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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살이 이야기

쏘지 마세요

by 전경일 2009. 2. 3.

작년 8월 무더위, 아프카니스탄에서 한국인들이 피납되었을 때, 한겨레 신문에 [독자의시]로 올린 시입니다. 요 며칠 다시 중동에 전쟁이 터져, 수많은 민간인들이 죽임을 당하고 있죠.
인간은 세계를 이것밖에 만들 수 없는지... 안타까운 마음에 그때의 시를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쏘지 마세요

                      전경일. 시인  
   
 
보스니아에서
이라크에서
팔레스타인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세계 어디든
전쟁과 분쟁이 그치지 않는 곳에서,
당신이 만일 누군가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된다면,

그들을 쏘지 말아 주십시오
그들은 비무장한 민간인들입니다

그들을 부모와 형제들이 있는 집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공포와 죽음이 아닌,
생명과 일상의 축복을 위해 그들을 온전히
돌려보내 주십시오

숭고한 생명의 이름으로
인류 모두의 소망으로 간절히 호소합니다

손에 무기를 쥔 채,
무고한 사람을 쏘아보고, 노려보고, 달려드는 병사들이여!
무장단체여!

당신의 비겁 때문에
당신의 믿음과 신념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됩니다

그 방아쇠를 거두어 주십시오
인류의 이름으로 간절히 호소드립니다

당신은 분명 인간의 아들들,
비무장한 민간인에게 방아쇠를 당기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됩니다

그런 비겁을 물리칠 용기가
당신에겐 있어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방아쇠를 당긴다면,
오늘 당신은
지옥의 문을 통해 천국에 가닿는
작고 가녀린 영혼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닙니다
신의 가르침도 아닙니다

그러니
보스니아 난민촌을 들이닥치는 병사들이여!
이라크에 진주한 이국의 군사들이여!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 진주한 군인들이여!
무고한 사람을 인질로 잡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무장단체여!
그 총을 거두어 주십시오

방아쇠에서 손을 떼어 주십시오
그들은 지금 어떤 쇠붙이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겁먹은 채 떨고 있습니다
부녀자들이 두려움에 입을 틀어막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을 즉각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우리가 인류의 일원으로서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 수 있도록, 끝까지
인간다움을 지켜 낼 수 있도록,
우리의 간절한 소망과 믿음이 헛되지 않도록
그 총부리를 거두어 주십시오

그들은 우리 모두의 형제들,
인류의 가족들입니다

그러니 병사들이여! 무장집단이여!
오늘밤 그대 손의 피를 씻고 더는
무고한 사람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인류 모두를 적대시하는 짓입니다
신의 이름을 더럽히는 짓입니다

누구든 종교와 신념과 환경이 달라도
우리가 서로를 바라볼 때
불신과 두려움과 살의 띤 눈빛이 아닌,
사랑과 우애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무고한 사람들을 향한 총부리를 거두어 주십시오

그들은 선량하고, 힘없는 민간인들, 여자들,
그들 눈을 덮는 두려움과 공포를 거두어 주십시오
그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그들이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같은 인간인가요?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행동인가요?
이것은 거룩한 신의 뜻인가요?

그대들의 형제자매들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대 무고한 시민을 억압하는 병사들이여!
인류애적 용기를 내어 주십시오

지금 당장 죽음의 축제를 멈추어 주십시오

사람들이 서로를 부르며 애달파 합니다

무고한 민간인들은 어떤 정치적 이유로도
희생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들을 즉시,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인류의 이름으로 호소합니다

그대 신의 자비를 구하는 자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