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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통섭과 초영역인재

경력고원 뛰어넘기

by 전경일 2011. 7. 14.

현대 사회는 어느 한 가지 분야에만 집중해서 살 수 없다. 복잡계를 반영하듯, 개인의 경력도 집중도가 과거 어느 때보다 크게 대두된다. 이런 변화를 주도한 것은 정보화와 산업화가 엊갈리고, 로컬(local)이 글로벌(global)로 전환되는 외환위기 전후와 맞물려 있다. 개인의 경력 또한 시간과 경험이 쌓이며 피라미드 상층부로 이동하는 식의 패턴이 아직 유효하다 해도 새로운 직장 풍토에는 밀리고 있다. 국내 한 대기업이 ‘같은 직급 내 임금 격차를 최고 3배가 나게 하라’는 인사정책을 들고 나온 것은 평가와 보상 면에서 더 철저한 경쟁 원리를 담아내고 있다. 보통의 평범한 직장인은 승진은 고사하고, 자리보전도 하기 어려워졌다.

여기에 직장인의 심각한 고충이 있고, 기업이 당면한 고민이 있다. 어느 조직이건, 조직 위계상 상위계층은 하위계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숫자가 적다. 피라미드 유형의 조직이건, 네트워크 조직이건, 평면화된(flat) 조직이건 간에, 상위계층으로의 이동은 경력 상승의 한 방법이고, 직장인이라면 모두가 기대하는 바다. 그러나 우리의 직장에 글로벌 무한경쟁이 뛰어들며 판이 달라졌다. 국내 리그전에 갑자기 월드 스타급 인재들이 뛰어든 것이다. 새로운 판도는 과거의 잣대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 그간 우리가 지녔던 경쟁력, 즉 입사시까지 투입한 정규교육과정 12년 동안의 영어 교육과 대학에서의 전공 분야는 글로벌 경쟁이 요구하는 밀도를 밑도는, 범세계적 기준으로 보자면 저밀도 수준에 불과하다. 이제는 경쟁조건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철저하게 득실과 효과성을 따져보아야 한다. 전공 영역에 있어서도 우리는 여전히 원천지식, 기술에 한참을 밑돌고 있다. 창의성은 ‘남을 따라 배우는’ 벤치마킹 시대가 끝난 지금 기업 생존의 절체절명의 핵심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인식과 투자는 여전히 신통찮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직위 상승은 어느 지점에 이르러 느려지거나 멈추게 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중간 관리층을 중심으로 정체를 맞이하고 있고, 성장은 캡(cap)에 씌워져 있는 듯하다. 고임금의 구조를 대신할 각종 툴과 기술은 얼마든지 있다. 단순 기능 인력을 대체할 대안들은 이미 넘쳐나고 있다. 개인들이 갑작스럽게 찾아 온 경력의 빗장에 걸려 일정한 높이에 이르러 더 이상 진척시키지 못하는 경력 정체현상을 ‘경력고원(經歷高原, career plateau)’이라고 하는데, 이는 개인의 직위상승이 느려지거나 멈추는 것을 말한다.

개인에게 경력고원이 발생할 경우, 개인들은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되고 자신과 조직의 갈등, 불만족을 표출하며, 전반적인 사회생활, 직장생활에 실망과 낭패감을 감추지 못한다. 군중속의 고독감을 느끼며, 고립감, 정체성의 회의에 빠져들며, 삶 자체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적잖은 도전 환경이 쓰나미처럼 우리 앞에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초기 경력고원에 대한 인식은 경력고원은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의 경향은 경력고원을 나의 변화의 기회, 전환의 시간, 도전과 성찰의 시간 등으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자신이 하는 전문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십대부터 다원적 가치에 눈 돌리는 것 어떤가? 은퇴 후 자신이 하고픈 일을 찾기보다 20, 30대부터 평생을 두고 하고픈 일을 찾아 매일 조금씩 진척시켜 나가는 것은 경력 증발시대에 자신의 사회적 생명력을 더 늘릴 수 있다. 나는 직장생활을 20년가량 하며, 매일 A4용지 한 장 분량의 글을 썼고, 직장을 그만둘 때엔 스무 여 권의 책을 냈다. 그게 나의 후반생 밑천이 되었다. 글의 초점도 시대에 유행하는 트랜드만 쫒지 않았다. 인문과 경영을 결합시킨 독창적 세계는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나의 고유의 영역이 됐다. 바로 이런 불변의 가치 영역을 찾아내 시도하는 것이 중요할 성 싶다. 그렇다고 시대감각에 뒤떨어지는 주제를 잡지는 말라. 만일 그렇다면 아직도 시골에 가면 한 두 군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대장간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대장장이나 대장간을 ‘경쟁력 있는 경력·직업·산업’으로 인식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제는 글로벌 경쟁력, 즉 기술이나, 영업, 마케팅, 신제품 아이디어, 시장 노하우, 혁신 가치, 창조성 발현 등에 있어 남다른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기업은 물론, 개인의 존재 가치조차 사라지게 된다. 내가 하는 일이 우물이 말라버리는 산업군, 사업기반, 개인역량에 묶여 있는 것인지 철저하게 자기점검을 이루어야 한다. 개인의 경력이 이렇게 정체를 맞게 될 때 기업들은 어떤 과정을 겪을까? 기업은 성장도 변신도 꾀하지 못한 채 개인이 맞는 경력고원과 같이 사업이 정체되어 시장과 경쟁사에 끌려 다니는 ‘사업고원(事業高原 business plateau)’의 한계국면을 맞이한다.

이제 개인이나 기업은 경력고원에서의 정체를 벗어나기 위해 가치를 잉태하는 지식과 기술을 찾아내고 이를 보강하는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개인의 기술과 능력, 개인의 요구와 가치, 내·외적 동기, 조직성장의 방안을 찾는 기업과 개인만이 경력고원의 덫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국면을 주도적으로 열어 갈 수 있다. 기업은 직원들과 공동의 생존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생존방식을 찾아야 한다. 개인은 변화한 환경을 능동적으로 자기개발을 위한 장으로 인식하고 총체적으로 자기점검, 자기 발전의 전기로 삼아야 한다. 만일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고원의 칼바람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개인과 기업이라면 그들의 운명은 곧 사라지게 될 것이다. 개인의 경력을 확장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조직의 번영을 위해서도 보다 창조적인 방식을 찾을 때다. 정해진 파이를 놓고 벌이는 경쟁이 아닌, 창조성으로 현재의 난관을 극복할 때, 경력고원에서 벗어나 드넓은 평원으로 내달릴 수 있다. 결국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을 끌어안는 인문적 소양이 지금 깥은 때 더욱 빛을 발한다는 얘기다. 그럴 때 새로운 발상의 전환은 이루어진다.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초영역 인재》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