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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사보기고

한줄기 빛 이론

by 전경일 2010. 7. 20.

사람은 누구나 고통을 겪게 되어 있다. 본질적으로 생명이 유한하고, 생로병사의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태어났기에 피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한 존재가 지닌 고통의 분량은 종교가 많이 덜어주고, 완화시키며, 치유케 하는 힘이 있다. 그러기에 종교는 오랜 시간 인간과 함께 해온 것일 게다.

자연적 고통이야 피할 수 없더라도, 사회적 고통은 치유 가능하다. 요는 그럴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그 사회가 만들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시스템의 우위, 가용한 자원,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관심과 열의 정도가 큰 몫을 한다. 어느 위대한 시대도 그 당대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출발했으며, 그것을 고치지 못해 무너졌다는 것을 역사는 웅변적으로 드러내 준다. 로마의 모순은 자체의 비대함으로 초기의 활력을 잃고, 관료화되어 가며, 용병을 끌어다 국방을 지키게 한데 있다. 이 점을 시오노 나나미는 자신의 걸작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잘 표현해 내고 있다.

사회적 문제의 해결만큼이나 중요한 것도 자신의 몫이다. 개인적 문제 해결 능력이 없다면, 사회적 해결을 바라는 것은 준비 없는 기대감만 불러일으킬 수 있고, 자칫 주객전도된 상황을 만든다. 스스로의 의지가 현실의 고통도, 현실의 짐도 덜게 한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자신이 주인일 수밖에 없다. 이런 인내의 과정이 한 인간을 더욱 단련시키고, 그로 하여금 인생의 진면목을 알게 한다.

나이가 들며 삶 앞에서 원숙해 지는 것은 바로 인생이란 경험을 해 왔기 때문이다. 인생(人生)의 '인(人)'자는 둘이 기대는 면이 있다. 사람 서로 간에 기댄다는 의미도 있겠고, 때로는 내가 세상에, 때로는 세상이 나에 기댄다는 뜻도 되겠다. 서로 기대가며 살아온 삶의 깊이를 우리는 연륜이라 하고, 그 연륜이 묻어나는 게 '견딤'일 것이다. 모든 위대한 삶이 다 그러하다.

진화론으로 유명한 찰스다윈의 예를 한번 들어보자. 과학 저널리스트 칼 짐머에 의하면, 다윈은 비글호를 타고 5년간이나 힘든 항해를 한 후, 영국으로 돌아와 다시 8년간 논문을 쓰며 정신없이 보냈다고 한다. 배를 타고 항해를 하고 난 뒤부터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해 정기적으로 발작 구토 증세까지 보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너무 혹사를 한 끝에 30대 중반이 된 다윈은 휴식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가 아끼던 딸 앤이 10살이 되던 해인 1851년에 독감으로 숨졌다. 연구에 몰입하던 다윈은 죄 없는 아이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을 보면서 천사에 대한 믿음을 저버렸다고 한다. 앤이 죽은 후 다윈은 신앙심이 무너져 내렸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상 이 사실을 자신의 처자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대신 다윈은 무엇을 했을까? 그는 고도의 집중력으로 세상사를 잊고, 심지어는 죽은 딸아이를 잊기 위한 듯, 필사적으로 따개비 연구에 몰입했다. 따개비 연구는 고통을 잊는 한 방편이 되었으며, 동시에 그로하여금 고통 끝에 잉태해 내는 새로운 '사고' '발견' '통찰'의 세계로 이끌었다. 만일 다윈이 죽은 딸 아이 생각에만 빠져 지냈다면 우울증까지 겹쳐 건강은 더욱 악화됐을 것이다. 고통속에서 오히려 진화론의 굵직한 뼈대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고통을 감내하고 이겨낸 자가 이룩한 빛나는 위업이었다.

우리는 고통 속에서 수많은 좌절감을 맛보지만, 희미한 등불 하나만으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삶을 전진시켜 나간다. 다윈이 겪은 일화는 우리에게 고통을 잊는 법이 아닌, 고통을 이기는 법을 가르쳐 주고, 고통 속에서 더욱 내재적 가치에 몰입하는 한 인간의 면모를 엿보게 한다. 그것이 위대성이라고나 할까?

다음의 예 또한 삶에 대한 의지와 자신의 구체적 노력이 문제해결력을 높이는 것이라는 점을 잘 알게 한다.

심리학자인 칼 오이크에 의하면, 스위스 알프스에서 한 기동연습이 실시되었는데, 헝가리인 중위가 정찰대를 내보내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정찰대가 출동하자마자 눈보라가 날리기 시작했다. 그는 부하를 죽음으로 내쫒은 것이 아닌가 하고 후회하였다. 지도를 건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흘이 지나 정찰대 모두는 무사히 귀대했다. 어떻게 했길래 그들은 되돌아오는 길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한 정찰대원이 이렇게 말했다.

"길을 잃은 우리는 망연자실하여, 이제 우리 모두는 여기서 끝장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때 한 대원이 포켓에서 지도를 끄집어냈죠. 그 덕분에 우리 모두는 야영을 하면서 날씨가 풀리기를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눈보라가 사라지자 그 지도를 보고, 원대 복귀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위가 펼쳐 본 그 지도는 알프스 지도가 아니라 피레네 산맥의 지도였다. 삶을 개선하는 방법은 사회적 문제 해결력이 높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으나, 그렇지 않더라도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노력하면 세상 어딘가에서 한줄기 빛이 올 거라는 믿음 - 그것이 나와 세상을 바꾼다.

<행복한 동행>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초영역 인재》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