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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BOOK] 목화씨 한알로 싹틔운 혁신과 성장

by 전경일 2009. 5. 29.
[BOOK] 목화씨 한알로 싹틔운 혁신과 성장

◇더 씨드(THE SEED)/전경일 지음/비즈니스맵 펴냄/288쪽/1만2000원

고려의 문신이었던 문익점은 1363년 공민왕의 명으로 원나라 조정에 사신으로 간다. 원의 지나친 내정 간섭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공민왕의 특사 자격이었다. 그러나 원나라 조정이 공민왕을 폐위하자 이에 반발하다 중국 남쪽 운남으로 유배를 가고 만다.

춥고 험한 지역인 운남에서 중국인들이 목화솜으로 옷을 만들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는 것을 본 문익점은 고려 백성들을 떠올리며 목화를 가져갈 방법을 고민한다. 1367년 유배가 풀리자 답답한 마음에 글을 쓰다 붓대의 속이 비어있음을 깨닫고 원나라의 감시를 피해 목화씨를 숨겨 고려로 들어왔다는 것이 역사의 기록이다.

문익점의 목화씨는 열개의 씨 중 한알이 기적적으로 꽃을 피우면서 이 땅에 뿌리를 내린다. 목화로 만든 면은 기존의 견직과 마직을 제치고 단번에 경쟁우위에 올라선다. 나중에는 세금을 쌀이 아닌 면포로 내면서 화폐의 기능까지 맡게 된다. 이후 조선 세종의 강력한 목면업 장려 정책에 힘입어 한반도 전역에서 재배되며 광물, 소금과 함께 조선의 3대 기간산업으로 자리잡는다.

책은 문익점이 목화씨를 갖고 온 후 200여년 후 일본에 목화씨가 전파되었다는 것에 주목한다. 당시 일본은 일부 방직기술자들이 국보급의 대접을 받았지만 목면업은 가내수공업 수준에 그치고 있었다. 이때 29살의 한 청년이 목화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면을 짜는 기계를 잇따라 만들어낸다. 그가 바로 도요타자동차의 창립자인 도요타 사키치다.

조선에서 건너간 목화씨와 면직기술은 일본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임진왜란 때는 조선 침략의 도구로 쓰였다. 우리가 목화를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한 것과 달리 일본은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종자개량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결국 조선의 목화는 재래종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일본의 `면업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

면직업을 기반으로 도요타자동직기주식회사를 세운 사키치는 죽기 전 아들 기이치로에게 앞으로 다가올 자동차 시대에 대비할 것을 주문한다. 1910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자동차 산업의 엄청난 가능성을 엿본 것이다. 일본 나고야 도요타산업기술기념관의 입구에 있는 목화송이는 도요타 혁신의 상징으로 불린다.

책은 문익점의 목화씨가 단순히 자랑스러운 역사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여기에다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었지만 이를 국가 차원의 생존과 성장을 위한 `원천 씨앗'으로 키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줄기차게 되묻는다. 다소 비약은 있지만 문익점이 틔운 목화씨 한알이 오늘날 도요타자동차를 일궈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지성기자 ezscape@

<출처: 디지털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