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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해녀처럼 경영하라

직무 역량과 리더십에 따른 지위

by 전경일 2010. 7. 20.

해녀 사회는 기업의 인력개발과정처럼 역량과 업적 평가가 철저히 이루어진다


해녀사회의 계층은 물질 역량에 달려있다. 능력에 따라 하군․중군․상군으로 구분된다. 굳이 ‘군(軍)’이라는 군대조직을 연상시키는 명칭으로 나뉜 점이 특이하다. 그만큼 계층 구분이 엄격하다. 거친 바다에서 일하는 산업전사라는 뜻이 반영된 것일까?

물질은 거대한 대자연과의 목숨을 내건 싸움이자, 전쟁과 다를 바 없다. 마치 기업에서 신입사원이 입사해서 관리자를 거쳐 임원과 경영 리더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과 흡사하다. 준비된 해녀만이 깊은 바다로 나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과의 대격투에는 자신의 부단한 노력이 뒤따른다. 응분의 보상은 그럴 때 찾아온다.

바닷가에서 헤엄치던 소녀는 물질을 통해 어엿한 해녀로 성장한다. 해녀사회에 첫입문하면 하군 해녀가 된다. 대략 평균 15.9세에서 18.4세 사이에 하군 해녀가 되는 셈. 하지만 여기엔 철저하게 능력이 좌우된다. 물질을 얼마나 치열하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연령보다는 오히려 물질 기량 여부에 달려 있다. ‘애기상군’이란 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는 나이 어린 소녀인데도 상군 솜씨만큼 물질에 뛰어나다는 얘기다. 그 만큼 바다는 능력주의 원칙이다. 능력에 따른 개별성과는 소득을 결정하는 요소이다. 남보다 더 채취하려는 경쟁의식은 물질 후에 다른 해녀들의 ‘망사리’를 엿보며 채취물을 비교해 보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그만큼 경쟁은 일상이 되어 있다. 

                                                  <사진 제공: 제주 해녀 박물관>
                                   
해녀가 되면 열일곱 살을 전후해서 어엿한 하군이 되고, 점차 물질에 익숙해지면서 중군이 된다. 상군이 되면 월등한 역량을 드러낸다. 어렸을 때부터 물질에 능숙해서 ‘애기상군’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군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중군에 머무는 해녀들도 있다. 열일곱 살에 첫 출가 해서 한반도 연안 곳곳과 일본바다 구석구석까지 누빈 해녀가 있는가 하면, 제주 앞바다에 머무는 해녀도 있다.

해녀 사회에서 나이어린 ‘애기상군’은 대단한 자부심이다. 타고난 재능 이상으로 노력해서 얻은 값진 결과다. 바다에서의 물질은 철저하게 자신과의 싸움이다. 수련에 따라 물질 기량을 익혀감으로써 성과와 보상이 뒤따른다. 해녀들은 이 같은 이유로 바다를 가장 정직한 사업 환경으로 본다.

물론, 채취한 해산물이 뭍으로 나왔을 때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고생에 대한 응분의 보상을 받기도 하고, 자신의 노력이 헐값에 팔려 나가는 쓰라림을 맛보기 한다. 정직은 역설적으로 가장 가혹한 바다에서나 통하는 것이다. 언제나 뭍은 물보다 더 가혹하다. 그것이 해녀들이 처한 삶이다.

조직에서 인력개발과정처럼 역량과 업적 평가가 우수한 해녀들은 바다의 생산기술자들로 ‘하군’에서 시작해 ‘중군’, ‘상군’이 된다. 그러다 언젠가 때가 되면 다시 ‘하군’으로 회귀되는 과정을 거친다. 물론 ‘중군’까지만 개발되었다가 ‘상군’이 되지 못하고 ‘하군’으로 회귀하는 경우도 있다. 마치 중간관리자급에서 자신의 역량 한계를 드러내는 직원과 같다. 기업에서라면 이들은 매우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해녀 사회는 다르다. 이럴 경우에는 그들에 맞는 바다가 기다리고 있다. 이 점이 뭍의 경영과 다르다.

해녀는 바다를 삶의 터전을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물질하기 시작해 해녀가 지닌 장비인 테왁과 정게호미를 놓을 때가 되면 해녀로서 평생의 경력이 끝난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한 여인의 평생에 걸친 고단한 물질도 마감된다. 인생의 끊임없는 순환 과정을 해녀들은 자연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겪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더욱 자신이 하는 일에 깊이 빠져드는 것일 게다.


<직무역량에 따른 해녀 명칭>

해녀들의 물질과 작업성과는 잠수 능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깊이 들어갈수록 남들이 손 못대는 해산물을 딸 수 있다. 그러다보니 물질 깊이는 해녀집단을 나누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 해녀는 잠수 능력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뉘는데, 상군은 16미터 이상을 드는 해녀를 말하고, 13미터 가량을 물속을 드는 해녀를 중군, 그보다 낮은 물에 드는 해녀를 하군이라고 한다. 각 해녀를 부르는 이름이나, 평가 기준은 뭍의 기업에서 벌어지는 기준과 전혀 다를 바 없다.


하군(下軍)

해녀로서 충분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해녀를 ‘하군’ 또는 ‘하잠수’라고 부른다. 또는 ‘수’, ‘녜’라고도 한다. ‘’이란 바닷가 얕은 곳에서나 물질하는 해녀라는 뜻이다. 하군을 가리키는 명칭이 여럿 있는데 여간 익살스럽고 재미있지 않다.

어느 조직이나 조직 구성원의 역량에 다른 명칭은 각 단계로 발전할 동기 부여의 방법이 되기도 한다. 아직은 아래 단계에 있으나, 더 많은 노력과 투지로 한 단계씩 업 그래이드해 나가도록 유도된다. 마치 오늘날 기업의 직무역량 평가를 보는 듯하다. 직무 역량상 이들을 가리키는 명칭은 일하는 장소에 따라 여러 별칭으로 불린다.

ㆍ파래좀수: 바닷가에 난 파래나 뜯을 정도로 얕은 바다에서 작업하는 해녀를 말한다.

ㆍ볼락좀수: 물질이 아직 서툴러 바다 속에 오래 잠수하지 못하고 들어가자마자 나와서 숨을 볼락볼락 내쉬는 해녀를 말한다. 표현이 익살스럽다.

ㆍ퍼뜩발: 한발도 못되는 얕은 바다를 퍼뜩 들어갔다 나올 정도로 숨이 짧은 해녀를 말한다.

ㆍ세발짜리: ‘퍼뜩발’에 비해 조금 깊은 곳에서 작업할 수 있는 해녀를 칭한다. 즉, 세발 정도는 잠수할 수 있는 해녀라는 뜻이다. 한발이 약 1m 60cm 정도니까 세발이면 약 4m 80cm까지 잠수할 수 있는 해녀를 뜻한다.

ㆍ고망좀수: 일 년에 서너 번 마을 앞 가까운 바다에서 공동 작업할 때만 나와서 소득을 챙기는 해녀를 말한다. 어느 ‘고망(구멍, 구석)’에 박혀 있다가 가끔씩 나온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일종의 얌체족을 말한다. 이들의 대부분이 폐활량이 적고 이명(耳鳴) 현상으로 고통을 받아 체력이 달리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이 낮은 기량의 해녀들은 하군 그룹을 형성한다.

ㆍ톨파리: 열심히 해보지만 늘 제자리걸음에 머무는 해녀를 가리킨다. 나이도 들만큼 들고 물질을 시작한 지도 꽤 오래 되었지만 기량이 남 같지 않아 얕은 바다에서 작업을 하는 해녀를 말한다. 이들은 대부분 ‘애기잠수바당’에서 물질하던 시절과 물질기량이 나아진 게 별로 없다. ‘돌파리’․‘똥꾼’이라고도 불리는데, 기량이 썩 모자라는 해녀를 이르는 말이다.

애기잠수: 새로이 물질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 해녀.

ㆍ족은잠수: 나이에 관계없이 물질 기량이 아직은 덜 숙련된 신출내기와 서툰 해녀를 통틀어 칭하는 말이다.


중군(中軍)

‘상잠수’와 ‘하잠수’ 사이의 중간 집단. ‘중군’ 또는 ‘중잠수’라고 하며 숫적으로 많다. 일반적으로 기량이 보통인 해녀를 말한다. 중군 그룹에는 차세대 리더들이 자라고 있다. 이른바, ‘가능성 있는 미래의 리더’를 키우기 위해 해녀 구성원들은 모진 시련과 훈련을 바다와 불턱 모두에서 전방위로 쌓아나간다. 이들이 훗날 바다의 해산물을 경영하는 해녀경영 리더가 되는 것이다. 기업으로 말하자면 중간 관리자급으로 본인의 능력에 대한 다면평가를 통해 상군이 될지, 하군으로 밀려 날지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상군(上軍)

가장 물질을 잘하고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작업해 온 해녀. 바다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을 ‘상군’ 또는 ‘상잠수’라 칭한다. 해녀사회에서의 으뜸 소집단에 해당한다. 상군은 ‘상수(上潛嫂)’․‘상녜(上潛女)’․‘큰수’․‘큰녜’․‘왕수’․‘왕녜’ 등으로 불린다. 이에 더하여 덕이 넓고도 깊어 모든 해녀의 귀감이 될만한 연장자 한 두 명은 상군 중에서도 최고참자로 대우하고 이들을 웃어른으로 모신다.


대상군(大上軍)

아무리 잔잔한 바다라도 그 밑에는 무엇이 있을 줄 모른다. 바다를 배회하는 식인상어가 목숨을 노릴 수도 있다. 이런 바다에서 생계 수단을 찾는 해녀에게 바다는 생명을 건 싸움터이다. 거칠고 황량한 전장터의 총지휘관이 바로 대상군(大上軍)이다.

대상군은 여러 역량 면에서 검증된 해녀들이다. 단순히 가장 많이 해산물을 채취한다고 얻어지는 호칭이 아니다. 실적만으로 평가되지도 않는다. 바다같이 변화무쌍한 경영환경에서는 급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 대응 역량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기에 대상군의 판단과 지휘 능력은 해녀들의 안전과 직결된다.

물질이 극성스런 마을에서도 대상군 해녀는 드물다. 대상군 해녀는 해안마을의 ‘왕자’로 군림하면서 해녀집단의 부러움을 한 몸에 모은다.

이들은 해녀 그룹의 리더로 프로 중의 프로이다. 변화가 상시적인 바다를 터전으로 목숨을 걸고 차가운 물속에 뛰어드는 이들에겐 남다른 능력이 요구된다. 마치 기업 경영 일선에 선 CEO처럼 생존을 위한 각별한 능력이 요구된다.
ⓒ전경일, <경영 리더라면 해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