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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통섭과 초영역인재

쪼개고 쪼갠 파편적 지식이 남기는 것들

by 전경일 2011. 5. 19.

경영의 문제들을 쪼개고 쪼갠 후에 궁극적으로 남는 것은 무엇일까? 현대 경영학이 서구의 경영이론을 충실히 반영한 것이라는 주장에는 의심의 여지없다. 합리성, 효율성, 기능성, 효과성을 내세우는 경영철학은 다분히 분석적이며 경제적이고, 사물과 현상에 정의내리기를 즐겨한다. 그 자체로 분석적 접근은 그 동안 기업과 경영전반의 문제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어 왔다. 하지만, 분석만으로는 총체적이고, 통합적인 시각을 획득하기에는 아무래도 미흡하다. 서구와 동양의 사고방식의 차이는 문화사적으로 잘 드러난다. 그 만큼 접근법이 다르다는 얘기다. 지도를 둘러싼 ‘바라보는 세계’에 대한 인식은 대표적인 ‘차이’를 잘 드러내 준다.

“조선의 지도는 도면식과 회화식이 있다. 회화식 지도는 서양과 동양에서 18~19세기에 걸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양식이지만, 서양은 지리상 발견 이후 보다 과학적인 지도를 만들기 위해 평면화 된다. 조선과 서양의 회화 지도는 의미 정보와 심미 묘사에서도 차이가 있어서, 서양은 다분히 서사적이고 동양은 서정적이다. 다만 대상이 지닌 지리 정보와 거시 풍경의 감정을 포괄하려는 뜻은 비슷하다. 조선의 회화식 지도를 그리기 위해서는 화원(畵員)과 상지(相地)가 합작해야 하며, 산사(算士)와 학자들이 함께 산형(山形)과 수파(水波)를 심정(審定)한다.” 다시 말해 동서양의 지도는 공히 회화적인 면에서는 일견 비슷하지만, 동양의 지도는 보다 서정적인 묘사에 치중한다는 얘기다. 그러다보니 지도 제작에 화원이 참여하고, 풍수와 길흉을 따지는 일이 지도에 반영된다.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상에 나타나는 산천과 경계의 표시는 입체적이며 문화적이다. 내용을 가득 담기 위해 3D로 산천경계의 랜드 마크들을 표시했다. 이는 조선 사람들이 바라보는 세계관이 다분히 입체적이었다는 얘기다. 능(陵), 역(驛), 창(倉), 방리(坊里), 산성(山城), 진보(鎭堡), 고현(古縣) 등을 표현할 때에는 이를 기호화하는 새로운 방식을 활용했다. 산줄기를 굵고 가늘게 표현함으로써 산의 크기와 높이를 알 수 있도록 했는데, 이는 사람의 삶의 터전으로서 지형을 이해하기 위해서 였다. 분수계(分水界)와 산줄기가 입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우리의 인식체계가 반영된 것이다. 이처럼 조선의 지도에는 당대인들의 국토관, 세계관 등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산천을 보고 지도를 그리는 개념이 다르듯, 동서양의 경영에 임하는 관점도 상당부분 다르다. 그러나 이런 문화적 차이는 그간 서구식 경영이론의 팽배에 떠밀려 비과학적이고, 비체계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왔다. 가까운 일본의 예이지만, 승진자의 이름을 종이에 적어 선풍기 바람에 멀리 날아가는 사람을 승진자로 정하는 미라이 공업의 인사 방식을 자로 잰 듯한 서구 경영학이 이해나 할 수나 있을까?(물론 이런 승진방식이 극히 예외라는 점은 인정하고라도 말이다.) 더구나 직원들이 친기업적이고 해고 없이 지속성장을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까? 이는 인간중심의 철학 하에서나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관점이 경영철학을 바꾸고, 경영철학이 경영의 주체와 대상에 대한 시각을 전변(轉變)시켜 놓는 그야말로 상호작용의 과정에 있는 것이다.

오늘날 기업 경영에서 시장을 쪼개고 쪼갠 결과 나타난 것이 다름 아닌 시장세분화(market segmentation)이다. 고객을 인구동태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분석한 것이 데모그라픽(demographic)이며, 또 싸이코그라픽(psychographics)이고, 시간·장소·상황을 분석한 것이 TPO이며, 데이터 마이닝을 한 것이 CRM이고 이를 활용한 것이 ERP이다. 강·약·기회·위협 요인에 촛점을 맞춘 것이 SWOP 분석이다. 효율성에 근거해 모든 것을 쪼개고 쪼개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려 해 왔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은 기능적 혁신에는 부합했으나, 기존에는 없던 산업을 이끌어 내는 창조적 개념에는 부합하지 못했다. 여러 요인이 뒤섞여 경영 생태계를 이루는 경영환경에 분석적 시각만으로는 총체적 시각을 갖기에는 여러모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마치 신체를 해부하면 생명의 본질을 알 수는 있을지 몰라도, 생명 자체를 얻을 수는 없는 것과 같다. 경영효율성이란 이름으로 쪼개고, 미분한 경영학은 본질 가까이 다가가는 듯했으나, 끝내 분석된 결과에서 생명을 찾지 못한 건 무엇 때문인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핵심이 효율성에 근거한 과도한 레버리지의 도미노 붕괴 현상이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모두 효율성 만능주의가 불러온 대재앙인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시장은 통으로 볼 때 시장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말장난 같아 보이지만, 시장을 쪼개면 거기에 남는 건 각기 다른 좌판뿐이다. 시장은 그 자체로 유니버스, 즉 자본과 재화와 물류가 움직이는 우주다. 우주를 이해하는 길을 통으로 놓고 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각 요소들, 환경들이 복잡하면서도 질서정연하게 상관관계를 이루는 그 본질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 반상(盤床)에서는 전체 판을 읽는 게 중요하지, 사귀 생을 위한 묘수풀이가 중요하지 않다. 백 개의 전술보다 한 개의 탁월한 전략이 중요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경영환경에 총체적 이해를 가져오는 것이 창의성이며, 창의성을 위한 방법론이 통섭이다. 전체를 보기 위해 통섭이 이 시대의 담론으로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창의적 사고를 핵심적인 사업 기반으로 삼고 있는 업종으로는 광고회사가 해당될 것이다. 김낙회 제일기획 사장은, “창의성의 출발은 사물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문제는 그 동안의 학습으로 축적된 자기 분야의 지식과 경험만 갖고서는 더 이상 새로운 해석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없다는 데 우리의 공통된 고민이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새로움을 위한 사고의 가로지르기, 경험의 세로지르기가 어우러질 때, 통섭 경영은 꽃필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다양하고 통합적인 관점을 지향하는 통섭의 개념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기 위한 매우 적절한 방법론”으로 부상하고 있다.

'통섭'이라고 하면 학제 간 연구를 넘어선 크로스 오버형 학문을 뜻한다. 경영에서의 의미는 어떨까? 이는 다양한 현상, 법칙이 얽혀 돌아가는 복잡성의 원리가 맞물려 돌아가는 시장의 맨틀로 볼 수 있다. 물의 어느 부분이 어느 냇물에서 왔느냐를 분석하기 보다는 전체로서 강을 바라보자는 얘기다. 물론 냇물을 바라본 시각도 이전에는 원천에까지 관심이 가닿지는 못했다. 갈래진 지식은 총체적 경영지식의 강으로 모여들어야 바다에 이를 수 있다. 자칫하다간 호수나 연못같이 고인 물이 되어 버린다. 전체로서 흐름을 이루고, 끝까지 바다에 가닿는 원리에 주목해야 한다.

하나의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단순히 경영학적 시각에만 머물지는 않는다. 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현상이고, 그 저변에는 다양한 이해집단들의 욕구가 내재되어 있다. 각 집단들은 지금까지는 개별화된 지식과 경험으로 세상의 문제, 경영의 문제에 대한 처방을 내려왔다. 하지만 그 결과 우리는 복잡한 현 시대의 문제를 풀기 보다는 더욱 꼬이고 어려워진 난수표를 푸는 듯한 힘겨움에 직면해 왔다. 월 스트리트는 금융에 관한한 다 알 것 같지만, 오히려 국제유가, 금 가격, 곡물 및 사료가격 등에 있어 타 산업이 제공하는 지식과 정보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실제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아가 월 스트리트가 대상으로 하는 산업의 기업들을 알려면 그것은 기초과학의 진행과정, FDA 정책, 법원의 판결, 미국 서부의 날씨, 지구온난화와 해수온도의 변화, 탄소배출권, 남미에서의 내란 등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나는 단순히 하나일 뿐이다. 총체화된 지식 없이는 무엇도 가치를 지닌 정보가 되기 어렵다. 다만 파편화된 정보로 오히려 정확한 통합적 판단을 내리기에 장애로 작용한다. 단편적 지식은 21세기 들어 정보가 고삐 풀린 말처럼 풀려 나가고, 실시간으로 검색되며, 상호 연계되는 이 시점에 단 6구경의 권총에 한발의 총알을 넣고 돌렸다 당기는 룰렛처럼 운 기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문제는 각기 다른 정보가 하나의 맨틀에 들어와 용광로처럼 섞이고 녹으며, 정보나 지식 자체를 새롭게 탄생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정보의 부가가치를 극대화시키는 방법이다. 나아가 이럴 때의 지식 처방이야말로 상품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쪼갤 것이 아니라, 모으고 철강소에서 제련하듯 정련하며, 새로운 틀에 부어 넣어야 한다. 부분으로써 전체를 볼 때 경영환경은 그 자체로 생존 조건이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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