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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경영/누르하치: 글로벌 CEO

여진족(女眞族), 그들은 누구인가?

by 전경일 2010. 5. 6.

언어학상으로 볼 때 여진족은 퉁구스계에 속한다. 이들은 주로 동북방 삼림지대에서 수렵이나 어로, 농경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송화강 상류 지역에서부터 점차 세력을 넓혀나갔다. 이 지역은 한때 우리 역사의 주역 중 하나인 발해가 번성한 곳이었다. 여진이 역사의 무대로 등장한 것은 1114년 여진이 세운 금나라가 한족의 요나라를 밀어낸 때부터이다. 중국 역사의 상당부분이 타민족의 역사라는 걸 보여주는 것은 중국을 다스린 주인이 언제든 변해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아래 표는 한족과 타민족 왕조 교체시기를 잘 보여준다.



13세기로부터 19세기에 걸친 시기에 중국은 공교롭게도 원(1271~1368), 명(1368~1644), 청(1644~1912)으로 이어지는 왕조 교체기가 있었다. 원은 몽고족이, 명은 한족이, 청은 다시 여진족에 의해 세워졌다. 통사적(通史的)으로 볼 때 명(明)은 각기 다른 민족 간에 낀 샌드위치와 같은 한족 정권이었다. 그리고 다시 청(淸) 이후에 근대 중국이 들어서자 한족은 다시 역사의 무대로 등장하게 된다. 현재 중국은 명분상 다민족 통합 국가를 지향하지만, 여전히 한족이 주류를 이루는 국가 사회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한족의 이 같은 집권기는 채 90년도 되지 않은 짧은 역사에 불과한 것이다.

알다시피 원과 청은 비한족(非漢族) 정복왕조로 숫적으로 훨씬 우세한 중국(한족이 말하는 ‘중화’)를 지배했다. 이들 북방의 세력들은 남방계 중국인들과 달리 훤칠한 골격을 갖추고 있었다. 이들은 한족의 중국이 허약한 틈을 타 중국을 정복했으며, 나아가 중국인의 도움을 받아 중국을 통일하고, 오랫동안 중국의 주인으로서 대륙을 지배했다. 뿐만 아니라 현지화 전략에 성공해 오랜 기간 지배를 했다.

이들 정복민족들은 중국인으로 도움으로, 중국의 제도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중국인을 지배했다. 중국이 한족만의 나라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이들 민족의 지배가 한족의 지배를 또 다른 민족의 지배로 전환시키는 선순환적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중국 역사에서 매우 정규적으로, 일정 시점마다 등장해 참여한 세력이었던 셈이다. 이들 민족은 중국이 썩지 않게 만드는 야생의 힘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왕성한 기력은 한족의 중화가 힘을 잃어갈 때 오히려 새로운 생명의 접(椄) 붙이기와 같은 작용을 해냈다. 오늘날 우리가 동북아 역사에서 알아야 할 것은 한족에 의한 지배가 매우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으며, 중국이란 나라는 비중국계 민족에 의해 끊임없이 재배의 대상이 되어 왔다는 점이다. 때로 이것은 해양 세력인 일본에 의한 무력침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중국을 일부 혹은 전부 지배한 민족과 그들이 사용한 언어는 중원의 주인이 따로 없었음을 보여준다. 흉노(터키어), 월씨(인도-유럽어), 선비(몽골어), 척발(몽골어), 돌궐(터어키어), 위그르(터키어), 거란(몽골어), 여진(퉁구스어), 탕구트(티베트어), 몽골(몽골어) 등 중국을 지배한 민족은 수없이 많다. 우리 민족이 동북아의 주인으로서 한족의 중국과 끊임없이 무력으로 교류하였음은 지극히 당연하다. 누르하치가 등장한 16, 17세기에도 동북면에서는 이 같은 형세가 쉼 없이 벌어지고 있었다. 중원에 다시 한 번 패권 이동의 용틀임이 일고 있었던 것이다.
ⓒ전경일, <글로벌 CEO 누르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