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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살이 이야기

덕수궁에서 보낸 하루

by 전경일 2009. 8. 30.
주말, 가족을 데리고 덕수궁에 갔습니다. 페르난도 보테로전을 보기 위해 갔는데, 그의 작품에 새로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남미 특유의 낭만적이고, 정서적 풍요가 물씬 풍겨나는 작품들. 사진을 찍어 놓고 좌우로 잡아 당긴것처럼 모든 인물, 정물들이 뚱뚱하게 살찐 풍경은 인생이란 물커덩 쏟아지는 과즙과 같은 것이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인생이 뭐 즐기는 것 말고 뭐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 말이죠. 그게 바로 태평성대이겠죠. 특히 색채에 무한한 자신감을 보이는 작가의 작품을 보며, 어렸을 때 넘치도록 사랑 받으며 자란 사람이 아니고서는 저렇듯 풍요롭지 못할텐데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림에 문외한이지만, 꽃이 꽂혀 있는 화병 정물을 하나 사들고 나올 때에는 풍요마저 거저 얻은 듯했습니다. 집안에 걸어 놓으니 거실이 다 훤합니다. 
오랫만의 덕수궁 여행이라, 세종대왕상도 보고, 전시회도 보고,  얼마전 노대통령 49제를 하다가 철거된 대한문 현판앞의 사람들도 보고... 모든 게 일상이고, 사람들은 움직이고, 세상의 시계는 짹깍짹깍 돌아갑니다. 인생이 저렇듯 흐를 테고, 역사가 저렇듯 잊혀지다가 어느 계기를 통해 다시 부상하면, 각성이란 교훈을 주기도 하겠지요. 삶이 보다 넉넉해져 사람들 심성이 더욱 고와지고, 예양이 널리 퍼져났으면 합니다. 너무 세종대왕 같은 생각을 하였나요?   
오랫만에 찾아 뵈옵는 대왕상입니다. 오늘 같은 시대, 대왕의 국가경영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꼼꼼히 들여다본 대왕상 후면에는 용 문양이 있는데, 발톱이 4개입니다. 황제나 5개 밥톱을 썼다는데, 제왕시대가 끝났을 때 지어 올렸을 대왕상에 이토록 작은 생각을 집어 넣은 자들이 누구일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남미의 역사는 경제적으로 고통스럽기도 했는데, 서커스 단원을 그린 이 그림은 풍요롭기만 하지요?
꽃을 담은 화병도, 꽃다발도 넘칠듯 탱탱합니다. 생육과 번성이 떠오르는 건 무엇 때문일까요?
대한문 앞입니다. 이 문은 얼마나 많은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을까요? 무릇, 옷깃을 여미는 겸허함이 순간 코끝을 스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