못하다니... 그는 여름 산의 숲을 넘어 자신의 진산을 넘는 광경을 상상해 본다. 



그래, 사람이 산이다. 그 산에 막혀 내가 가지 못하고, 내가 나를 알지 못한다. 부분으로 전체를 보지 못하고, 아우르지 못해 산을 모른다. 그는 천천히 산길을 내려선다. 이제 헤드 랜턴을 켜야 하리. 노을 지는 소백산에 저녁 새가 깃든다. 산이 사람이고, 산이 사람이다. 산끼리 서로 만나는 고즈녁한 시간이 주위를 감싼다.

전경일, <CEO 산에서 경영을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