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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통섭과 초영역인재

유목민에게서 배우는 절제의 미학

by 전경일 2011. 7. 19.

A. 암말 8, 숫말 1, 암소 10, 수소 1마리
B. 말 30~50, 양 100, 대형가축 15~20, 염소 20~50마리
C. 말 15, 낙타 2, 대형가축 6, 양 50마리

좀 생뚱맞은 질문을 하나 해보자. A, B, C 위 세 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몽골초원, 우즈베키스탄 등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5인 가족 유목민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필요한 가축 수이다. 유목을 하는 사람들은 목축을 통해 생산한 물품을 농업 생산물과 교환해 살아가는데, 이들은 이 정도 숫자의 가축을 갖고 있어야 ‘단순 재생산’이 가능해 진다고 한다. 경제 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 절대치가 이것이라는 것. 아프리카의 카바비쉬인들의 경우에도 한 핵가족이 독자적으로 생존하려면 낙타 2~25마리와 양 40~50마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 이상이 되면 ‘부유한’ 편에 속한다. 이를 가리켜 ‘표준가축단위(Standard Stock Units)’라고 부르는데 최대와 최소를 오가는 가축규모의 적정수를 통해 유목민의 생존 필요조건을 알 수 있다.

생존에 요구되는 가축 수는 이렇지만, 실제 사람들이 가축을 더 많이 관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의 목동이 관리할 수 있는 가축의 수는 낙타의 경우 대략 150마리, 개의 도움 없이 돌볼 수 있는 양과 염소의 방목규모는 400마리로 어느 유목민 집단이나 대략 500마리를 넘지 않는다. 그렇지만 예외도 있다. 캄차트카 지역의 순록유목민의 경우에는 다룰 수 있는 가축의 무리가 최대 1,000~1,500마리에 달한다. 이들은 왜 다를까? 이들은 풀을 찾아 이동하는데 무려 1,200km를 이동한다. 풀을 찾아 이동해도 한 유목민이 관리할 수 있는 가축의 최대수는 이 정도다. 자연 방목시에는 더 이상의 가축 수를 늘릴 수는 없다. 왜 그럴까? 1,000마리가 넘는 양떼를 끌고 다니면 양들이 아무것도 안남기고 풀을 모조리 먹어치우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뒤에 있는 양들은 먹을 것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즉 풀을 뜯는 동물의 숫자가 상한선을 넘어갈 경우 초지 자체가 완전히 황폐화되어 버려 초지로써 지속성을 갖을 수 없게 된다. 이는 현대 목장에서 사료를 주어 1인당 2,500마리까지 키우는 것과 비교할 때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인위적인 관리 방식과 자연방목의 차이점이 이 점이다.

유목민들의 관리 짐승수를 보며 생각해 보는 게 있다. 지속가능성과 절제의 미학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모조건 많이 가져야 하고, 욕망은 필요 이상으로 늘 넘쳐난다. 그 결과 환경은 황폐화되고, 인간 이기심에 의해 촉발된 사회적 갈등은 줄어들 줄 모른다. 해마다 경기도 크기만한 아마존 밀림이 사라지고 있어 향후 50년 후에는 열대우림의 80퍼센트 정도가 사라질 전망이다. 파헤쳐진 밀림은 경작지로 변모되며 무한한 생산의 컨베이어 벨트가 되어 인간에 유익한 쓰임새를 가질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한번 사라진 밀림이 복원되는 데에는 작게는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이 걸릴지 모른다. 애당초 복구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아마존 밀림은 지구의 동물들이 필요로 하는 산소의 20퍼센트를 공급하고 있다. 이 ‘지구의 허파’가 사라진다면 그 결과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간 존재조차 설 땅이 없어진다. 대재앙은 이처럼 불을 보듯 뻔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멈출 줄 모른다.

어떻게 해야 자연과 인간이, 인간 상호간에 지속성을 위한 노력을 할 수 있을까? 절제의 미학이다. 지구상에 유일하게 냉장고를 만들어 필요 이상의 음식물을 보관하는 존재는 인간 밖에 없다. 냉장고 등장 이후 인류는 거대한 욕망의 사슬을 만들어 내고 결과적으로 썩어가는 냉동음식을 먹게 됐다. 신선한 음식이 웰빙의 대명사가 되고 있는 마당에 냉장된 음식은 죽은 동물의 사체를 더 오랫동안 보관함으로써 신선도가 떨어지고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는 문명의 이기로 탈바꿈된 것이다. 이런 인간의 탐욕이 아마존 밀림 파괴와 냉장고 등 문명의 이기에서만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경영학적 의미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 토요타는 불과 이태 전 리콜 사태로 큰 사회적 물의를 빚어냈다. 안전 우선의 사고보다 더 많은 생산과 소비의 중심에 있다 보니 과도한 욕망이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온 것이다. 토요타는 불과 이태 전 세계 시장점유율 15퍼센트를 목표로 해외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과도한 해외생산 증대는 결국 안전한 차보다는 원가 절감된 차 중심으로 경영 방침을 몰아갔고, 그 결과 리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 뒷두습에 토요타는 적잖은 비용과 사회적 책임을 져야 했다.

모든 양들이 풀을 다 뜯어 먹는다면 뒤의 양은 먹을 게 없게 된다. 결국 방목에는 과도한 개체수가 지속가능성을 망가뜨리며 초원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다. 이를 인위적으로 조절해 적정 수의 동물을 관리하는 유목민의 지혜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적잖은 교훈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뿌리를 뒤흔들어 놓는 지나친 양극화나, 부의 대물림 같은 현상은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결국엔 지속성을 위해서라도 절제된 사고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앞의 양만 배부르고 뒤의 양이 굶어 죽는다면 그건 삶이 충만한 초원의 질서가 아니다. 그럴 때 초원은 더 이상 푸르지 않다. 절제된 힘만이 이 멋진 세계를 계속 이끌어 갈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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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영역 인재》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