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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사보기고

도전! 유쾌한 인생2막

by 전경일 2009. 10. 13.

그래, 남의 일이 아니지!’

직장생활 20년차 김 인봉 부장은 요즘 들어 부쩍 초조해진 자신에 깜짝 놀라곤 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40대 후반에 건강이 무너져 병원 신세를 지는 동료가 있는가 하면, 다니던 회사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나와 하릴없이 방구들을 쥐어뜯는다는 친구 얘기를 듣노라면, 갑자기 식은땀이 나고, 하늘이 노래지는 느낌이다. ‘나는 아니지.’하고 자위하지만, 김 부장 스스로도 그건 공허한 위안에 머물고 말거라는 생각이 든다. 요 며칠 잠도 오지 않는다. 대한민국 남자 평균 수명이 83세라는데,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는 어떡할 거며, 애들 혼사며, 은퇴 이후에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러다보니 잠도 부족하고, 자연히 회사에 가서는 그만 꾸뻑 졸기 십상이다. 이러다간 안되는데...하고 생각하지만, 대체 무엇부터 붙잡고 뛰어야 할지 망설여진다.

생각 끝에 찾은 예전 직장 선배는 쓴물 같이 넘어오는 온실 밖의 삶에 대해 끊일 줄 모르고 장광설을 풀어 놓는다.

“‘갑자기’라는 거 알어? 모든 게 갑자기 닥쳐오더군. 조직에 있으면 누가 바짝 긴장해 내일 걱정 하겠어? 매일 매일 하던 일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나가야 할 때 되더라구. 그저 끊는 물의 개구리처럼 ‘나는 아니야’ ‘아직 멀었어’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바로 내 얘기를 하는 거라는 걸 알아야 해. 그나마 여력 있을 때 뛰어야지. 나오면 말야, 별 시시콜콜한 잡무도 다 내가 손 봐야 하고, 대책없이 직원을 뽑을 수도 없고, 해 놓은 일이 맘에 들지도 않고 그래. 대기업하곤 완전히 다르지.”

그래서 어떻게 했냐는 말에 선배는 김 부장을 쓱 쳐다보더니 정색을 한다.

“일단, 눈높이를 낮춰. 지금까지 내 눈높이가 높았던 것은 회사가 높았던 거지, 자네 자신이 높아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하네. 회사 덕에 일도 한 거지. 내가 유능해서 일을 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하네. 회사가 그나마 지금까지 먹고 살게 해 준 것만도 고맙다고 생각하라구. 섭섭해도 감사하는 마음부터 갖는 게 중요해. 자신을 다시 정립하는 계기를 만들려면 말야. 상황이 바뀌었거나 곧 바뀔 거고, 그렇다면 내 인생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자세가 중요하지. 그게 마음의 준비체조일세.”

김 부장은 당장의 해법을 원했지만, 선배는 알쏭달쏭한 말부터 했다. 골프를 잘 치려면 셋업부터 바로 하고 흔들리지 말아야 하듯, 인생 제 2막을 준비하는 자세는 바로 그러해야 한다고. 그러며 그는 시집간 며느리 예를 들었다.

“회사살이를 하다가 나와서 백전백패 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시집간 사람들이 아냐. 시집을 갔으면 호적을 파 옮기듯 마음도 따라 가야 하는데, 이전 다니던 회사를 기웃거려봐야 뭐가 나오냐구. 그거 믿고 나올게 아니라, 자신만의 분명한 영역을 만들어 놓고 나와야 하네. 마음, 자세, 관계, 타업종에 대한 관심, 이런 게 중요하고, 그리고 말야. 또 하나 중요한게 있는데, 바로 ‘알음알음’이라는 거네. 살다보면 알음알음 알게 되는 게 있네. 그런 게 해답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지. 또 관계 말인데, 단단한 결속을 보였던 관계보다는 느슨한 관계, 한 집 건너 한 집 아는 식의 관계가 도움이 되더라네. 나와 특별한 이해 관계없이 만난 사람들이고, 경쟁관계에도 있지 않기에, 자신이 줍지 못했던 것을 주워 다 주는 사람들이 있어. 마치 흥부 박 씨를 물어오는 강남 제비 같은 사람들인데, 주로 느슨한 관계로 이어져 있지. 그런 사름들과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경조사 챙기고 하는 사람이 귀인을 만나더군.”

김 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에게 선배는 몇 가지 팁을 덤이라고 얹어 주었다.

“너무 목전의 이익에 밝지 말게. 관계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게 아냐. 꾸준히 자기 활동하고, ‘그 사람 됐다’는 인성이 오히려 성공 요인이네. 얍싹 빠른 사람들은 내 주변에도 하나같이 제 발등 찍고 나자빠지더군. 시스템이 아닌, 사람됨됨이로 풀어가는 게 인생 2막의 조건이네. 자네도 좀 베풀며 살아왔나?”

선배의 마지막 말에 김 부장은 그만 머리가 쭈뼛 서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 그에게 선배는 마지막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친정에서 잘하게. 집에서 새는 바가지 들에 나가서도 샌다고, 지금 회사에서 잘 하는 사람이 훗날 자기 일 할 때도 성공하더군. 동료를 친구로 만들게. 동료는 피치 못하게 경쟁할 수 밖지만 친구는 뭔가? 그루터기 같은 거네. 그거 없으면 어디 가서 앉아 쉬겠나. 가장 좋은 벗을 만드는 것, 그게 성공 비결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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