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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사보기고

인문경영의 세계

by 전경일 2009. 7. 20.

흔한 얘기로 독서를 하면 상상력이 높아진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독서가 주는 진정한 힘은 반추와 각성을 통해 통찰하는 힘을 스스로 얻게 된다는 데 진정한 위력이 있다. 책을 읽거나(多讀), 쓰거나(多作), 생각하는(多商量) 이른바 삼다(三多)를 선인들이 최고의 학문 정진 방안으로 제시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이다. 남송 시대의 구양수가 당송8대가(唐宋八大家) 중 한 사람이 된 것도 스스로 밝힌 바와 같이 지혜를 더하는 방식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 세 개의 트라이앵글이 이뤄내는 조화는 실제로는 덧셈에 있지 않다. 서로 승수 작용을 일으키며 지혜의 깊이, 한 사람의 가치를 보다 깊게 해준다. 그래서 뭔가 차원 다른 사람이 되고, 품격도 따라서 달라지게 된다.

인문학적인 세계는 멋진 세계를 우리의 일상에서도 펼쳐 보인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는 종종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마신다. 하지만 스타벅스의 네이밍이 창업자이며 동업자인 제리 볼드윈과 고든 보커, 지브 시글 사이에서 허만 멜빌의 <백경>을 읽은 기억과 연결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그 같은 이름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스타벅스(Starbucks Coffee)는 소설에 나오는 항해사인 ‘스타벅’에서 따왔다. 국내에도 얼마든지 예가 있다. 롯데 창업자가 괴테가 25살에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접하지 않았다면 롯데(Lotte)라는 상호는 다른 사람이 가져갔을 것이다. 샤롯데(Charllotte)는 작품의 여주인공이다. 인문의 세계를 통해 혜택을 본 기업이 또 있다. 아모래 태평양 화장품은 떠나고 싶은 욕망, 꿈에 그리는 무릉도원 같은 이미지를 상품에 끌어 오기 위해 예이츠의 <이니스프리(Innisfree)호수섬>을 생각해 냈다. “나 일어나 이제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밤이나 낮이나 호숫가에 철썩이는 낮은 물결 소리 들리나니...내 마음 깊숙이 그 물결 소리 들리네.” 이 대목에 이르르면 어느 누가 섬으로 가고 싶다는 느낌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상품은 이런 감성과 몽환적 이미지를 불어 넣으며 일거에 성공했다.

인문의 경영학적 쓰임새는 이처럼 상품에 반영될 수 있다. 하지만 보다 심원한 세계를 품고 싶거든, 독자들은 당장에라도 시집이나, 고전을 집어 들어야 할 것이다. 경영은 어떤 비전을 실천할 것인가, 비전 실현을 위해 어떤 전략적 방법론을 채택할 것인가를 늘 고민한다. 그 ‘본다’는 것, ‘보려는 것’, ‘보고 싶은 것’ 이 바로 ‘관(觀)’이다. 이 보려는 ‘관’에서 세계관이 나오고, 가치관도 나온다. 물론 사업을 하는 분들에게는 기업관 같은 게 나올 법하다. ‘관’이란 의식의 방향성이며 그것은 기업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를 담아내는 지표가 된다. 네이밍 회사에 의뢰해 찾아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구든 스스로 지닌 ‘관’이 경영현장이든, 삶에 반영되는 것이다.

‘보고 싶은 것’을 보려면 인간에 대핸 총체적 이해가 필요하다. 좌우뇌의, 이상과 감성의,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까지 아우르며 고객의 마음과 생각을 흔들어 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 고유의 본성, 세계와 인간이 만나는 바로 그 접점이나 결합 방식을 알아야 한다. 인문은 이에 대한 하나의 뚜렷한 열쇠가 된다.

세상사의 진리를 오랜 인간사의 지혜를 통해 터득하면 경영이란 너무나 간명한 원리에 기반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경영학은 인문학에 견주어 보면, 경영과학, 즉 치산이재(治産理財)를 위한 한 분과에 불과하다. 수많은 경영 이론이 있고, 효율성을 위한 원칙들이 등장하지만, 결국에 경영은 뭐라 정의 하든 사람에 귀속되는 것 아닌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뒤따른다면 멈칫거릴 게 없다. 인문학은 ‘인(人)’과 ‘문(文)’의 합자(合字)로 그 말이 상징하듯, 인간이 글로 아로새기는 지혜의 기초자, 완성이다. 이 지혜의 덩어리는 어떻게 쪼개내느냐에 따라 바위를 깨고 보석을 꺼내듯, 가치가 결정 난다. 간단한 해법을 얻고자 하는 자에겐 최소한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줄 테지만, 그 이상 심원한 인간사의 묘미를 알고자 하고, 세상사에 대처하고자 하는 자에겐 무한한 인류의 정신과 만날 정신적 공간을 만들어 준다. 세상을 알고 나를 알면 모든 것을 알련만, 아직 그 방법을 모른다면, 시집부터 한권 집어 들어 보시라. 그 간명한 글귀에 천하를 베는 촌철살인과, 천하를 벨 보검과, 천하를 움켜줄 지략이 들어 있음을 알터니...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 신간 <더 씨드: 문익점의 목화씨는 어떻게 토요타자동차가 되었는가>의 저자. 블로그: http://humanity.kr <행복한 동행> 2009.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