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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통섭과 초영역인재

새로운 지식 사회의 출현

by 전경일 2010. 2. 22.

대학을 마치면 회사에 취직하고, 일에 대한 보상으로 급여를 받고, 이를 통해 가게 운영을 하는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경로이기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같은 임노동 생활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접하는 일의 환경이며 동시에 경력 경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누구나 알고 있는 시스템이 채 260년도 되지 않은 산업혁명 이후의 현상이라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경제시스템은 노동을 통해 발전해 왔으나, 이제는 '노동'이 전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즉, ‘고정되고 변하지 않는 가치’였던 과거의 노동이 지식사회로 접어들며 ‘변하는 가치’로 이동했다는 것. 이에 따라 과거의 ‘노동’을 대체한 것은 이제 ‘정보와 전문지식’이 됐다는 분석이다.

직업과 관련지어 노동의 질적 변화를 살펴보면 이는 보다 선명하게 드러나는데, 1900년에는 모든 직업의 17 퍼센트만이 지식 노동자를 필요로 했는데, 2000년도에는 그 비율이 60 퍼센트 이상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작고한 피터 드러커는 앞으로 인류가 부딪힐 미래를 예측하면서, 미래 세상의 특징으로 지식 근로자의 대두를 손꼽은 바 있다.

대학교육을 받은 기술자가 처음으로 제조업에 들어온 것은 1867년 독일의 지멘스(Siemens)가 처음이었다. 이 기술자의 이름은 프레드릭 본 헤프너 알트니치(Fredrich von Hefner-Altenech)였다. 이로부터 대학은 전문적인 지식인(즉 전공인)을 기업에 쏟아 붓는 지식노동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수행해 왔다. 지식산업이라는 말은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경제학자 프릿츠 마취럽이 처음으로 사용하였는데, 이 말이 드러커에 의해 '지식근로자'라는 용어로 1960년대 사용된 것이다.

경영전문가이자 미래학자들은 지식이란 용어에 근로자를 결합시켜 사회 전반을 이끌어 나갈 인적 변화가 크게 도래했음을 예견한 셈이다. 그로부터 40년 지난 2000년대 들어 정보 혁명이 가속화되며 정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빅뱅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기술이 지식변화를 주도했던 셈. 이제는 세계 어디든 저개발 국가를 제외하고는 그야말로 지식 천국의 시대라 불러도 손색 없을 듯하다. 현재 인터넷 망을 통해서는 초당 10 trillion bits의 정보가 흐르고 있다. 이는 1900장의 CD가 돌아가는 것이며, 1억5천 건의 전화통화가 전지구적으로 쉴새없이 울려대는 것을 뜻한다. 올해만 해도 40 Exabytes(4.0 x 10¹⁹)의 정보가 생산되었다. 실로 지식이 넘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과거 노동에서 지식으로 바뀌었듯, 이제는 보다 세분화된 지식이 상호 연계성을 띠는 이른 바 연계지식의 욕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다양성과 다변성을 무기로 새로운 지적 생태계가 열리고 있는 셈. 사회 전반도 지식에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이른 바 보헤미안지수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한 마을에 창조적인 사람들이 얼마나 되느냐를 지수화한 것이다. 연구에 의하면, 예술가들이 그 지역에 얼마나 사냐에 따라 보헤미안 지수가 높은 지역이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창조지수가 높다고 한다. 어느 한 도시의 창조적 역량을 살펴보면, 그것이 도시의 문화적 역량은 물론 한 국가의 문화적 확산에 크게 기여했음을 알 수 있다. 가령 르네상스 초기의 피렌체, 1800년 대 초의 비엔나, 일본의 가나자와, 미국의 뉴욕과 오스틴, 아일랜드의 더블린, 인도의 방갈로 같은 도시는 높은 보헤미안지수 덕분에 침체된 도시가 활기를 띠며 크게 발전한 것으로 손꼽힌다. 나아가 한 국가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를 기업에 적용해 보면 어떤가? 어느 한 기업을 이끄는 힘은 실은 조직 전체에 있기보다는 조직의 창조적 열의가 높은 집단들에 의해 혁신되고 이끌어진다. 이런 조직의 창조적 인재들은 창조적 분위기를 만들고, 지식을 긁어모아 더욱 심오한 창조세계를 펼친다. 미국의 가장 혁신적인 창조적 기업 아이디오(IDEO)의 경우에는 창조적인 사람들이 상호교류하고 자극을 줌으로써 새롭고 혁신적인 제품들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식과 창조성의 상관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변화에 따라 지식노동은 과거보다 훨씬 차원을 달리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모든 별들을 빨아들여 새롭게 우주를 만들어 내는 블랙홀 이론은 21세기 지식이 움직이는 방식을 설명하는 데에도 적합할 것으로 보인다. 지식의 양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는 얘기일 게다. 요는 양적 성장을 통해 어떻게 양질전환을 이뤄내느냐이다. 기업이건 개인이건, 판에 박힌 혁신이나 자기계발 보다는 차원을 달리하는 노력을 배가시켜야 할 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파울로 피카소가 사물을 적어도 3개의 다른 시각에서 봄으로써 입체주의 미술양식을 창조하고 20세기 최고의 거장이 된 데에는 고정된 시각이 아닌 움직이는 시각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지식 또한 그렇다. 움직이는 지식만이 새로움을 잉태해 낼 수 있다. 가히 지금의 인류는 지식 변혁 시대를 온 몸으로 살고 있는 셈이다.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초영역 인재》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