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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경영/조선의 왕들

[세조] 대를 이은 업을 어찌할꼬

by 전경일 2010. 7. 20.

권력에 어찌 나눔이 있을 쏜가. 나이 어린 조카가 어찌 나라를 경영할 수 있겠는가? 자칫하다간 조상들의 창업이 한낱 물거품이 되어 버릴 수 있는 것, 내가 나서서라도 창업가의 지분을 지켜야지. 허나 이를 두고 나의 권력욕 때문이라고만 한다면, 이 또한 명분 없는 처사일터... 헌데 측근들은 왜 한사코 나를 두둔하며 권력 잡기를 종용하고 있는가? 나를 위해서인가? 저들의 권력욕을 드러내고 싶어서인가? 어차피 피를 보지 않으면 권력과는 멀어지는 법, 그럴 땐 내가 정적의 칼끝에 겨누어 지는 것. 그러니 선제공격이 최선의 방어일 터.

어린 조카를 밀어내고 왕좌를 꿰찬 세조. 그는 어떤 경위와, 어떤 목적을 가진 왕이었을까? 조카의 뒤를 돌보며 왕실 측근으로써, 종실 어른으로 부왕의 형제인 양령이 그리 했고, 효령이 한 방식을 왜 선택하지 못했을까? 이제 조선의 7대왕 세조를 만나보자.

-왕 만큼 비정하고, 권력욕에 눈이 먼 이가 없다고 하는데...

"왜 그런가? 내가 대답하기보다 그대들 후대 사가들이 먼저 얘기해 보게.

-왕께서도 알다시피 문종이 서거하고 3년상을 치뤄야 하는데, 스스로 쿠테타의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서둘러 탈상케 하고 단종의 혼사를 서두르게 된 것 아닌가요? 그걸 기회로 금성대군, 화의군을 위시하여 단종 측 사람들을 제거한 것 아닌가 말이죠. 측근을 옥좨니까 결국 어린 왕이 선양하겠다고 선언하게 한 것 아닌가 말이죠. 그때 왕께서는 눈물을 흘리며 보위를 사양한다고 하셨죠? 그게 진실이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보다 왕께서 잘 아실텐데요.

"왜 그것이 비정한 짓이라서? 음-. 정치라는 게 그런 것 아닌가. 정치인이란 악어와 같은 거짓 울음을 보여야 할 때가 있는 법이네. 이 나라 조종이 영속하기 위해선 그만한 비장미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건 나나 선왕이나 모두 마찬가지일 텐데..."

-그래서 권력 찬탈은 생각대로 잘 맞아 떨어졌나요? 명분이 더 중요하지 않았나요?

"한껏 가시돋힌 말이로군. 왜? 나의 집권을 인정하지 않는 이른바 대역죄인들의 단종복위운동을 말함인가? 그래서 나는 역사에 죽고, 저들 사육신은 영원히 사는 그런 명분을 획득하거라고?

-그렇죠. 역사란 게 뭔가요. 실리를 얻어도 명분이 없으면 그건 한때의 실리에 불과하고 그럴 때의 권력과 포부란 한낱 종이장 위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곧 말라버리는 것 아닌가 말이죠.

"음-. 꽤나 깊이 찌르시는군. 그런 생각이 후세 사가들의 생각인가?

-아무튼 그렇다는 거죠. 역사는 명분을 세우는 것이라는 걸...

"이 보시게. 잘 생각해 보게. 후대들이 말하듯, 대역죄인 사육신들이 명분하나 때문에 목숨을 버렸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이야말로 내가 일으킨 계유정란 이후 공신 세력이 득세하자, 권력이 소외되어 이를 만회코자 역모를 일으킨 것 아닌가? 권력과 무관한 채 오로지 의(義)와 절(節) 때문에 지금 노량진 산 기슭에 묻혀 있다고 생각하는가? 왕실을 끼고 누가 권력을 잡느냐 하는 것은 예로부터 '신(臣)'을 칭하는 자들의 불온한 욕망인 것을. 불사이군(不事二君)이 어찌 그들을 정당화해줄 것인가. 세종대왕 재임기부터 저들 책상물림들에게 연구만 하라 했건만, 권력의 중심부로 나서고자 발버둥 치더니 그 꼴이 뭔가? 결국 떼죽음과 집현전 혁파로 이어지지 않았는가?"

-왕께서는 대단히 주관적이신데요. 그렇다면 훗날 숙종 조 때 이 노량진 기슭에 그들의 충성과 의를 추모하고자 민절서원을 세운 것은 충과 무관하다는 것입니까?

"내가 언제 그리 풀이했나. 충이란 왕을 위한 것이네. 왕은 충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고. 그들은 높임을 받았고, 그로써 살아났고, 왕들은 그 수준을 요구하면 되는 거네. 그게 정치라는 거지.

-역시 대단하시군요. 왕께서는 사육신을 권력욕에 빠진 사람들로 폄하하셨는데, 그렇다면 왕의 측근들의 이후 행태는 어땠습니까? 한명회는 왕과 혼인을 맺고, 공신끼리 겹사돈을 맺는 등 모든 정국이 그들 중심으로 돌아갔고, 모든 혜택이 그들로 귀속되지 않았습니까? 여기 어디에 백성이 있습니까? 정란의 대가치고는 너무 한 것 아닙니까?

"그 점은 나로서도 부정할 순 없네. 그런데 말야. 왕이란 게 뭔가, 결국엔 자리보전을 위해 이리떼 같은 신하들과 권력을 나누는 거야. 사육신은 그 권력을 상왕을 중심으로 싸고 돌려했고, 정난공신들은 나를 두고 자신들의 뜻을 이루려 한 것이지. 군왕의 사랑이나, 국가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네. 결국 누가 더 많은 파이를 갖느냐는 거지. 그런 면에서 나는 그들을 적당히 이용한 거네."

-그 결과, 엄청난 국가적 부패 고리를 만들어 냈군요. 탈세와 권력세습과 모든 이권의 독점과... 심지어는 홍윤성이 숙부를 때려 죽인 살인까지 눈감아 주는...

"나의 허물만 되짚지 말게. 나는 그래도 민생안정을 위해 정부 재정을 줄여 백성들의 조세부담을 덜어주기도 했네. 그 경감액이 2/3나 되었지. 어디 그뿐인가? 조선의 최고 법전인 <경국대전>을 편찬하지 않았는가? 이로써 조선은 법을 통한 국가 경영이 이뤄지게 되었네.

-후세에 하실 말씀이 있다면?

"나를 보아 주겠나? 말년에 내가 차례를 어기고 왕위를 이어받았으나 재주가 없고 덕이 없어 옛날의 정사를 변경한 것이 많았다며 자기반성을 하였네. 나의 부덕함을 후세가 탓하는 건 인정하겠으나, 그 또한 정치의 한 면이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네. 정치는 비정하기도 하지만, 회한에 젖은 눈물이 늘 뒤따르는 것이지. 잘하든 못하든 아쉽기만 한 것 정치네. 그걸 알아주게나."

전경일. <창조의 CEO, 세종>의 저자. 인문경영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