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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통섭과 초영역인재

경영, 사람을 속속들이 읽다

by 전경일 2009. 10. 13.

2007년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맥월드 2007에서 저 유명한 아이폰(i-phone)을 발표할 때 나는 화면에 미끄러지듯 좌우로 오가던 휴대폰과 MP3 플레이어가 결합된 아이폰 이미지를 잊지 못한다. 그는 제품의 통합성을 간단명료하게 전달하는 프리젠테이션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 효과를 극대화했다. 물론, 신제품 발표를 통해 그 자신 스토리텔러이자, 신화를 끌고 다니는 IT업계의 거두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잡스의 이런 카리스마는 실은 발표력에 있지 않다. 대신 그는 신비주의적 마케팅 기법을 활용해 애플과 자신을 하나의 컨텐츠로 묶어 내는데 성공했다. 국내에서 한동안 'CEO 브랜드'라는 것이 유행해 한 경제일간지는 CEO의 가치를 섹션으로 다룬 적 있다. 그러나 효과는 얼마 지속되지 못했다. 이유는 뭘까? 스토리, 즉 컨텐츠가 없기 때문이다. 내용이 없다는 것은 최고경영자는 물론 기업을 식상하게 만든다. 거기엔 인문적 요소가 듬뿍 배어나야 한다.

경영이 궁극적으로 인문적 요소를 포용하는 것이라는 걸 우리는 잡스의 복귀에서 읽는다. 그는 최근 간 이식 수술을 마치고 복귀하며 애플의 신병기인 태블릿에 사력을 집중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블릿은 PC의 역사와 함께 하는 애플의 히스토리지만, 잡스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아이폰을 통해 영국의 신비주의 시인 윌리엄 브레이크를 사업의 영적 세계로 불러들였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브레이크가 그 자신의 텍스트 컨텐츠에 자신이 직접 그린 삽화를 집어넣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잡스는 아이폰을 넘어 이제 고객이 책을 읽듯 고객의 마음을 읽어내는 새로운 IT의 감지여행을 떠나는 셈이다. 그러기에 잡스에게 있어서 경영은 궁극적으로 사람을 읽는 것일 게 분명하다.

창조력은 지식간 통섭에서 나오며 거기엔 이야기가 고명처럼 얹어질 때, 가치를 더한다. 결국 우리는 상품을 사는 게 아니라, '만족 된 상태'를 사는 것이다. 스토리는 영구하다. 그것은 신화를 만들고, 사랑을 갖게 한다. 중국에 가서 TV를 틀어보시라. 감동 없는 제품 설명이 30초 내내 이어진다. 당연, 지루하다. 품격은 고객의 기대에 부응하는 스토리를, 진실과 애정을 버무려, 각각의 상황에 맞는 고유한 방식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방점을 찍어 보시라.) 우리의 기업 광고가 다분히 스토리 중심으로 가는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나 기업의 스토리 역량, 즉 인문적 수준이 향상된 것을 뜻한다. 그것은 기업이 그런 것이 아니라, 고객의 수준이 달라진 것을 뜻한다. 기업에 '느낌부서' , 대학에는 '느낌학' 따위가 신설돼도 하등 이상할리 없다. 그만큼 성숙된 정서적 차원의 세계로 고객들은 이동하고 있다.

보헤미안 지수라는 게 있다. 즉 한 사회의 문화적 수준과 범죄율 하락 등 사회전반의 수준은 창조적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예술과 창조성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용어다. 이는 화가, 무용가, 작가, 배우 등 예술가들이 그 지역에 얼마나 사는지를 나타내는 데 쓰이는데, 보헤미안 지수가 높은 지역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창조지수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다. 유엔(UN) 자료에 의하면, 인터넷이 등장한 이전과 이후의 차이로 전 세계 기업들의 감성지수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업은 서둘러 디자인 역량에 주력하고 있다.《포춘(Fortune)》100대 기업의 경영자들이 강조하는 것도 감성적 역량과 이성적 역량이 결합된 창조능력이다. 이는 경영에 나타난 밀레니엄 현상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즉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1997년 이전의 경영자와 전세계적으로 확산 보급된 2000년 이후의 경영자는 종(種)부터 완연 다르다. 하물며 기업의 대(對)사회 활동이나, 사랑받은 기업의 조건으로 감성지수, 문화지수가 크게 작용할 것은 불문가지다.

최근 1년간 전세계를 휩쓴 경제위기 이후에 나타난 기업들의 두드러진 변화는 원가절감, 효율성 증대라는 이른바 생존 조건 이외의 다른 차원이 필요하다는 각성이었다. 원천적 발상기법을 통해 이미지(아이디어), 디자인, 브랜드, 컨텐츠(스토리)를 통합적으로 꿰는 창조적 욕구가 이는 건 새로운 성장 동력에 대한 갈망이다. 과거 프로세스 중심의 경영철학이 프로덕트 중심의 사고로 바뀌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에 따라 단순히 분석만 하는 차원에서 창조적 답안을 내놓는 기업이 승리할 수밖에 없다. 창조를 위해선 넓고, 깊고, 남의 집 우물도 함께 파고, 남의 집 담장도 제 집 담장 넘나들듯 해야 한다. 지식의 유연성, 광폭성이 키워드. 시장을 확장시키고 싶은가? 전인미답의 신시장을 개척하고 싶은가? 정체된 수익을 개선하고 픈가? 그렇다면, 인문경영의 부드러운 힘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 앞으로는 암기시대가 아닌, 뭔가를 묶어내려는 초영역 역량을 지닌 인재들이 이끌어 간다. 잡스는 그런 아이콘의 한 예에 불과하다.
우리 회사는 지금 어떤가?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 <신한인>사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