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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경영/조선의 왕들

[태종] 정치란 권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by 전경일 2010. 7. 20.

하늘 아래 태양이 두 개라면 세상은 어찌 될까. 국가 창업은 피를 마셔야 바로 서는 때가 있는 듯, 태종의 권력욕은 피를 동반한 길이었다. 하지만 피를 보고서도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다면, 그것은 무능한 권력 탓에 백성이 도탄에 빠지는 것보다 천 배는 낫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정치 9단. 음모와 술수의 대가. 쿠테타의 주역. 철저한 냉혈한이자, 무(武)의 제왕인 태종을 만나보자.

-왕을 얘기 할 때, 늘 가슴 뜨끔한 기억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처음부터 초강수를 띄우는 질문을 하는군. 1,2차 왕자의 난을 말하는 겐가? 포은(정몽주)을 쳐 죽이고, 삼봉(정도전)을 팽하고, 나의 처남들과 충령의 장인, 처남을 처단한 것을 두고 말하는 겐가? 하하... 그건 시효도 지났고, 역사의 일부가 되었으며, 내가 치정을 통해 보여준 경영 능력으로 이미 상쇄될만한 사항들 아닌가? 그것이 권력의 속성인 게고...

-말씀을 흐리시는데, 그렇게 말하는 건 치국의 도를 말하기 전에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을 구분하지 못한 결과 아닌가요?

-허어. 말씀이 지나치시군. 정치란 권력을 만드는 것이고, 권력이 이뤄내려는 의지 아닌가. 그러기에 나는 정치 행위를 한 것에 다름 아니네. 어디 그대의 주장을 조목조목 따져 보세나.

-우선, 조선 창업과 왕위에 오르게 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온갖 어지러운 난국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좋네. 자, 그럼. 조선 창업부터 얘기해 보세. 고려는 단언컨대, 망해야 될 나라였네. 북으로는 오랑캐가, 남으로는 왜구의 준동을 막지 못했네. 게다가 변화하는 동북아의 정세도 몰랐고, 국운에 대한 판단도 흐렸네. 게다가 우왕은 끊임없이 신돈의 아들이란 얘기가 나돌 정도 아니었나. 물론 공민왕 시절, 쌍성총관부를 회복하고, 홍건적의 침입을 막고, 나름 개혁을 하고자 몸부림친 건 인정하네. 그러나 보게나. 고려 경제는 이미 파탄 나 대외 결재수단인 은마저 완전 바닥난 IMF 상태 아니었나. 백성들은 죽은 자식을 서로 바꿔서 먹는 일까지 일어날 정도였네. 이게 국가가 할 일인가? 자네 시대의 유행어로 "국가나 나한테 해준 게 뭐냐?"고 백성들이 울부짖을 때 소위 개혁파라 하는 자들이 보여준 것은 무엇인가? 점진적 개혁이라고? 거대 토지를 점유한 수구 친원세력, 개혁의 대상이 개혁을 한다고?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

-그렇다면 국가를 바꾸는 일은 유학을 국가철학으로 삼은 조선 창업자들이 행할 수 있던 일입니까?

"역성혁성을 두고 하는 말인 겐가? 낡은 부대에는 새 술을 담을 수는 없는 법! 나는 고민 했네. 뼈까지 바꾸는 개혁을 할 것인가, 혁명을 할 것인가? 결국 후자를 택한 셈이지.

-그래요. 정 그렇다고 할지라도 삼봉 정도전의 역할은 실로 지대한 것 아니었습니까? 조선 건국의 정신적 지주였던 그까지 팽한 것은 무엇입니까?

"순진하긴! 그게 권력의 속성이라는 거네. 삼봉은 실로 대단한 사람이었네. 철학적 깊이나 탁월한 국가 경륜이나, 한양 천도를 단행케 해고 궁궐을 지은 거나, 사대문, 도성의 주요 건축물의 이름을 지은 거나, 모든 면에서 조선을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었지. 게다가 <조선경국전>을 완성하기도 했지. 경국(經國)이라? 국가를 경영한다는 뜻 아닌가?

헌데 그는 권력에 너무 가까이 다가갔어. 나는 조선의 정치를 군왕 중심의 체제로 끌고 가려했고, 그는 신권정치를 하려 했지. 삼봉은 권력이 한 지점으로 수렴되는 특징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게야. 이상주의자가 국가를 지배할 것 같은가? 권력의지가 가장 강한 자가 권력 사냥에 나서게 되어 있는 법이네. 아까 자네가 말한 1,2차 '왕자의 난'도 실은 국가 창업의 정당한 지분을 나는 주장한 것이고. 삼봉을 내 친 것은 그가 권력의 최상단까지 쥐고 흔들려 했기 때문이네. 게다가 그는 강씨 편에 서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고 방석을 끼고 돌지 않았나?

-정말 대단하시군요. 역사를 나 아니면 안된다는 아집과 독선으로 해석하는 건 아니신지?

"무슨 말인가? 시대에 맞는 리더십이라고 해두세. 그대들은 이와 같은 전철을 전혀 밟지 않고 있단 말인가?"

-무슨 말씀이신지?

"세월은 흘러도 정치의 본질은 같다는 걸세. 그게 권력의 속성이야. 그게 정치의 요체야. 허나 역사의 무대에서 춤추는 광대와 달리 백성이 역사의 주역이네. 그들이 나라고, 전부야."

태조보다 조선 창업에 더 큰 공을 세운 태종. 그는 이처럼 모순된 사람이기에 복선과 행간의 의미를 다시 읽겠금 한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새로운 정치 국면을 만들어 냈기에 역사에 등장하는 국왕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