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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통섭과 초영역인재

입이 딱 벌어질 새로운 세계

by 전경일 2009. 10. 13.

여름 철 휴가차 찾은 제주도 초가(草家)를 들어서면 ‘정낭’이 막아선다. 3개에서 4개 정도의 구멍이 뚫린 주석이나 정주목을 세우고 정낭을 걸쳐 놓는 풍경은 외지인들에게는 아무래도 낯익은 풍경이 아니다. 하지만 제주도민에게는 생활의 일부분이다. 정낭을 치는 생활 습속은 외부인과 내부인에 대한 표시 방식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가로대가 놓이는 방식에 따라 안에 누가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일종의 민간의 출입시스템인 것이다.

정랑을 보고 있노라면, 0과 1로 표현되는 디지털이 왜 우리에게서 먼저 시발되지 않았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안을 들여다보려는 투시와 밖에 대고 안의 상태를 드러내 보이려는 표현이 어우러져 표리(表裏)가 상통(相通)하는 기호력은 제주도민에게는 디지털의 일상적 프랙티스라고 할 수 있다. 생활 속에 체득된 지식을 보다 주도면밀하게 관찰했다면 디지털은 우리에 의해 창발되었을 법하다. 민간에 드러나는 창의적 지식을 살펴본다면 어디 이뿐이랴. 우리의 수많은 역사적 경험은 우리가 토종의 힘을 글로벌 파워로 키워낼 수 있는 힘이 곳곳에 산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북유럽의 신화를 원형으로 한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같은 상상력, 문화의 무한한 보물단지를 손에 쥐고도 우리는 남의 것 찾기에 급급하다. <조선왕조실록>의 저 막대한 유산은 기껏 TV를 장식하는 사극이나 <신기전> 같은 몇 편의 영화로만 나타났을 뿐이다. 캐고자 하면 도다지가 인문과 역사 속에 숨어 있다. 게다가 전국 방방곡곡 <군지(郡誌)>, <민속지> 따위에는 수많은 신화나 전설, 민담이 있고, 이런 컨텐츠의 보고는 아직 미답인 채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아이디어의 고갈로 허덕이는 헐리우드는 <킁후 팬더>를 통해 과거 <뮬란>이 보여주지 못했던 동양의 힘을 더욱 깊게 각성했고, 동양은 더 이상 로컬이 아니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1차물 상영과 함께 6차 시리즈물에 대한 글로벌 펀딩이 완료된 것으로 보여줬다. 로컬은 가장 거대한 원(源) 소스이며, 창조경영이 이루어지는 시장이다. 그 한가운데 우리가 놓여 있다. 이것들을 어떻게 상상력의 산물로 꿰어 맞추느냐에 따라 가치는 달라진다. 그래서 지식의 크로스 오버니 통섭이니 하는 말들이 부상하고 있으며 각 대학에서도 다양한 융합형 학과들이 생겨나고 있다.

우리의 전통 고건축만 예를 들어도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발동시킨다. 인문의 힘은 바로 이런데 있다. 예컨대, 우리 전통 고건축은 통섭의 멋과 힘을 한껏 드러내 준다. 못하나 박지 않고도 전체 건물이 한 덩어리가 된다. 이런 천의무봉한 우리 고건축의 비밀은 무엇일까? 나무와 나무를 정확하게 교차시키고 끼워 맞춰 한 몸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못이 없어도 홈을 파서 연결하면 시간이 갈수록 한 덩어리로 합체(合體)된다. 이런 우리 건물은 주로 소나무를 쓰는데, 소나무가 가진 특성을 제대로 살린 것이다. 반면, 노송나무를 고건축의 주재료로 쓰는 일본은 건물이 지어지고 나서 시간이 갈수록 나무가 못을 조이는 방식을 취한다. 나무를 고정시키는 방법도 한일간에 서로 다른 것이다. 일본 장인이 지닌 기술 정신의 기저는 효율성이요, 우리는 합치와 조화다. 이 차이가 지금까지 산업의 차이를 가져왔다.

이처럼 우리 건축물은 못 하나 박지 않고도 집 전체를 하나로 묶어 낸다. 천년을 견뎌온 목조문화재의 비밀은 바로 이 같은 ‘이음법’에 있다. 나무로써 나무를 붙들고, 재질을 서로 보강해 준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하게 한 덩어리로 묶인다.

고건축이 아닌, 일반 건물의 경우에는 연결을 위해 ‘거물못’을 쓴다. 나무를 이으려면 벌리기도 해야 하는데, 이때 나무와 나무 사이에 박아 넣는 ‘째못’이라 불리는 벌림쐐기가 등장한다. 벌리고 잇는 변증법적 통일 과정을 통해 나무는 전체로써 하나의 건축물이 된다. 통합적 원리가 건축에 작용하는 것이다.

고건축에서 우리는 기업이 찾는 인재형의 한 유형을 발견해 낼 수 있다. 즉, 21세기형 인재는 거물못과 같다. 지식을 묶을 때 보다 포괄적인 역량을 드러낸다. 째못과 같이 자신의 고유 가치를 쪼개고, 분리해 취사선택하지 않는다. 분리, 분할은 과거의 방식이다. 합체성, 이것이 우리 인문이 지닌 힘이다. 그 힘의 원천이 생활과 경영에 접목되기 위해 궤가 꿰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생명을 분해하는 일은 생명 자체를 탄생케 하지 못한다. 어떤 것들은 이어질 때 자기 존재가 드러난다. 미래형 인재유형의 특징이 이렇다. 그동안 우리 기업들은 인재를 대하는 데 있어 분리형의 방법을 취해 왔다. 즉, 통합성을 막기 위해 쐐기(뿔송곳wedge,∨)를 박는 식이었다. 계속 분리해보면 거기서 무엇인가가 나올 줄 알았지만, 그 결과 우리는 개별적 가치에 국한된 지식에 매몰되었다. 결과적으로 총체적 지식에서 멀어졌다.

이제는 묵는 게(︹)필요하다. 1은 개별이요, 2는 합(合)이다. 3, 4, 5는 섭(攝)이요, 이 모두가 통(通)하고 합(合)해서 하나를 이루면(成) 이를 크로스 오버(cross over)라 한다. 즉, 통합성(通合性)이 되는 것이다. 이 같은 통합성은 총합된 새로운 세계를 가져오고, 이를 경영에 비유하면, 사업에서는 동동(同業)이 아닌, 통업(統業)을 가져온다. 21세기형 경영 패러다임은 통업을 기초로 하여 새 판을 짜야 한다. 그럴 때 각기 분리되고 따로 떨어져 있던 것들은 하나로 모이며 생명력을 얻는다.

미국의 유명한 디자인 회사 중에 이데오라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의 채용 전략 중 하나는 기본적으로 전공에 대한 탁월한 지식과 기술은 겸비하되, 전공 외의 다방면에 대한 관심과 지식을 지닌 박식가(博識家)를 찾는다. 괴짜들간의 시너지를 고려한 인사운용 방법이다. 이데오에는 400여명이 넘는 직원들이 있고, 직원 각자는 문화인류학, 컴퓨터과학, 공학, 그래픽디자인, 보건, 심리학 등 아주 광범위한 지식 배경을 갖고 있다. 이들 중에는 예술가이자 MBA 학위 보유자, 해군 사관학교 졸업생이면서 역사학 전공자, 건축학 석사이면서 가구 디자인이나 골동 자동차에 관심 있는 자 등 창의적 인재들이 포진돼 있다. 크로스 오버형 인재 덕분에 이데오는 새로운 문제에 접하면 통합적 지식을 얻어낼 수 있다. 이데오는 우리가 지닌 기존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이중 경력자(혹은 이중 전공자)를 뽑아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각자가 지닌 경험은 상호 작용하며, 전혀 다른 창작의 세계를 드러낸다. 여기서 새로운 가치가 탄생한다. 이 점이 이데오가 비즈니스 업계에 남다른 혁신을 가져오는 이유이다. 이데오의 인력 구성은 21세기형 조직의 대표적인 예에 해당된다.

이제 지식은 합체(合體)를 통해 ‘낱’으로써의 지식, 경험, 고립된 가치, 분리된 일들을 모아 새로운 가치로 재구성해야 한다. 지식을 ‘헤쳐’보기만 했던 과거에는 감히 상상치도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흩어진 것들을 ‘헤쳐모아’ 새로운 창조의 거푸집에 부을 때 새로운 지식의 뿌리(knowledge root)는 세워진다. 감히 이전에는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새로운 산업이 여기서 나온다.

원천이 되는 뿌리에서 곁가지를 치며 발달해온 분과형 지식의 전문성을 활용해 묶음의 시대로 가야 한다. 학문이든 경영이든 모든 면에서 이제는 합산(合算)이 아닌, 승산(乘算)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1 더하기(+) 1은 2이다. 더하기는 누적개념이고, 곱하기(x)는 승수개념이다. 개념이 바뀌어야 경영은 다른 경지를 열어젖힌다. 새로운 시대의 경영은 과거처럼 단발(單發)ㆍ단기(短期)의 ‘암기식 경영’이 아닌, 창조와 통섭의 경영이다. 지식간 연계(連繫)·연대(連帶)·연동(連動)이 다른 차원의 다른 합(合)을 이뤄낸다.

바야흐로 인류가 쌓은 지식의 총량이 다시 한번 빅뱅하려는 시기를 우리는 맞이하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지식 융합이 벌어지며, 그 새로운 지식의 시대를 이끌어 나갈 초영역 인재들이 다가 오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새로운 지식 시대를 열어나갈 창조시대의 지식 전사들이다. 경영은 인문에 아주 작은 팁을 줄 뿐이지만, 인문은 경영의 아버지가 될 게 분명하다. 우리가 저 깊고 웅혼한 인문의 세계를 알려고 하고, 그 봇물을 경영에 들이대려는 것도 이 때문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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