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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통섭과 초영역인재

나무 사이로 경영이 흐른다

by 전경일 2011. 2. 10.

잎잎이 하늘을 뒤덮는 계절에는 볼 수 없는 적나라한 숲의 세계를 눈 내린 겨울 숲에서 찾는다. 가만히 살펴보면 나무와 나이 사이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있다. 이런 거리를 두고 ‘격(格)’이라고 부르던가. 개별 나무들의 생존과 공존이 어우러진 일정한 거리, 그 거리가 유지될 때 나무들은 숲의 하모니를 이룬다. 나무들의 일정한 거리는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숲이 이동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 숲은 고정되어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시간을 두고 서서히 이동한다. 숲을 잠시 동안만 찾는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을 뿐이지만 말이다. 그 방식이 ‘일정 거리 확보 후, 확장’ 방식을 취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느 누구도 방해받지 않고, 어느 나무도 타인의 공간을 침해하지 않는 나무들의 포지션을 볼 때면 경영학에서 얘기하는 ‘균형포지셔닝(Balanced Positioning)’이란 말이 떠오른다. 나무 사이의 일정한 생존을 위해 상호 합의된 공간을 말한다. 이런 원리가 숲에 적용되어 있기에 숲은 숲다운 풍요를 누릴 수 있다.

나무들이 어우러진 기막힌 균형감각과 성장 방식을 보며, 성공적인 인생과 사업이 지향하는 ‘균형’이 무엇일까를 가늠해 본다.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성공을 이뤄내는 일치된 원칙이란 게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

이런 질문에 두 가지 다른 예를 끌어와 보자. 골프계의 전설 벤 호건(Ben Hogan)의 말을 인용해 풀어보는 것도 좋을듯 싶다. 그는 “반복성은 숙달과 통제의 핵심이다.”라고 말한다. 자신의 직업적 성공을 가져온 힘이 바로 이것이란다. 하나의 원칙, 하나의 성공적인 방식을 개발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실험해 보고, 적용해 보는 반복성은 균형포지셔닝의 한 축을 이룬다. 호건은 냉철함과 전설에 가까운 반복성으로 유명했다. 그는 어떤 프로 골퍼들보다 연습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손에서 피가 날 때까지 연습했다. 호텔방에서조차 연습을 계속해 밤이 늦도록 벽이나 의자에 공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동료 골퍼들은 그와 맞닿은 옆방을 피할 정도였다. 반복적인 그의 주의력은 골프공에까지 미쳤다. 골프공을 자신의 방에 가져가 화장실 욕조에 띄우고 어떤 공이 항상 같은 방향으로 도는지 유심히 관찰하면서 골프공 내부에 고무로 감긴 부분의 대칭 여부를 확인했다. 그는 완벽하게 반복되는 골프공만 보관하고 나머지는 모두 버렸다. 반복을 통해 완벽성에 이른 배경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였다.

균형포지셔닝의 다른 한 축은 인접 거리다. 마치 나무들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일정한 거리를 확보하고, 그 다음 성장을 도모하듯, 인접 분야에로의 관심과 집중은 앞에 이룬 반복성의 성공 사례를 누적적으로 이어간다. 숲의 확장도 이와 같은 방식을 띤다.

이런 숲의 원리를 경영에 빗대어 보면 어떨까?

기업의 성장도 나무 사이의 격(格)과 같은 면이 있다. 상품의 가치, 차별성, 시의적절성 등 모든 면에서 다른 회사와 다른 격(이를 품격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을 유지하는 것은 기업에게 지속성을 가져오는 주요 원칙이 된다. 이런 걸 가리켜 기업은 ‘경쟁력’이란 말로 압축해 표현하곤 한다. 하나의 성공 방식이 완성되면, 숲이 이동하듯, 기업들은 수익을 가져오는 분야로 이동한다. 이때에도 주요 원칙으로 성장을 동반한 반복적인 공식이 적용된다.

인접 분야로의 확장은 이럴 때 이루어진다. 앞서 이룬 성공 패턴을 반복해 나간 것이다. 경영학자 크리스 주크는 이런 방정식을 꾀한 대표적인 회사로 싱가포르 소재 올램을 꼽는다. 면화, 밀, 설탕, 쌀, 커피, 팜유 등 식품류에 주로 투자하고 있는 올램은 현재 35개국에 진출해 있다. 각지로 진출하며 이 회사는 가장 성공적인 방식을 여러 나라에서 반복 실행했다. 예컨대 기존의 강력한 경쟁력을 통해 생산자를 바꾸어 왔는데, 그것은 경쟁력 있는 업체를 통해 시장이라는 숲을 채워 나가는 식이었다.

올램의 성공 바탕에는 생산물, 제품, 생산지를 이동하면서 일련의 인접 분야로의 이동이 크게 작용했다. 인접 국가에서는 자국의 형편에 맞는 농업 생산물을 취급하라는 요구가 이어졌고, 그런 제품을 취급하면서 올램은 다른 나라의 시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벤 호건의 투철한 반복 정신과 올램의 인접 분야로의 진출은 경영학에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개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경쟁적 요소를 갖추어야 보다 큰 성장 기회가 마련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다음으로는 뭉친 눈을 산꼭대기에서 아래로 굴리듯, 유관 분야로 계속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성공에 관한 무수한 조언들이 있지만, 변하지 않는 원칙은 이런데서 찾아진다. 첫째, 일정 거리를 두며 속해 있는 생태계에 적응하는 것, 둘째, 반복성을 통해 확장의 여지를 확보하는 것. 셋째, 유관 분야로 계속 확장해 나가는 것. 개인이 지닌 뛰어난 습관이든, 수익성에 골머리 않는 기업이든 이 세 가지 원칙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겨울 눈 밭 사이에 드러나는 나무들의 배열을 보며 겨울 숲은 온갖 치장을 떼어 버린 가장 적나라한 경영 현장을 닮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눈밭을 걸으며 보고 듣고자 하는 자세만 있다면 우리는 많은 생각을 얻을 수 있다.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초영역 인재》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