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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사보기고

살아 있는 것들은 깨어나라

by 전경일 2010. 12. 20.

얼마 전 각종 언론에 '700년 만에 꽃을 피운 고려시대 연꽃 씨앗' 이야기가 회자 되었다. 경남 함안군 성산산성에서 발견된 목간(木簡) 속에 씨앗 10개가 들어 있었는데, 그 중 3개가 꽃을 피운 것. 해당 지역의 지명을 따 '아라홍련(阿羅紅蓮)'이라고 이름 붙인 이 연꽃은 은은하고 부드러운 멋이 영락없이 고려시대 탱화 속 꽃 자체이다.

함안박물관과 농업기술센터에 의하면, 씨앗 담그기를 한 지 5일 만에 싹을 틔우기 시작했고 첫 번 째 잎이 나온 다음 여러 개의 잎이 뻗어 나오며 정상적인 성장을 보여 왔다. 이후 첫 꽃대가 출현하며 꽃봉오리가 터진 것으로 알려진다.

700년 전 고려시대 씨앗은 어떻게 오랜 시간 땅 속에서 움을 틔우지 않고 있었을까? 여기에는 생명이 지닌 놀라운 힘이 숨어있다. 씨앗은 종자 스스로 발아 여건을 갖췄다고 해도 주변 여건이 발아에 부적당하면 종자 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 이 경우를 가리켜 '휴면(休眠)' 상태라고 부른다. 만일 종자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이때는 진정한 의미의 휴면이란 뜻에서 '진정휴면(眞正休眠)'이라고 한다.

고려시대 연꽃 씨앗은 700년을 내리 휴면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추측컨대, 씨앗은 어떤 이유로 발아에 적당한 환경을 만나지 못해 깨어나기를 포기하고 깊은 잠에 빠져있던 것일 게다. 그러다가 환경이 우호적으로 바뀌자 마침내 휴지(休止) 상태를 깨고 오늘 우리 눈앞에 꽃망울 터뜨린 것이다.

생각해 보면 발아에 적당한 환경이 언제 찾아올지 기약할 수 없었지만, 고려시대 연꽃 씨앗은 오랜 기다림 끝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씨앗이 지닌 놀라운 내력(耐力)이다. 종자가 어린 싹으로 자라나려는 강한 의지와 능력을 가리켜 종자세(種子勢)라고 하는데, 이 고려 연꽃 씨앗은 생존하려는 의지가 무엇보다 강했을 게 분명하다.

만약 씨앗이 깨어나야 할 때 임에도 불구하고 '숲속의 백설공주'처럼 계속 잠에만 빠져 있다면, 이때는 왕자의 입맞춤이 필요하다. 이런 걸 휴먼타파라고 하는데, 인간의 인위적 노력이 씨앗을 흔들어 깨우는 것을 말한다. 연구팀의 노력은 씨앗에겐 말 그대로 '왕자의 입맞춤'이었을 것이다.

씨앗을 발아케 하기 위해서는 때로 인위적인 방법이 동원되곤 한다. 씨앗 표피에 상처를 주거나, 황산 또는 에탄올 처리를 하거나, 종자를 찌르는 등 자극을 주게 되면, 씨앗 스스로 지닌 발아억제물질(發芽抑制物質)이 제거되며 발아하기도 한다. 때가 아니면 움을 틔우지 않으려는 종자 본연의 의지라고나 할까.

고려연꽃을 보면서 불현듯 자연의 놀라운 힘을 우리 인간 삶에 비춰 보게 된다.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불가(佛家)에서 얘기하는 깨달음의 순간이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하다. 자연의 이 신비스럽고 억척스러운 현상을 통해 몇 가지 배우게 되는 게 있다.

우선은 '때를 기다리는 인고의 자세'이다. 세상만사는 다 때가 있다. 지금이 '그때'가 아니어도 언젠가는 하늘거리는 미풍에 연꽃잎을 물고 서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은 어떤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삶을 지탱시키는 힘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연꽃의 그리움을 알고 있는 씨앗만이 생존에의 가능성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이는 썩고 마는 뭇 씨앗들과는 전혀 다른 운명이다. 우리네 삶도 이렇지 않을까? 지금의 고통을 견디고 부활할 날을 위해 부지런히 격정의 몸부림과 인고를 감내해 내는 것, 그런 게 인생살이가 아닐까 한다.

다른 하나로는, 세상만사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에는 휴면 상태에 놓여 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일 게다. 세상을 살며 어찌 모든 일이 다 내 뜻과 같이 되겠는가? 스스로 생명을 내던져 버리는 '진정휴면' 상태가 아니라 각성된 자아를 갖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이런 생각도 가능하겠다. 때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오지 못했을 때에는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 씨앗에 주는 자극이 이것이다. 자극은 어제까지만 해도 자각하지 못했던 자아를 알게 한다. 씨앗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알고 떨쳐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연꽃 씨앗이다! 그게 바로 나다!" 이와 같은 각성 말이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잠재성을 모를 때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통해 인생이 바뀌는 경우가 있다. 이런 걸 보다 과학적으로 수행하는 걸 코칭, 멘토링이라 부른다. 위대한 삶을 산 사람들의 전기를 읽으며 그와 같이 되고자 하는 각성도 이와 같다. 훌륭한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인생의 전기를 마련하는 것도 이와 같다. 내가 누군지 자기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고 본래의 자기를 찾게 되는 것도 이런 것이다.

자연 현상에는 인생의 비밀을 푸는 엄청난 열쇠가 들어 있다. 그것은 깨달음을 가져오고, 철학을 가져오며, 문학과 예술을 열어 나가는 힘이 된다. 하나의 연꽃잎을 통해 고려시대 사람들은 물론 그들의 순수한 멋과 불상이 지닌 미소를 만나는 느낌이다.

지금 우리는 어떤 씨앗으로 세상을 맞이하고 있는가? 깨어나라, 모든 산 것들은 죽음과도 같은 깊은 잠을 떨치고, 껍질을 깨는 고통을 받아 들여라. 삶에로의 전진을 위해 새로운 각성을 하라. 태양은 눈부시고, 별들은 빛나며, 여기 내가 이렇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초영역 인재》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