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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해녀처럼 경영하라

바다를 경영하는 여자

by 전경일 2010. 3. 11.

한 사람의 해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유심히 살펴보면, 오늘날 기업에서 말하는 멘토링, 코칭, 리더십, 핵심인재 육성법, 성과ㆍ조직관리ㆍ운영, 배려의 문화 등 모든 경영적 술어를 다 동원하더라도 부족할 성싶다.

생사를 넘나드는 바다라는 전쟁터에서 물질하는 기량을 닦고 능력을 충전해 나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기업들이 핵심리더를 키워내는 지난한 과정과 맞닿아 있다. 일과 놀이가 어우러진 한바탕 신명나는 ‘일하기 좋은 기업(Great Work Place)’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오늘날 기업은 해녀들의 바다 속 경영을 통해 경영의 깊이를 더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불굴의 도전 정신을 온 몸으로 체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해녀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깊은 물로 들려면 가장 얕은 물로부터 시작하라

인간은 본래 물에서 나왔다. 진화론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어머니 양수는 고요한 생명의 바다이다. 우리가 물속에서 나왔듯, 해녀들은 어머니의 몸 안에서 꼼틀거리며 자라날 때부터 헤엄을 친다. 바다에 몸을 던지는 어머니 몸에 실려 바다 구경을 하고, 태어나면 더 큰 물의 세계로 나아간다. 양수 속에서 이미 물질을 시작한다. 어머니 몸에서 풍기는 바다 내음을 맡으며 젖을 빨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헤엄을 배운다. 물질하러 가는 어머니를 따라 가서 아기를 돌보며 또래들끼리 어울려 바닷가의 얕은 웅덩이에서 헤엄을 친다. 배우는 과정은 생존과정과 맞물려 있기에 어렸을 때부터 물에 익숙해지는 훈련을 쌓는다.

여름은 해녀수업의 최적기이다. 소녀들은 여름철이면 ‘테왁’과 ‘눈’(수경)을 챙겨들고 또래들과 함께 바닷가에 가서 하루 종일 물놀이를 한다. 놀지만 일을 익히는, 일과 놀이가 결합된 워크 플레이스(work place)가 바다인 셈이다. 마치 펀(fun)경영으로 유명한 사우스웨스트 항공처럼 재미는 즐겁게 일하기 위한 조건이 된다.

무자맥질하며 놀이 반, 물질 반으로 해녀로서 삶의 방식을 체득해 나간다. 놀이를 겸한 훈련의 목적은 바다에 익숙해지려는 것이므로 해산물 채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언니 몸을 잡고 헤엄치는 연습을 하고, 물질에 요구되는 모든 과정을 반복훈련을 통해 익혀 나간다. 일과 놀이가 어우러진 훈련 마당은 어쩌다 실수할 때에도 서로 웃고, 격려해주는 파이팅이 늘 함께 한다. 따뜻한 우호의 감정, 팀웍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다.

바닷가에서 헤엄치는 미래의 해녀들은 또래의 벗들과 시합도 즐긴다.  헤엄치기와 물질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혀나가는 것이다. 바다를 집 마당 삼아 놀이와 물질을 익히다보면 어느새 기량은 점차 향상된다. 가장 깊은 물로 들어가려면 가장 얕은 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처럼 어린 여자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해녀가 되어 간다.

어린 아이들이 노는 곳은 대개가 낮은 물이다. 제주도에서는 이를 ‘죄기통’, ‘죄기홍텡이’, ‘겡이통’, ‘동글랑덕’, ‘누께통’, ‘나눈게통’ 이라 부른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얕은 웅덩이라는 점. 돌이나 바위가 둥글게 둘러 쳐져 있고, 물살은 고요하고, 따뜻하기만 하다. 깊어봐야 아이들 가슴팍 정도에 닿을 정도다. 여기서부터 해녀수업은 시작된다. 마치 깊은 물로 들려면 가장 얕은 물로부터 시작해야 하듯이….

물에 들려면 물과 친해져야 한다. 어린 해녀들은 가장 기초적인 레슨을 가장 낮은 물에서 시작하며 몸으로 익혀 나간다. 몸만 익히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도 익히고, DNA에 새겨 넣는다. 자기암시를 통해 앞으로 나가야 할 어두움의 바다에 대한 두려움을 미리 걷어내 버린다.

미래의 해녀를 위한 코칭의 핵심은 자신감과 스킬, 전략을 머릿속에 그림처럼 간직하는 것이다. 코칭의 첫걸음은 잠수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는 것. 자신감을 얻으며 어린 해녀는 차츰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고, 곧 이어 본격적으로 바다 속에서 물건을 건져 올리는 기술을 터득한다. 생산 활동인 채취 행위를 익히는 것이다.

모든 과정은 철저히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 가장 낮은 단계를 통과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잠수를 어느 정도 익히게 되면 차츰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간다. 몸과 마인드가 일체가 되도록 낮은 단계에서부터 서서히 적응해 가고, 기업들이 사회 초년생을 데려다 인재로 키우듯 단계적으로 성장해 간다. 프로의 길은 어느 단계도 건너 뛸 수 없다.

바다는 싸워야 할 존재가 아니다. 대신, 적응해야 할 대상이다. 마치 격변하는 경영환경과 꼭 닮았다. 어린 해녀들은 바다에 적응하는 법부터 배우고, 코우치가 되는 윗사람들은 적응방법부터 가르친다. 배우고 익혀서 몸에 완전히 익을 때까지 같은 과정이 매일 매일 반복된다.『논어』에서 말하듯, 학이시습지(學而詩習之)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물질이 어느 정도 몸에 익으면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이때 만나는 바다가 ‘애기바당’이다. 발을 딛고 서면 물에 잠길 정도의 얕은 바다. 서서히 물 표면에서 이제는 물속으로 잠수해 들어가는 연습을 한다. 미래의 잠재 해녀는 이 지점에서부터 물속으로 잠수해 들어가는 방법을 익힌다. 해녀들은 이를 ‘숨빔질’이라고 부른다. 숨을 참고 물속에 뛰어 든다는 뜻이다.

이때부터 어머니나 외할머니는 틈틈이, 하지만 집중적으로 멘토링과 코칭을 해 준다. 프로해녀로 거듭나기 위해 인생코치, 역량향상 코치가 늘 곁에 붙어주는 식이다. 코치들은 미래의 해녀에게는 가장 친한 사람이자,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철석같은 정서적 유대로 묶여 있다. 그러기에 어린 해녀는 믿고 따를 수 있으며, 어둠의 바다에 뛰어들 수 있다. 거침없이 일렁이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목숨을 내놓고 하는 물질이라, 강한 의지와 신뢰는 어렸을 때부터 뇌리에 아로새겨져야 한다. 두려움은 이럴 때 극복된다. 이처럼 멘토링과 코칭은 해녀 수업에 있어 절대적인 요소이자, 반드시 거처야 할 필수 과정이다.

어린 해녀를 가르치는 어머니나 할머니는 해녀로써 오랜 경험을 쌓은 멘토이자, 코치이다. 평생 자신의 업(業)을 알고 매진해 온 프로 해녀들이다. 어린 소녀는 해녀로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생애 최초의 코칭과 멘토링을 피붙이에게서 받는 셈. 코치나 멘토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앞으로 생활 터전이 될 물과 친숙해지는 시간을 갖는 것은 이처럼 인간적 믿음과 유대가 전적으로 작용한다. ‘친숙한 적응’, 이것은 어느 스포츠나 기업의 업무처럼 가장 강력한 실력을 내는 밑바탕이 된다. 어릴 때 쌓인 애정, 관심, 우호, 신뢰라는 밑거름은 훗날 해녀 중의 해녀인 대상군(大上軍)으로 성장하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된다.

바다는 곧 미래 해녀들의 집이다. 아득히 펼쳐진 수평선은 그들이 앞으로 뛰어들어야 할 미지의 세계이자, 고난과 희망이 교차하는 삶의 여울목이기도 하다. 해녀라면 맞닥뜨려야 하는 미지의 경영환경, 그 바다에는 담대함과 긴장감이 감돈다. 해녀로 탄생하기 위해 이들은 오늘도 무자맥질을 치며 저 먼 수평선을 바라본다. 삶이 바다에 있고, 생활전선이 그곳에 펼쳐져 있다. 고정된 뭍이 아닌, 요동치는 바다가 눈앞에 있기에 해녀의 삶은 다이내믹 하다. 그 바다가 해녀를 키우는 힘이다. ⓒ전경일, <경영리더라면 해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