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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사보기고

드라마 <선덕여왕>속 덕만에게 배우는 성공하는 CEO의 전략

by 전경일 2009. 9. 14.
출처: <신한인> 2009.9월호

드라마 선덕여왕 속 덕만에게 배우는 성공하는 CEO 전략

팜므 파탈(femme fatale). 프랑스어인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남성을 파멸적인 상황으로 이끄는 '운명의 여자'를 뜻한다. 그만큼 매력적일 거라는 얘기다. 드라마 선덕여왕에 나오는 미실을 한 단어로 콕 집어서 말한다면, 이 말만큼 정곡을 찌른 표현이 없을 것이다. 왜 그녀에게선 파멸적인 힘, 매혹적인 권력의 냄새가 나는 것일까? 그것은 힘이 지닌 매력, 권력을 향한 욕망이 총천연색으로 꿈틀거리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날이 갈수록 흥미를 자아내는 것은 바로 권력을 향한 지향성과 권력을 만들어 내는 방식 때문이다. 나아가 권력이란 사람을 끌어 모으는 것이라는 가장 기초적이며, 중추적인 용인술이 밑바탕이 된다는 점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후에 선덕여왕이 되는 덕만과 미실의 차별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1등 전략과 2등 전략이 차이일 것이다. 덕만은 왕이 되려는 목적이 있고, 미실은 황후의 자리, 즉 2인자를 탐하기에 권력의 정점에 이르지 못하고 끝내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신라 최고 의사결정기관인 화백회의와 군부를 장악하고 있는 미실과 일개 낭도에 불과한 덕만의 싸움은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처럼 무모한 것이다. 하지만, 덕만은 2등이 1등이 되기 위한, 경영학의 대가 짐 콜린즈의 말마따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Good to Great)'이 되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에 끝내 옥좌에 앉게 될 것은 자명하다. 이에 따라 2등이 1등이 되는 전략 또한 치밀하다. 상대의 강점요인을 분석해 미실이 갖지 못한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 차별화하는 전략을 펴고 있는 셈이다. 이는 1등 기업에 대단히 성가 싫은 존재이자, 신경이 쓰이는 상대가 아닐 수 없다. 추격자에 대해 신경전에 더 많이 쓰게 되다보니 자기 고유의 전략이나, 페이스가 망가져 버릴 위험이 있다. 마치 인터넷 1위 기업 구글이 R&D센터를 마이크로소프트 본사 바로 앞에 세웠을 때, MS의 신경을 날카롭게 건든 것과 동일하다. 야심차고, 전략을 움켜 쥔 채 호시탐탐 상대의 약점을 노리는 기업 앞에 그후 MS는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모든 게 헛발질이었다. 구글을 견제할 대항마로 야후를 인수하려는 시도가 좌절된 것은 바로 이 점을 대표적으로 잘 보여준다.

나가가 덕만의 용인술은 어떤가? 유신의 충심을 얻어낸 덕만은 이제 날개를 단 범의 형세이다. 파죽지세로 역량을 한곳으로 모아간다.

기업의 성패가 어떤 대회전을 맞이하며 사운이 일변하듯, 천명공주의 죽음은 새로운 판을 예고하며, 권력 지형도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덕만은 미실이라는 거대한 벽을 넘기 위한 파이널 라운드만 남아있을 뿐이다.

왜 기업의 판도는 바뀌는가? 이는 드라마 선덕여왕에 그 해답이 있다. 즉, 개량-개선-혁신-혁명의 단계 어디에 기업이 포지셔닝하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뛰어난 색공술을 지닌 미실은 왕후가 되기 위해 진흥왕의 아들인 동륜, 금륜과 정을 통하기도 한다. 왕후라는 욕망의 구체적 실천 전략이었다. 그러나 왕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자 동륜의 아들을 왕위에 앉힌다. 하지만 마야부인이 왕후가 된다. 이런 2등 전략이 결국 왕후는 고사하고 자신을 권력에서 완전히 패퇴시켜버리는 덕만의 탄생을 가져오게 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스스로의 비전의 몫만큼 권력을 얻다, 무너지고, 흩어지고 마는 것이다.

게다가 스스로 비를 몰아오는 자기 암시는 "북두칠성이 여덟이 되는 날, 미실과 대적할 자가 오리라"는 진흥왕의 유언의 덫에 걸려 자기 힘에 대한 불신, 왜소화 작업을 심리적으로 이미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미실에게는 보다 혁신적인 사고를 진행하는 1등 전략이 아닌, 성가 싫은 2등만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녀는 경영용어로 풀이하자면, '뒤로 감기식 비전'으로 스스로를 자승자박하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의 권력 의지는 혁신이 아닌, 개선이나 개량 수준에 머문다.

반면, 덕만은 혁신을 넘어 혁명적인 사고로 진입해 들어간다. 왕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왕으로 추대되는 과정을 이미 겪고 있다. 시장에서 픽업된 고객의 인지도나 충성도가 1등 기업의 조건을 만들듯, 김유신의 충성 서약은 바로 대권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되는 외적 조건이 된다.


드라마 속 미실은 가장 냉철한 지도자이고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 뛰어난 미모와 엄청난 색공술을 무기로 왕들의 화랑들을 휘어잡는 여걸이자 뛰어난 정치 감각과 카리스마를 지닌다. 또한 매혹적이다. 하지만, 스스로 왕이 되겠다는 혁명적인 발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는 궁극적으로 패배하고 만다. 그 반대편에는
'크고 섬뜩하고 대담한 목표(BHAGs; Big Hairy Audacious Goals)'를 지닌 채 '왕이 목표'라는 생생한 그림을 가지고 정상을 향하는 여인, 덕만이 있다. 이처럼 이 둘은 접근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드라마가 온갖 인간사의 욕망을 통해 비전을 일궈내는 인간군상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때 누구를 손 들어 줄 것인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미실은 그래서 스스로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팜므 파탈이 되고 마는 것일 게다.<끝>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 <더 씨드: 문익점의 목화씨는 어떻게 토요타자동차가 되었는가>, <창조의 CEO 세종> 의 저자. 블로그: http://humanit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