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의 대명사였던 '중성자탄' 잭과 효율을 중시한 거함 GE가 사람에 대한 철학의 방향을 틀고 있다. 최근 GE는 과거 실행중심의 인재상과 달리 창조형의 이멜다 회장을 내세우며 기존 영역을 파괴하는 `초영역 인재상`에 집중하고 있다. 과거의 패러다임으로는 앞선 미래상을 이룰 수 없다는 현실인식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국내에서도 최근 몇 년 전부터 불어 삼성의 이건희 전 회장이 주장한 ‘천재론’과 LG 구본무 회장의 ‘CEO 육성론’이 맞붙기도 했다. 다만, 이때의 논점은 핵심인재의 요인과 비핵심인재의 요인, 핵심인재 양성론 등 방법론에 대한 것이 주를 이뤘다. 어찌된 일인지 이 두 가지 상충되거나 보충적이기도 한 방법론은 더 이상 불붙지 않고 조용히 끝나버리고 말았다. 본격적으로 한국사회 미래와 경제 등 전반을 이끌어 나갈 인재관을 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양측 다 과열을 우려해 자체 소등한 것 같아 아쉽다. 양쪽 주장이 핵심 모토로 내세운 것을 보면, 이 회장의 견해는 “21세기는 천재가 기업을 먹여 살린다.”는 ‘천재 경영론`에 집중됐고, 구 회장은 “특출한 핵심 인재 양성보다는 훌륭한 리더를 육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CEO 육성론`이 핵심사항이었다.

각 인재관에 대한 여론조사도 갈라져서 ‘천재론’에 대한 지지층과 ‘CEO육성론’의 지지층으로 나뉘었다. 다른 한편, 중도적 입장으로 ‘양쪽 모두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사업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천재가 있더라도 CEO의 방향이 다르다면 천재의 능력은 묻힐 수 있다.’ ‘개개인이 최고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등의 보완적인 개별 주장도 펼쳐졌다.

최근 몇 년간은 인력에 대한 관점이 양극화된 면도 없지 않아 ‘핵심인재’와 ‘일반 보통의 직원’으로 나뉘고, 핵심인재 중에서도 ‘천재론’과 ‘CEO 육성론’으로 나뉜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어느 한 인력의 다중적 능력을 개발하고, 복수분야에서 통합적 시각을 지닌 크로스 오버형 인재에 대해서는 별다른 논의가 있어 오지 못했다. 현실은 이미 특정 직무에 맞는 특정 전공 또는 특정 경력 식의 분과적 사고로는 복잡한 경영현실에 대응할 수 없다는 지적이 부각되고 있었지만, 이런 인재관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2년 내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 새로운 인재상으로 통합적 시각과 경험을 지닌 인재가 요구되는 것일까? 초영역 인재가 아니고서는 복잡다단하고, 전방위에 걸쳐있는 비지니스 문제의 원인파악도 어렵거니와 해법을 찾는 일도 난감해졌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의 편차를 두고 우리나라 기업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인재에 대한 고정관념이 크게 변하고 있다.

인재관의 변천은 시대상과 맞물려 있다. 오늘날 과거보다 훨씬 더 폭 넓고 심도 깊은 인재상을 요구하는 것은 경영환경이 지닌 복잡성, 상호연계성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양과 질이 한꺼번에 전환하는 도약의 시기에 놓여 있을 때 새로운 인재상은 요구된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기가 그랬고, 우리 역사의 대중흥기인 세종 시대가 그러했다.

현재가 통섭형 시대라면, 우리나라 최고의 르네상스를 이룬 세종시대의 인재관은 어떠했을까? 세종은 ‘천재론’과 ‘육성론’ 양자의 결합 형태, 또는 양자간 역할 분담의 입장을 취했다. 스스로 창조적 인재이며(세종은 한번 읽은 책은 결코 잊어버리지 않은 천재였다.) 경제, 경영, 과학, 기술, 문화 등 국가 경영상 요구되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통섭적 시각을 지녔었다. 그런 세종은 창조 시대를 열기 위해 전공과 부전공, 이론과 실무, 실행력과 창조성을 지닌 통합형 인재상을 요구했다. 천재-리더형 인물들에 대해서는 각자 역할 분담을 통해 적성과 주특기를 강화하고 이를 국정과제에 쏟아 부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토록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그 예로 당대 최고의 천재 과학자인 장영실과 음악의 거장인 박연, 그리고 천재 수학자인 이순지 등에 대해서는 프로젝트 자체의 기술적 목표뿐만 아니라, 예술적 목표에까지 이바지하도록 했다. 이들은 창조 자체에 몰두했다. 반면 리더형 인물인 정인지, 이천, 김담, 정초, 변계량 등에 대해서는 프로젝트 리더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 내도록 역할을 부여했다. 이들은 자체 지닌 창조적 역량뿐만 아니라, 전체 프로젝트의 창조성을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지금으로 애기하자면 양쪽 다 핵심 인재들이었는데 그 소질에 비추어 천재형과 리더형으로 구분해 일을 맡겼던 것이다.

세종의 이러한 인재 활용법은 천재와 리더를 각 사안의 성격에 따라 통합, 구분, 세분화하고 전략적 배치를 통해 용인(用人)의 극치를 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재들은 집현전이라는 지적 생태계에서 당대 거의 전 지식영역을 섭렵함으로써 천재와 리더가 융합된 멀티형 인재, 크로스 오버형 인재, 통섭형 인재로 거듭 났다. 그 결과 농업-천문-의학-철학-문화-경제는 한 덩어리로 뭉쳐져 굴러가며 국가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전변해 냈다. 만일 세종이 어느 한 분야에만 매몰되었다면, 그 시대의 창조적 성과는 어느 한 분야의 분과적 성취에 국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종의 이 같은 창조적 안목은 세종시기를 통섭의 시대로 부르기에 가장 적합한 것으로 만들었다.

600여년이라는 시대적 간극을 떠나 창조성의 압력이 높이지는 시대에는 초영역 인재상이 요구되고, 이 같은 추세는 국내외 기업들의 인재관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미 전통적인 경영컨설팅업체조차 법학전공자ㆍ기자ㆍ공무원ㆍ엔지니어의 경험을 갖춘 인재가 포진하고 있는가 하면, 투신사에서 신문방송학-경영학을 아우른 인재를 뽑아 사회 전 분야의 현상이 어떻게 경제 흐름을 주도해 나가는지 통합적 시각을 확보하고 있다. 이공계 출신이 복수로 금융 회계를 전공하게 해 이를 투자 분석에 반영하기도 하고, 통신전공자 중에 생물학 전공자를 투입하기도 한다. 물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회사가 직접 인적 자산을 관리하고 투자하기도 한다.

실리콘 밸리의에 있는 대부분의 IT기업은 자산 중 재무제표에 나와 있는 자산의 2/3이 미평가된 직원 자산(또는 직원의 지식)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에 대한 평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람이 경영의 전부다.’라는 원론적인 얘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초영역 인재의 중요성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요는 기업의 시대적 요구를 대학이나, 여타 교육기관에서 제대로 수용하고 공급해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창조적 기업은 창조적 인재들에 의해 만들어 진다. 이 점을 간과한다면, 기업은 그 댓가를 경쟁에서 떠밀리며 조만간 혹독히 치워야 할지 모른다.

GE의 변모가 상징하듯, 새로운 경쟁 패러다임 하에서는 남다른 생각이 필요하다. 직원들로부터 창의성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경영자로부터 시작하는 창조적 습관이 조직 문화가 되어야 한다. 경영자가 지닌 통섭형 역량은 직원들의 각 영역을 발굴하고 그 역량을 배가시키기 위한 복수전공 능력을 심화시킬 수 있다. 경영자는 과거와 달리 실행을 축으로 하는 조직 비전의 실천자뿐만 아니라, 오히려 힘의 비중을 조직의 창조성을 높이는 일에 써야 한다. 인재관에 관한 한 과거의 패러다임이 잦아들고 나면 먼지 속에서 등장하는 것은 이전과는 다른 통합적인 지식 무기로 등장하는 직원들이다. 창조적 경영자가 창조적 직원을 부르고, 새로운 창조성을 낳으며, 창조시대를 열어젖힐 것은 당연하다. 창조 없는 실행은 선두에서 경영의 루트를 개척하는 개척자의 모습이 아니다. 없던 길을 개척하는 자가 독식하는 사회는 지식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임에 틀림없다. ⓒ카인즈교육그룹,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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