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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해녀처럼 경영하라

힘을 북돋우는 코칭의 위력

by 전경일 2010. 3. 16.

 열악한 경영환경은 해녀들에게 오히려 적극적인 개척 동인이 된다

뭍의 사람들은 출퇴근 시간에 맞춰 바삐 직장으로 향한다. 바다를 직장으로 삼는 해녀들에게도 출퇴근이란 게 있을까?
물론이다. 해녀들도 출퇴근을 한다. 출퇴근만 하는 게 아니라, 휴가도 있다. 다른 점은 작업환경이 뭍 아닌, 바다라는 점이다. 하루 일과는 바다 가장자리에서 시작되고 마무리 된다. 그런 까닭에 물결을 타고 바다로 나가고 다시 갯가로 들어오는 과정은 해녀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사이가 하루의 일과를 위한 시간이며, 생명을 담보로 한 시간이다.

해녀 코칭엔 바다로 나아가고 뭍으로 들어오는 과정이 반드시 포함된다. 바다로 들고 나는 그 사이에 본격적인 ‘업무’인 채취활동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 해녀들은 해변과 바다를 오가며 변화무쌍한 자연 앞에 적응하는 훈련수위를 높여 나간다. 그러다 보다 원숙한 역량을 발휘할 때쯤이면 자연스럽게 본격적인 생산 활동에 들어간다.

해녀들은 두 말할 나위 없이 물에서 작업한다. 물결 위에 몸을 싣고 하루 업무에 임한다. 따라서 물결 타는 기술은 대단히 중요하다. 바다에서 체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는 것은 물질성과의 관건이다. 기업으로 말하자면, 본격적인 생산 활동을 시작하기 전의 워밍업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 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지 않도록 철저하게 자원효율 시스템을 가동한다. 마치 기러기 떼가 기류를 타고 이동하듯, 해녀들은 작업하는 바다에 도착할 때까지 물결을 타고 이동한다. 물결은 견뎌 내야할 도전이자, 역설적이게도 의지해야 할 버팀목이기도 하다.

작업 장소로 가는 동안 헤엄을 치면서 체력을 소모해 버리면 그만큼 해산물 채취에 사용할 체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기러기 법칙’처럼 최소한의 저항을 받고자 한다. 이는 뭍으로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 지친 몸을 물결에 싣고 들어온다. 이런 ‘물결타기’를 통해 자연의 힘으로 뭍까지 나온다. 그래서 물질은 순응이자, 순리를 따르는 것이다. 만일 물결타기가 서툴다면 금세 파김치가 되어 버려 물질을 다녀와서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물결을 어떻게 타느냐는 과정에서부터 해녀 소질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셈이다. 물론 생산성도 결정 난다.

                                                            <사진 자료: 제주해녀박물관>

해녀로서의 삶은 녹록한 게 아니다. 무엇보다도 삶이 절박하다. 제주 해녀의 삶은 역사적으로 모질고, 험난하기만 했다. 바람 많고 물 많은 제주라는 황량한 삶의 조건이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어디 농사지을 땅이라도 넉넉한 곳이던가. 이런 척박한 삶의 조건이 어렸을 때부터 빠르게 물질을 익혀 나가는 요인이 됐다.

열악한 경영환경이 오히려 적극적인 개척 동인(動因)이 됐다는 점에서 지금 뭍의 현실을 불평하는 사람들과 전혀 다르다. 자원 없는 우리나라가 세계 교역 7위가 된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일 게 분명하다. 별다른 자원없이도 우리는 전 세계에서 1등 하는 상품을 173여개나 갖고 있다. 원광석 하나 제대로 나오지 않는 나라가 조선 1위국이며, 반도체 산업 후발주자이기만 했던 나라가 D램 생산 1위 국가이다. 어디 그뿐인가? 석유 자원 하나 없는 나라가 석유제품으로 세계시장을 뚫고 있다. 자원이 없으면, 피땀으로 만들어 낸다, 머리와 용기라는 자원 철학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해녀의 삶도 마찬가지다.

어린 소녀는 빠르면 12살, 늦어도 15살이 될 때쯤이면 어느덧 정식 해녀가 된다. 성인식을 하듯 정식 해녀가 되는 날은 그동안 멘토링과 코칭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준 어머니나 이모와 함께 바다로 간다. 이제 정식 해녀가 되기 위한 최종 점검 과정이 남아 있다. 어른들 틈에 낀 소녀는 능력을 드러내기 위해 열심히 자맥질한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고수들이 보기엔 그저 안쓰럽기만 하다. 처음 하는 물질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란 아무래도 무리다. 게다가 어른들과 함께 하는 물질이라 마치 첫 출근한 신입사원처럼 바짝 긴장되고 정신없이 바쁘기만 하다.

열심히 물질을 했으나, 텅 빈 망사리를 들고 나올 때면 누구든 기죽기 마련이다. 풀 죽은 어린 해녀가 물 밖으로 나오면 코치인 어머니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물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자신이 채취한 우뭇가사리나 소라 따위를 덜어준다. 이걸 ‘게석’이라고 부른다. 자그마한 기프트(gift)를 통해 파이팅해 주는 것이다. 해녀사회에 이어져 내려온 오랜 전통적 배려 문화다.

‘게석’은 초보 해녀에게만 주어지는 것일까? 만일 곁에서 물질하는 할머니 해녀가 있으면 ‘망사리’에 미역을 한 줌을 넣어주거나 전복을 한 개 넣어 준다. 해변엔 저절로 훈훈한 정이 퍼져 나간다. 어른 해녀들은 초보 해녀에게 훈훈한 덕담도 건넨다. 인생의 간난고초를 다 겪은 베테랑들이 보기에 얼마나 귀엽고, 한편으론 안쓰럽기만 한 소녀 해녀인가. 등을 두드려주며 위로해 줄만 하다.

“전복도 한 짐, 구젱기도 한 짐 허는 대상군이 뒈라이.”

바다에서 가장 귀하고 값비싼 해산물은 전복이다. 이 전복을 한 짐이나 캐고, 구젱이도 한 짐 가득 채취하는 으뜸 해녀인 대상군(大上軍)이 되라는 격려의 말이다. 마치 기러기들이 서로 울며 용기를 북돋워주듯, 동기부여해 주는 해녀들만의 방식이다. 기업으로 얘기하자면, 이제 갓 사회 초년병이 된 신입사원이 기죽지 않도록 여러 선배들이 용기를 북돋아 주는 식이다.

제주 해녀들은 할머니, 어머니, 어린 딸, 이렇게 3대가 아우러져 물질을 한다. 서로간의 동병상련이랄까. 여성으로서 험난한 물질을 하며 해녀들은 이렇게 팀웍을 쌓아나가고, 거칠고 힘겨운 삶에서도 희망을 키워 나간다. 물질 공동체는 바로 이런 배려와 팀웍에서 파도를 헤쳐 나갈 힘을 얻는다. 물질을 끝내고 돌아오는 바다는 언제나 출렁이며 해녀를 부른다. 오늘날 경영 리더는 어떤 바바를 누구와 함께 자맥질 하고 있을까?
ⓒ전경일, <경영 리더라면 해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