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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통섭과 초영역인재

글로벌 토종, 토종 글로벌을 찾아서

by 전경일 2010. 7. 5.

세계화 시대에 로컬은 어떤 양상일까? 제주도 한라산을 오르면 주위를 둘러싼 크고 작은 오름들을 볼 수 있다. 내겐 그 광경이 흡사 세계화라는 거대한 흐름을 둘러싼 로컬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시간, 장소, 특정기업, 인종, 사상, 체제를 떠나 자본이 절대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다면 가장 적당한 곳으로 이동하며 새로운 시장 질서를 만들어 내는 게 세계화의 본질이다. 그러다 보니 그 결과로 로컬의 강화 내지 반대급부로 초토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금융자본, 유통자본, 산업자본의 슈퍼파워 뒤에는 주주만능주의, 비정규직의 양상, 양극화, 야만적 투기자본, 서구적 경영이론이 판치고 있다. 나는 이 점을 이미 얼마 전 출간한 경영 칼럼에서 지적한 바 있다.

“글로벌이 단일 네트워크로 이어지며 사업기회, 자산이동, 부의증감 등이 모든 면에서 ‘신출몰 급이동 초증발의 사회’를 만들어 낸다. 모든 사업은 갑자기 출몰하기도 하고, 한순간 국경을 무시한 채 이동하기도 하며, 하룻밤만에 시가총액 100조가 날아가는 초증발의 경험을 하게 된다. 초강력 휘발성이 이 사회를 뒤덮고 있는 것이다.”

선익(善益) 또는 유행 여부를 떠나 더 이상 ‘로컬은 없다.’는 점이 굳어지고 있다. 로컬 지식, 로컬 경험, 로컬 상품, 로컬 서비스, 로컬 인재는 이제 설 곳이 없어진다. 로컬로 글로벌 코드를 잡아내 이를 무기로 치고 들어가거나, 글로벌 물결에 떠밀려 로컬의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거나, 둘 중 하나다. 21세기 들어 사회전반은 물론 경영환경은 늘 양자택일의 선택지 앞에 놓여 있다. 그것이 개방촉진이냐, 폐쇄국면을 통한 현상유지냐 하는 것이다. 글로벌 자체가 로컬의 브랜드, 경쟁력, 문화 자체를 소멸시키거나, 반대로 픽업해 세계적 위상으로 올려놓는다. 언필칭 시장이 드라이브 거는(market driven) 전지구적 자본, 지식, 경험 간의 합성이 만화경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인터넷의 확산과 급격한 기술 진화는 예전의 ‘경영 365일’을 각기 다른 계절로 인식해 대응하는 ‘변화의 365 계절’로 바꾸어 버리고 있다.

이제는 칠레의 뙤약볕에서 익어가는 포도가 어떻게 한국에 수입된 와인의 맛과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지 가격이 형성되는 한 측면을 시장의 계절로 알아 차려야 하고, 한국에 수입된 <델몬트>가 오렌지 과즙을 43.3%의 브라질산과 30%의 미국산, 26.7%의 이스라엘산을 뒤섞어 제조하고 있는지 가격과 글로벌 소싱 측면에서 읽어낼 수 있어야 하고, 중동의 유가 폭등이 어떻게 한국경제의 계절을 긴 혹한기로 몰고 갈지 예측해야만 한다. 과거의 정서적 4계절이 무너져 가는 것은 더 이상 로컬이 로컬에 소속되지 않고, 글로벌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같이 대외무역수지에 의해 경제가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경제 여건에서는 이 같은 변동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 여기에는 지정학적 요인 및 정치경제적 요인도 크게 작용하는데, 분단으로 인한 기회비용의 손실은 차치하고라도 시장 자체의 크기가 내수로 견디기 어려운 내부적 모순에 크게 기인한다. 깨지지 말아야 할 것이 깨져 있을 때의 고통은 1백년은 족히 간다. 여기에 우리가 가진 문제의 본질이 놓여 있다.

90년 들어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세계는 더는 좌우 이데올로기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죽은 이념을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민족은 한반도 영토 내 거주민만 해당되는 것 같다. 다원적 가치의 세계에서 창조를 얽매는 이념의 틀이란 유효하지도 않다. 인터넷이 밝힌 새로운 차원의 세상엔 유일무이한 가치, 특정 이념에 의한 독주, 국수적 지역주의나 맹목적 사대ㆍ투항주의도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사상과 삶의 가치가 다양해진다는 것은 인간을 얽어매었던 제도, 관습, 편견, 국가권력 시스템 따위에서 벗어나 새로운 창조적 기반을 놓은 것에 해당된다. 마치 몽테뉴가《여행일기》에서 밝혔던 로마의 풍경처럼 각자 고유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몽테뉴는 이렇게 기록했다.

“로마의 장점은 이 도시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보편적인 도시여서, 각 나라나 지방의 특이성이나 차이점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로마에는 많은 외국인이 살고 있는데,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모여 살고 있긴 하지만, 마치 조국에서 사는 것처럼 생활하고 있다...... 로마에서는 프랑스인은 프랑스풍, 에스파냐인은 에스파냐풍, 독일인은 독일풍, 이탈리아의 각 지방 출신들도 각자 제 고장의 독특한 차림을 하고 있지만, 서민들조차 그 차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문화적으로 한국이 지닌 특수성은 글로벌 시대의 최대 장점이 될듯하다. 유(儒)·불(佛)·선(仙)·기독교·카톨릭 등 강력한 믿음과 신념에 기반한 어떠한 종교나 철학이 들어와도 한국형 체질에 맞게 습합(習合)되어 가는 과정은 개별적이면서도 통합적인 역량을 이 민족이 지니고 있는 방증으로 보인다. 통합의 역사적 경험은 이 나라에 왜 유독 전 세계적으로 폐기된 좌우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어느 특정한 시대의 지배적 사상이 인간의 삶을 강고하게 억누르는 곳에서 창조는 싹트기 어렵다. 싹을 틔우더라도 꽃피우기 어렵다면, 이는 로컬 경쟁력을 글로벌로 확산시키는데 장애가 된다.

로컬의 힘을 잘 엿볼 수 있는 것으로, 의학 분야에서 세종시대의 창조적 성과인《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과《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은 글로벌에서 로컬로, 다시 로컬에서 글로벌로 지식이 전파되고, 모아지며, 합성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세종 연간 의학 분야에서 최대의 숙제는 우리 민족의 체질에 맞는 의술의 개발이었다. 이는 중국 의술에 편중된 의학지식을 로컬화시키려는 의학사상 최대의 도전 과제였다. 우리와 토양이나 체질도 맞지 않는 중국의학을 빌러 다 쓰고, 더구나 외산 약재를 비싸고 어렵게 구해다 쓰는 실정은 그 무렵 백성 보건에 가장 큰 장애요인이었다.

이를 간파한 세종은 우리 땅에서 나오는 토산 약제를 활용한 우리 의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향약구급방
을 간행하고, 《향약집성방》,《의방유취(醫方類聚)》등 방대한 의학ㆍ약학 관련 서적을 편찬토록 한다. 이와 함께 《향약채취월령(鄕藥採取月令)》을 통해 우리 땅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통해 우리에 맞는 신토불이(身土不二) 및 남북의 지역차이에서 오는 풍토부동(風土不同)에 맞는 의학을 세우게 된다. 전국방방곡곡에서 채집한 토산약재에는 약 이름, 채집된 고장의 이름, 건조시킬 때의 방법까지 상세히 붙여 놓았다. 하나의 데이터도 유실 없게 한 후 정밀한 교정을 통해 방대한 의서를 발간하고, 인쇄 보급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국민 보건은 크게 개선돼 임산부들을 위한 보급판 의학서인 《태산요록(胎産要錄)》이 보급되자 농촌인구는 400%나 급격히 증가하고, 소아 사망율은 현격히 줄어들며 대퐁요를 위한 인프라로 노동인력, 생산력이 크게 확장되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훗날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중국에 갔을 때 그곳에서 팔리는 조선의 서적으로는 《동의보감(東醫寶鑑)》이 유일하더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허준의 책은 중국에서도 인정받는 국제적 베스트 셀러였는데, 이는 조선의학의 쾌거이자, 동시에 글로벌(당시의 중국 및 세계제국 원(元))의 유산을 받아 들여 창신해 글로벌로 오히려 의학지식을 전수한 것을 뜻한다. 이는 주체적 시각으로 창조적 혁신을 이뤄낸 조선의 르네상스의 한 면에 불과하다. 그 무렵의 원숙한 창조적 여건은 생산성 향상에 두드러진 영향을 미쳐 오늘날 그 어떤 생산성 향상 운동보다도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결과를 도출해 냈다. 사회 전 분야의 혁신과 창조적 풍토는 경제안정과 문화강국의 선순환적 구조를 만들어 내며 세종 시기를 과거와 완전히 차별화된 르네상스 시기로 격상시킨다.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인지와 기회포착의 창조성이 밀알이 되어 마침내 놀라운 세상을 열어젖힌 것이다.

오늘날 디지털은 과거의 아날로그 세계가 포착하지 못한 기회 선점을 가져온다. 지식은 누적적이지 않아도 된다는 면에서 디지털 세계는 선후발의 차별성이 넘지 못할 벽이 되지는 않는다. 이는 디지털이 등장할 때부터의 화두이기도 하지만, 각 영역이 굳이 과거의 유산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원이 없고, 산업 분야에 후발주자인 우리에게 가장 큰 기회가 되고 있다. 0과 1로 표현되는 디지털 원리는 이미 우리 역사와 생활 속에 체득돼 있다. 한양대 유영만 교수의 지적은 디지털 세대는 물론, 차세대 디지털이 향하는 통섭에의 가능성을 엿 볼 수 있는 귀중한 지적이다.

“지식이 사람과 사람 사이, 즉 인간(人間)을 통해 비로소 탄생되는 특이한 앎의 결정체이고, 느낌의 표현이며, 체험의 소산이라면 지식은 일상적 맥락, 다양한 프랙티스 속에서 끊임없이 재창조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체득(體得)과 체화(體化)의 과정을 관통하는 학습만이 의미의 덩어리를 삶과 연관 지어 자기 자신의 지식으로 내재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것이다.”

몸으로 익혀진 디지털의 경험은 그 짧은 출현의 시기에 견주어 볼 때 너무나 강인하게 우리 DNA에 박혀 있다. 이는 로컬이 글로벌로 진척돼 가는데 가장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 전세계에서 국가적 단위에서 인터넷이 가장 보편적으로 보급되어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IT를 통한 개방 환경은 차세대 우리의 가장 강력한 유효경험이 될 수 있다.

제주도 초가(草家) 입구에는 3개에서 4개 정도의 구멍이 뚫린 주석이나 정주목을 세우고 ‘정낭’을 걸쳐 놓는 풍경이 아직도 낯익다. 정낭을 치는 것은 가로대가 놓이는 방식에 따라 안에 누가 있는지 보여주는 것으로 일종의 민간의 출입시스템이자 안을 들여다보는 체득된 지식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디지털은 IT 분야의 도래와 함께 창발되고 도입되지만, 우리에게는 정낭과 같은 일상적 프랙티스 속에서의 체화된 지식이 있다. 이 같은 역사적 경험은 우리가 토종의 힘을 글로벌로 키워낼 수 있는 힘의 한 측면을 설명해 줄 수 있다. 수많은 신화나 전설 민담은 그 자체로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아이디어의 고갈로 허덕이는 헐리우드는 <킁후 팬더>를 통해 과거 <뮬란>이 보여주지 못했던 동양의 힘을 더욱 깊게 각성했고, 동양은 더 이상 로컬이 아니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1차물의 상영과 함께 6차 시리즈물에 대한 글로벌 펀딩이 완료된 것으로 보여줬다. 로컬은 가장 거대한 원(源) 소스이며, 창조적 경영이 이루어지는 시장이다. 그 한가운데 우리는 놓여 있다.

글로벌은 토종이다. 그간 우리는 글로벌을 넘기 위해 글로벌을 활용하고 그 속에 깊숙이 뛰어드는 것으로 해법을 찾으려했다. 하지만 우리 속의 글로벌은 오랜 역사와 경험 속에서 우리에게 토종의 힘을 글로벌로 혹장시켜 나갈 것을 주문하고 있다. 내부의 기회 발굴과 창조적 혁신, 쉼 없는 노력은 난국해법은 물론 창조경영의 극치를 이뤄낼 수 있다. 상대를 따라가서는 우리만의 방법, 표준, 룰, 문화를 선두에 배치시키기 어렵다. 답은 토세불이(土世不二)이며, 해법은 우리 몸과 감각에 아로새겨져 흐르고 있다.
ⓒ전경일, <초영역 인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