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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통섭과 초영역인재

거물못 , 째못, 융습합(融習合)의 새로운 지식 세계(2)

by 전경일 2010. 5. 15.

그렇다면 통섭은 어디서 올까? 가장 전형적인 통섭 형태는 ‘자연을 흉내 내는 일’에서 시작된다. 인간사회를 바꾼 수많은 도구와 아이디어가 자연에서 비롯됐다. 어느 기업은 동물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연구해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통섭의 메카’로 불리는 MIT 미디어랩은 1985년 이래 매년 수 백 건 이상의 미래형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상상력 공장’이 됐다.” 대학이 통섭의 거대한 실험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의 삼성, LG, SKT 등 휴대폰 제조(혹은 서비스)회사들은 생물학적 특성을 살린 강력한 휴대전화를 만들기 위해 연구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국내 한 무선기기 제조사의 신입사원 채용 일화는 이를 잘 드러내 준다.

국내 통섭학의 주창자이기도 한, 자연과학자 최재천(생물학) 이화여대 석좌교수와 인문학자 정민(국문학) 한양대 교수의 대담은 21세기형 인재상의 남다른 접근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최 교수=이제, 장기적인 관점에서 합리적이고 유연하게 사고하지 않으면 백발백중 무너집니다. 휴대전화를 예로 들어 볼까요. 휴대전화는 이제 갈 데까지 갔습니다. 누가 더 얇게 만드느냐 정도인데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휴대전화 제조회사의 한 간부에게 ‘귀뚜라미는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는지’에 대해 얘기했더니 각별한 관심을 보이더군요. 새로운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야 합니다. 한 제자가 삼성의 입사 면접에서 이렇게 말했다더군요. “강화도 갯벌에서 수컷 게가 어떻게 암컷 게를 유혹하는지, 이런 아이디어를 휴대전화에 적용해 대박을 터뜨리고 싶다.” 얼마 후 그 회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 학생 더 추천해 달라고요. 이게 바로 경계를 허무는 통합적 사고, 통합적 연구입니다. 이게 없으면 미래 산업도 불투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생물학과 대학원에 간 국문학과 제자가 한 명 있는데 제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연암 박지원의 눈으로 생물학을 보니 잘 먹혀 들어가더라.”고 말입니다. 다산의 글 가운데 ‘어망득홍(漁網得鴻)’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고기 잡으려고 그물을 쳤는데 기러기가 걸렸다고 그걸 버릴 것이냐’는 뜻입니다. 당연히 버리지 말아야죠. 학자의 미덕은 호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동업자의 글보다는 다른 분야 사람들의 글에서 연구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 말해 동업자가 아닌, 통(統)업자의 시대, 즉 후자 간 연대와 융습합(融習合)이 학문과 경영에 요구된다는 것이다. 경영에서 지금까지 우리 인식을 지배했던 ‘파트너십’은 너와 내가 다르므로 업무 분장을 하고, 일의 결과에 따른 경제적 이득을 나누어 갖자는 역할 분담론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다보니 겉[外]간의 연대는 속[內]의 연대로 발전하지 못하고 말그대로 겉돌기만 했다. 얕은 강물을 건너기 위해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관계다보니, 본원적으로 경쟁력으로 상호발전하기에는 턱없이 미흡했던 것이다. 여러 분야의 전공자들이 하나의 동일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의 효과성은 이미 입증돼 있고, 더 많은 필요를 느끼고 있다. 이는 과거 상생(相生), 공생(共生), 동생(同生)의 관계에서 이를 통합한 통생(統生)으로 경영이 창조적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같은 지식간 협력 체제의 우위성은 다음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1950년대 초와 1960년대 초부터 각각 연구가 진행되었던 광섬유 케이블과 상온 레이저 기술의 개념화에는 이론 물리학자들의 역학이 무척 컸다.... 1969년에 제안되었던 대륙 간 광섬유 해저 케이블 프로젝트는 10년도 훨씬 더 걸렸다. 대서양 횡단 케이블은 1982년 말에, 태평양 횡단 케이블은 1983년 초에 각각 정식으로 천명되었다. 이 프로젝트에는 좀 특별한 개발노력이 필요했다. 상어가 광섬유에 끌리는 이유를 밝히기 위해 생물학자들이 참여했고, 일련의 실험이 진행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발명가 로버트 랑거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연구실의 구성원은 10~12명이다. 그들의 지식배경은 모두 다르다. 분자생물학자, 세포생물학자, 임상의학자, 약학자, 화학공학자, 전기공학자, 재료과학자, 물리학자 등등.... 우리가 다루는 연구 주제들, 이를테면 조직공학 같은 것들은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있어야 개념에서 임상실습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런 구성 덕분에 우리 연구실 내에선 거의 모든 분야의 ‘전문적 지혜’를 찾을 수 있다.”

한 예에 불과하겠지만, 앞으로는 본질적인 협업구조가 보다 중요해 질것으로 예측된다. 경영은 지식이 교환되는 장터가 될 때 보다 큰 가치를 상생적(相生的)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미 온라인상에서는 이런 경험들이 속속 축적되고 있다. 온라인게임을 예로 들자면, 디지털 광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교환이 상호보강을 드러내는 한 과정임을 잘 보여준다. 또한 네이버의 지식검색처럼 만인의 참여에 의한 지식은 집단지성을 이루며 보다 정확하고 정교해 져 나간다. 그 예로《조선왕조실록》의 번역상 오류를 지적한 네티즌들에 의해 실록 번역의 6220건이 신고 됐고, 그 중 3952건이 정정됐다. 통업(統業)의 개념이 없으면 한낱 개별적 지식, ‘낱’으로써의 지식, 경험, 고립된 가치, 분리된 일들에 불과할 것이 이제는 새로운 가치로 재구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식을 ‘헤쳐’보기만 했던 과거에는 상상치도 못한 일들이다. 이제는 그 흩어진 것들은 ‘헤쳐모아’야 한다.

20세기가 쪼개질 대로 쪼개진 전문화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통합·통섭의 시대이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만남, 자연과학과 예술의 만남, 역사와 경영의 만남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과 지식이 서로 통합할 때 더 새롭고 창조적인 지식과 학문, 문화를 창출해 낼 수 있다. 경영은 여기에 직접적인 수혜자가 될 것은 자명하다. 앞으로는 여러 관련 분야를 통합한 학제간(interdisciplinary) 과목처럼, 지식간, 인재간, 산업간 융합이 필요하다. 최근 경영계에 일고 있는 문사철(文史哲)의 유행은 경영자들이 무엇에 갈증을 느끼고 있는지를 잘 드러내준다. 경영이 포괄해 내지 못한, 혹은 그간 도외시한, 영역들이 경영을 고립된 섬으로 만들어 내며, 진정한 가치와 동떨어지게 하고 있는 절박한 현실인식에서 나온다. 다시 말해, 경영이야말로 가장 가까이서 사람과 고객의 인식, 정서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서구경영학의 본류를 이루는 분석적 사고는 이제 통합적 사고로 대체되어야 한다. 고전 시대 이후 이 짧은 지적 분리ㆍ분과ㆍ외곬전공의 시대는 물러가고, 새로운 지적 그물망이 짜여져야 한다. 분리 되었던 영역은 하나로 모아지고 뭉쳐 질적 전환을 이뤄낸 참다운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오늘날 서구의 선진화를 촉진시켰던 가치는 효율ㆍ효능주의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 보이며 경영의 퇴물로 물러나고 있다. 앞서 치고 나가 조기 관망과 아우름과 엮음과 묶어냄의 경영의 신조류를 이뤄낼 때 미래는 현재화 된다.

1더하기(+) 1은 2이다. 더하기는 누적개념이고, 곱하기(x)는 승수개념이다. 개념이 바뀌어야 경영은 다른 경지를 열어젖히게 된다. 열고자 한다면, 연계(連繫)·연대(連帶)·연동(連動)해서 차원 다른 합(合)을 이뤄낼 수 있다. 초영역을 아우르는 융합형 인재는 이미 우리 가까이 새로운 창조적 시대의 대안으로 진군해 오고 있다. 과거와는 다른 창조적 경영자들이 지적 분야에서 출현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오고 있는 것이다.

ⓒ전경일, <초영역 인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