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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통섭과 초영역인재

다두시대(多頭時代)의 도래

by 전경일 2011. 5. 23.

불과 십 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인재를 바라보는 기준은 지금과 비교하면 평이한 편이었다. 외환위기 당시 부즈앨런 보고서는 “과거에 익숙한 게 오히려 짐이 되는 시대다.”라고 주장하며 기존 가치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그 무렵 기업은 고용보장을 기대할 수 없는 시대에 개인도 “개인차원에서 평생 자기계발에 책임지며 자신의 부가가치에 대한 보상과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자세”(윌리엄 마이클스, 부즈앨런 & 해밀턴 컨설팅 동북아회장)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라 '항상 변화를 즐기며 도전과 개척정신'을 지닌 인재상과 '지식경제의 기초를 닦은' 인재상을 요구했다. 격동기에 적합한 인물로 '냉혹하고 비정한 인재'를 찾기도 했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인정에 끌리지 않고 철저하게 바꿀 것은 바꾸고 결단할 것은 결단“할 것을 요구했고, 그런 사람을 인재로 본 측면이 강하다. 이런 인재상은 당시 위기일발의 시대상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위기를 해소하거나 막기에 급급했던 그 무렵의 인재상 어디에도 창조를 주문한 바는 없다. 십 년 만에 인력에 대한 담론이 완전히 전변(轉變)한 것이다.

10년이 지닌 지금, 다시 찾아온 경제위기의 상황에서 한국 기업의 인재관을 엿볼 수 있는 핵심용어들은 과거와는 몇몇 점에서 다르다. 예컨대 융합형 인재, 초영역 인재, 퓨전 인재, 하이브리드 인재, 멀티태스킹 인재 등등이 바로 그것이다. 과거의 인재는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면 된다는 의미였지만, 지금의 인재관은 ‘인재’란 말 대신 ‘지식’이란 키워드를 붙이며 인재와 지식이 통합되는 함의를 지니고 있다. 즉, 융합형 지식, 초영역 지식, 퓨전형 지식, 하이브리드 지식, 멀티태스킹 지식 등으로 바꿔 쓸 수도 있다. 인재-지식-경영이 삼위일체를 이루며 특히 후자인 경영을 위한 방안으로 인재와 지식의 합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별개의 지식이 사람의 머릿속에서 합쳐지면서 제3의 지적 산출물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경영원리를 십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과거 십년 전보다는 훨씬 복잡해진 경영에 대한 해법을 찾는 방식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인재상에 대해 왜 이런 새로운 경향이 나타난 것일까? 과거와 달리 이제는 육체노동자에서 기능 노동자로, 다시 단일 전문, 전공 지식노동자에서 여러 사람의 지식과 경험이 합쳐져야만 효과를 발휘하는 ‘다두(多頭)지식’ 사회로 전변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고구려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삼족오(三足烏)처럼 하늘을 날기 위해선 다리 한 개를 더 필요로 하는 식과 같다. 상상컨대, 고구려의 삼족오는 자원이 없기에 생존을 위해 대륙으로 내달려야 했던 고구려인의 현실 상황을 상징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는 게 아닐까 한다. 남보다 다리 하나를 더 쓰고라도 속도경쟁에서 이겨야 했던 고구려인의 현실감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두(多頭)시대는 어쩌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키메라(Chimera)처럼 한 몸속에 사자 머리, 염소 몸, 뱀 꼬리 모양의 몇 가지 유전자(DNA)를 동시에 가졌거나, 천수천안(千手千眼)의 관세음보살처럼 천개의 눈과 손으로 세상을 응시하고 손을 써야 하는 것을 뜻하는지 모른다. 모두 접목잡종, 합성의 특성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다두형 인재상은 메두사(Medusa)처럼 머리카락마다 뱀이 달려 있어야 한다. 신화에 나오는 메두사는 뱀으로 된 머리카락을 가진 날개 달린 여성으로 묘사된다. 고르곤(지하의 괴물) 중에 메두사만이 불사(不死)의 능력이 없었으므로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베어 죽일 수 있었다고 한다. 고르곤의 머리를 고르고네이온(Gorgoneion)이라 불렀으며, 메두사의 머리를 본 사람은 누구나 돌로 변하게 하는 힘이 있어 우리나라 치우천왕처럼 무서운 머리 형상은 저주를 막는 보호물로 쓰였다. 그래서 헤라클레스는 메두사의 머리와 똑같은 위력을 발휘하는 메두사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 얻어서 테게아 시를 적의 공격으로부터 지키도록 했다. 이 머리카락은 적의 눈에 노출되면 적을 날려 보내는 폭풍을 일으킨다고 여겨졌다.

고르곤의 머리를 훗날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거세'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지만, 나는 좀 다르게 해석한다. 그것은 '지혜'이다, 지혜이자, 전략이며, 적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놀라운 착상이다. 그러기에 잘 다루어지지 않는 지혜는 죽게 마련이고, 지혜는 상대를 돌로 변하게 하며 꼼짝달싹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적조차 그 지혜(전략)을 얻어 쓸 경우 자신에게조차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을 메두사의 머리카락은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이처럼 지혜의 힘을 메두사의 머리를 차용해 와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그런지 메두사가 죽을 때, 그 피에서 날개 달린 말인 페가소스가 태어나는데, 적당히 하늘을 나는 것은 용납되나, 너무 높이 날아 보려고 했기에 벨레로폰이 안장에서 떨어져 죽은 것이다. 나아가 페가소스가 별자리가 되어서 제우스의 하인이 되었다거나, 페가소스의 비상이 영혼불멸의 알레고리로 해석되거나, 시적 영감의 상징으로 간주되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결국엔 천개의 머리를 지닌 메두사의 지혜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다.

내가 말하는 ‘다두형’을 집단지성이라는 말로 표현하면 어느 정도는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다방면에 걸쳐 다양한 지식을 투입해 하나의 문제에 대해 365도에서 각기 바라보는 해법을 제시하고, 이전에는 없던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시대가 도래 하는 것이다. 예전처럼 의사이면서 변호사가 됐다거나, 의사이기를 포기하고 컴퓨터 백신 전문가가 되었다는 식의 단순한 연결내지 지식이나 관심이 이전하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융복합적인 성격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융합 지식이라 함은 두 종류 이상의 지식을 모두 완전히 습득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두세 종류의 지식을 완전히 습득하지 아니한 채 융복합형 인재를 표방한다면 이는 어설픈 결합이 될 수 있다. 전공 부전공이 아닌, 이중, 삼중 전공이 필요하다. 융합 지식인은 향후 그것을 획득하는 과정상의 비용문제, 부의 편중화 등의 문제가 우려됨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반의 주지식인층으로 21세기를 이끌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폐해로 지식과 경험의 독점화 현상이 우려되는 측면도 있다.

슈퍼컴이나 인터넷 등장 후 모든 두뇌는 잘 살펴보면 각기 다른 두되의 수가 아닌, 두뇌 허브로서 타 두뇌를 연결시킨 개념으로 발전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이제는 수많은 뇌를 어떻게 연결해서 거기서 미래형 지식을 얻고, 경영을 심화시키는 지적 허브에 다가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된다. 나(조직)는 몇 개의 머리를 장착하고 있는가, 나(우리 조직)는 나(우리) 이외 몇 개의 뇌를 활용할 수 있는가가 경쟁력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실은 이런 것들은 이미 오래전 많은 전쟁의 용병용인(用兵用人) 전문가들에 의해 다루어진 주제이다. 전쟁이란 결국 남의 머리를 빌려 다 어떻게 쓰느냐는 방법론이고, 그 때문에 결국엔 사람의 지혜 문제인 셈이다.

21세기 각기 다른 정도의 차이가 어느 시대보다 커지고, 각기 같은 바가 다른 어느 시대보다도 더 가까워진 이 특수한 지식 사회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향후 기업사는 새로운 강자들의 시대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왕 위기 상황에서 변할 거라면 과거 10년 전처럼 단순히 구조조정을 동반한 혁신역량을 강조할 게 아니라, 창조역량을 전면에 재배치 해 나가며 변하는 게 낫다. 과거 10년의 시간은 기업이든 국가든 미래를 창조적으로 준비하라는 유예기간이었지만, 많은 면에서 우리는 한해살이식 경영을 버리지 못하고 껴안고 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본질적인 위기를 극복해 가려면, 창조적 역량으로 국면 자체를 전변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글로벌 위기는 똑같은 사이클이 반복되며 더 가속될 것이다. 다두시대의 핵심은 경영자가 메두사의 머리를 지니는 것이다. 생존방식을 위해 변화된 방식을 취했다고 해서 그런 경영자를 괴물이라고 부를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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