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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사보기고

전쟁영화에서 내 자신 톱아보기

by 전경일 2010. 7. 20.

올 여름을 뜨겁게 달군 전쟁영화들이 극장가를 휩쓸고 있다. 전쟁의 참상, 이데올로기 및 계급 갈등, 그 속에서 피어나는 전우애, 인간애... '전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더 나아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던진 영화들이 한국전쟁 60주년과 맞물려 대세를 이뤘다. 이미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학살 현장인 노근리 사건을 다룬 <작은 연못>이 상영됐고, 학도병 권상우가 나오는 <포화속으로>가 이 여름 개봉되어 관심을 끌었다. 헐리우드에서도 '잊혀진 전쟁'으로 불리어져 온 한국전쟁에 관한 다큐멘터리와 영화가 제작되고 있다. 미 해병대가 한국전에 참전하여 1950년 11월 26일부터 12월 13일까지 격전을 치룬 장진호 전투는 <혹한의 17일>이란 제목으로 2012년 개봉을 목표로 한창 촬영 중이다.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종전 아닌, 휴전으로 일단락되며 민족 비극이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는 유래 없는 비극의 원천소스이다. 차로 한 시간 가량 달리면 DMZ가 휴전선을 감싸고 동서로 이어져 있고, 그 위 아래로 남북의 온갖 사상적ㆍ정치경제적 갈등과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극장가에서는 영화를 선보였지만, 영화보다 더 현실적인 리얼리티가 바로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다. 그래서 전쟁영화를 보는 올 여름은 더욱 무덥고 암울하기만 하다.

별로 유쾌할 수 없는 주제긴 하지만, 이왕이면 생사와 인간의 영혼, 사랑과 도덕성에 대해 묵직한 주제로 흐르는 <전쟁과 평화>같은 대작이 선보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국 전쟁을 이렇게 치열하고 비극적으로 겪었으면서도 그간 대작 영화 한편 보기 어려웠던 것은 우리의 상상력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헐리우드에서 만든다는 영화 <혹한의 17일>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영화는 한국 전쟁 당시 장진호 전투에 참가한 미 해병대의 이야기가 메인 플롯을 이룬다. 하지만 그 배경이나 소재가 우리와 결코 무관할 수 없기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된다. <플랫툰> 같은 영화가 나올지, <라이언 일병 구하기> 식이 될지 자못 궁금하다.

그런데 나의 관심을 더 끄는 것은 전쟁터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말과, 생과 사를 넘나들며 죽음의 공간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 하는 데 있다. 극한의 상황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몸짓은 인간의 본질뿐만 아니라, 세계관이 그대로 투영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미 해병대가 치룬 장진호 전투는 그런 의미에서 충분한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있다고 본다. 전쟁 자체를 미화하거나, 영웅성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닌, 다른 면에서 장진호 전투는 적지 않은 교훈이 될 듯싶다.

장진호전투는 미군이 한국전쟁 중 인천상륙작전에 이어 원산에 상륙해 동부전선에서 중공군 남하를 막기 위한 전략이었다. 당초 미 해병 1사단은 맥아더의 크리스마스 공세 작전에 따라 50년 11월 28일 함남 소재 장진호 서쪽으로 공격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장진호 일대 산 속에 매복되어 있던 중공군 7개 사단(12만 명 규모)이 영하 29℃까지 내려가는 강추위 속에서 총공격함으로써 2주간의 사투는 격발된다.

중공군의 목표는 완전 포위권내에 있는 미 해병 1사단을 섬멸하고, 함흥지역으로 진출해 미 제10군단을 섬멸, 38선 이남지역까지 진출함으로서 전쟁을 조기에 끝내고자 한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흥남 포위망을 직접 공격하게 된다. 이 시기 미군은 2주간, 격전의 전투를 치루며 시간을 번다. 한국군과 유엔군, 피란민 등 20만 명을 남쪽으로 철수시키는데 절대적 시간이었다. 이 전투에서 미군은 결국 완전 패퇴하게 되는데 이때 퇴각 명령을 내리며 스미스 소장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방향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전투에서는 패배했지만, 전략적인 목적을 이루었기에 퇴각조차, '후방으로의 공격'으로 해석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두려움의 확산을 막고, 성공의 비전을 스스로 가지게 함으로써 상황을 유리하게 개척하려는 의지가 표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세기의 전투에서 나올 법한 명언과 달리 막대한 병사를 잃으며 중부전선을 장악한 중공군은 어떤 말을 했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이런 예는 또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크레이턴 메이브램 장군과 그가 인솔하던 부대는 모두 적군에 포위되고 만다. 이때 장군은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용기백배해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전쟁이 시작된 이해 처음으로 우리는 지금 사방을 공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습니다."

사방에 포외를 당한 절망의 상태지만, 오히려 장병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주고, 이를 통해 성공적인 작전을 펼쳐 결국 승리를 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어떤 경우든 태초 이래 하늘은 지금껏 열려 있고, 희망은 늘 있다는 믿음... 자신의 삶에 다가온 고통과 절망을 승리로 전환시킨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더욱 관심을 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며 수많은 역경에 접하게 된다. 역경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그 인물은 물론, 상황조차 달라질 것은 자명하다. 흔히 이야기하는 리더십이란, 평온 속의 달콤한 꿈같은 것이 아니라,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불굴의 자세일 것이다. 누구나 포기하고 싶을 때 일어나 다시 도전하는 자세, 그 같은 행동으로 주변을 일으켜 세우는 힘! 그런 게 진정한 리더십의 전형일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떤 리더십이 총체적으로 요구되는 시대를 살고 있을까? 그것은 각자가 지닌 생각과 행동만이 뚜렷한 해답이 될 거라는 걸, 내 자신을 톱아보며 새삼 깨닫게 된다.

<행복한 동행>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초영역 인재》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