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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통섭과 초영역인재

빨판상어를 잡아 죽여라!

by 전경일 2011. 2. 25.

스칸디나비아 표르드(fjord: 좁은만)해협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곤 한다. 얼음에 갇힌 바다에서 배가 꿈쩍도 하지 않는 현상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는 것이다. 얼음이 배를 꽉 물고 놔주지 않아 생기는 현상이 아니라, 알 수 없는 힘이 배를 정지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선원들에게는 신비스럽고, 두렵기만 곳이었다. 과연 그곳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항해가 시작된 오랜 옛날부터 이런 현상은 종종 나타나곤 했다. 로마의 역사가 플리니에 의하면, 황제 캘릴굴라의 함대 중 한 척인 갤리선이 어떤 바다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모든 함대의 전진이 갑자기 정지되어 버렸다고 한다. 움직일 줄 모르던 배는 한 선원이 갤리선의 키에 달라붙어 있는 한 마리의 빨판상어를 발견하여 죽여 버리자 배는 다시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배의 용골(龍骨)에 빨판상어가 달라붙는 일이 종종 발견되었으므로 이 상어가 배에 마술을 거는 것이라고 믿었다. 빨판상어의 무게가 배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빨판상어 특유의 영력(靈力)이 배에 주술을 거는 것으로 믿어져 왔던 것이다. 후세에 이르러서도 항해자들은 이와 똑같은 성가신 현상에 직면하곤 했다. 그때마다 선원들이 배를 전진시킬 수 있는 방법은 해수를 노나 몽둥이로 내려치거나, 총을 쏴 갈기거나, 해면에 기름을 뿌리거나 또는 승무원 전원에게 갑판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마구 뛰어다니게 하거나, 배를 요동칠 정도로 흔들어 보는 것이었다. 바다 저 밑에서 벌어지는 뭔가 이상한 일을 정확한 원인도 모른 채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탈출해보려고 애쓴 것이다.

이처럼 바다 밑에서의 신비로운 현상은 오랫동안 불분명한 채로 남겨져 있었다. 이런 현상은 배가 아무리 힘이 세어도 마찬가지였다. 강한 바람이 불고, 증기기관 시대가 되었어도 배는 어느 지점에 이르러 갑자기 전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피하고 싶은 놀라운 현상을 알기 위해 과학자들이 몰두했다. 해양학자 프리초프 난센도 그 중 하나였다. 그는 탐사선 프람호로 빙하가 둥둥 떠 있는 지점에 접근했을 때, 같은 현상에 직면했다. “엔진을 풀로 가동시켰는데도 배는 거의 손을 쓸 수가 없었다.”고 그는 적고 있다. “얼음 가장자리 2~3m 이내까지 전속력으로 갔는데, 프람호의 중량과 배가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추진력에도 불구하고, 배가 얼음에 부딪친 충격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 것이다. <요동치는 바다>의 저자이자 해양학자인 A.B.C 휘플에 의하면, 결국 이 옛날부터의 어려운 문제를 해명한 사람은 스웨덴 해양학자 V.W.에크만이었다.

에크만은 표르드의 해수가 현저히 층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색인 것을 파악했다. 하천에서 배출되거나 해빙이 녹아서 흘러나온 엷은 민물 층은 고염분이다. 이 물은 밀도가 높은 외양수 위를 떠돈다. 물이 밀도가 낮은 공기와 만나는 곳에는 수면파(水面波)가 형성되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밀도가 서로 다른 물도 층과 층을 이루며 그 사이에도 물결이 발생한다는 것. 만약 배의 용골이 저밀도 물의 얕은 표층을 지나 아래의 그보다 고밀도인 물까지 닿아 있다면, 배의 운동 때문에 성질이 다른 두 물 사이엔 경계를 따라 수중파의 열(列)이 생기게 된다. 이것을 내부파(internal wave)라 하는데, 이 물결은 시속 1.6~3.2km의 느릿한 속도로 나가는 성질이 있다. 그런 이유로, 내부파 영향으로 배는 아무리 속도를 내도 내부파 속도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배를 가속시키면 시킬수록, 돛과 노, 스크류에서 나오는 힘은 배의 전진운동에 쓰이지 않고, 오히려 내부파의 진폭을 증대시키는 데 흡수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배가 탈출할 수 있는 겨우란, 층을 이룬 표층수를 벗어났을 때에나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실험실에 유리벽 물통을 만들어 놓고 염분 농도가 서로 다른 물의 층으로 채워놓았다. 그리고 각 층은 각각 다른 빛깔로 물들여 놓았다. 그리고 모형의 배가 물을 가로질러 가도록 했다. 해면의 작은 물결 아래에, 밀도가 높은 층의 물과 그 물 사이의 경계가 만들어 지면서 모형 배는 강력한 저항력을 받고 있었다. 이로써 배의 전진을 가로막는 자연 현상이 풀린 것이다.

이러한 물을 해양학자들은 이후 ‘죽은 물(dead-water)'이라고 불렀다. ‘죽은 물'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물의 위 아래 밀도차로 인해 배가 움직일 수 없다는 점, 항해자들은 물의 운동이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이 비밀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

자연 현상인 ‘죽은 물’을 경영에 대입해 보면 어떤가? 우리는 조직의 상층부와 하층부의 정보나 커뮤니케이션 밀도차로 인한 상호 몰이해를 매번 경험하고 있다. 조직의 소통 방법은 대상의 수준과 맞아야 한다. 그러나 다양한 ‘밀도차’는 배(조직)가 1m도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게 하곤 한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많은 조직에서 해왔던 일은? 구성원들에게 빨판상어를 잡으라는 식의 지시가 대부분이었다. 경영에서 벌어지는 무효율의 혁신운동이나, 의례적 조직개편, 의미 없는 전사운동 같은 것들은 모든 성원들을 빨판상어를 잡게 하거나 갑판에서 뛰게 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아이러니 한 점은 빨판상어와 상관없는 이 일이 계속 전승돼 아주 오랫동안 선원들이 그렇게 해왔다는 것이다. 21세기 경영 구루들의 미신이 설득력을 상실한 다음에도 기업은 물 밑에서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 보려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빨판상어를 잡는 편이 선원들의 두려움을 누그러뜨리기에 더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실은 그 두려움은 경영자의 몫인 게 대부분이다. 
ⓒ카인즈교육그룹,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초영역 인재》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