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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살이 이야기

벌초를 하고 가을 들판을 노닐다 오다

by 전경일 2009. 9. 13.
올해는 윤달이라 대부분 벌초가 늦는 모양이더군요. 강원도 선산을 찾아 벌초 하고 올라오는 길에 막국수 먹고 가을 들판을 우두커니 바라다 보았습니다. 세상은 놀라고, 가슴 아프고, 구김살 있기도 하지만, 계절은 변함없이 가을을 맞이하고, 추수의 계절을 놓치지 않습니다. 농심은 예전같지 않아 참새떼가 벼이삭에 달라 붙어도 쫓는 이 하나 없고, 노인들 뿐인 시골엔 새쫓을 힘도 없는 모양입니다. 일년에 한 두번 만나 선산을 찾고, 밥 한 끼 나누고 나면 다들 뿔뿔히 도심으로, 저 사는 곳으로 흩어지는 게 요즘의 삶이지요. 무겁게 익어가는 벼이삭과, 식당 평상에 널어 놓은 붉은고추와 썪어 놓는 호박은 햇빛에 그을러져 겨울 반찬이 되어 가는 것이겠죠. 시골 가을은 그렇게 누엿누엿 저물어 갑니다. 서울로 가는 길에 양평쯤에선 차가 밀리고, 삶이 저렇듯 지척거리면서도 가는 것인지요.

ⓒ전경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