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처럼 ‘가치’가 중요하게 취급되는 시대도 아마 없을 것이다. 고객 가치 추구니, 가치 중심 사회니 하는 말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가치가 등장하고 있고, 목말라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에 맞춰 기업들은 남다른 가치를 드러내고자 차별화니, 고객만족이니 하는 말들을 무한정 쏟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가치’란 무엇일까? ‘가치’는 시대성과 무관하게 그야말로 ‘가치 있는’ 것일까? 금은과 같은 귀금속이나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 등이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꽤나 오래 전부터이다.(다이아몬드가 보석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금은 대비 훨씬 연륜이 짧다.) 이런 광물들은 오랫동안 인류사에 등장해 유효성 있는 가치로 선호되고, 취급받아 온 물질이다. 이런 보화가 가치 있는 물건으로 등장한 것은 그 가치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사회적으로 통용되면서부터이다. 환금성이 있든, 교환가치가 있든, 희귀성이 있든, 유용성이 특별났든, 일반적인 물질 대비, 뭔가 다른 가치가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사람들 눈에 띠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가치’란 그 물질이 지닌 고유한 무엇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인지하는 사람의 능력이 뒤따를 때 가치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물질만 의미하는 건 아니다. 어떤 물건이거나 시간, 기회 등 유무형의 자원 일체를 포함하는 개념 차원일 수 있다. 결국 가치란 시대적 산물인 것이다. 기업이 말하는 고객만족이라는 가치도 알고 보면 당대를 살아가는 고객의 심상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로 기업 활동에 긍정적으로 쓰이는 것을 뜻할 것이다. 이처럼 가치는 시대성을 띠고 있는데, 가치의 시대성과 관련되어 헨드릭 빌렘 반 룬은 <반 룬의 예술사 이야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고고학이 등장하기 전인 “16세기나 13세기의 우리 조상들은 (과연 고대의 무덤이나 수만 년 전에 사멸된 동물의 뼈나 사람의 뼈)를 발견하지 못했을까? 물론 그들도 발견했다. 그러나 그때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래서 아무도 그런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에 해골은 발견된 그 동굴 안에서 살해되었거나 죽은 불쌍한 순례자 또는 병사의 유골로 오인되었다. 사람 뼈가 아님이 분명한 뼈는 농기구나 비료로 쓰였다. 1805년과 1809년 중에 오스트리아 원정에서 쓰러진 영웅적인 나폴레옹 병사들의 시체가 나중에 영국업자들에게 비료로 팔려간 것과 마찬가지 경우였다.”
이런 경우는 중국 고대의 갑골문자가 쓰여진 거북의 등껍질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갑골문자가 쓰여진 수많은 뼈들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에는 그 뼈들은 주변 사람들에 의해 거름으로 쓰이거나, 뼛가루로 갈아져 아무런 약효도 없는 약재로 쓰였다. 그것의 가치를 알아본 것은 고고학적 의미를 그 뼈다귀에 불어 넣은 사람들이었다.
이 두 경우를 보며 궁극적으로 알게 되는 것은 가치는 본질적으로 시대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어떤 가치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흘러야 하고, 특정한 지식이 사회적으로 수용되어야 한다. 물론 그것을 가치로 받아들일 줄 아는 지식 집단이 등장해야 하고, 그것에 관심 가질 만큼 최소한의 여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고고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것들이 예전에는, 즉 고고학 등장 이전에는, 사장되거나 무관심거리였을 것은 자명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아직 모르는 상태에 있는 수많은 것들에 대해서 여전히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누구도 생각 못한 발견이나, 과학적 시도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등도 숨겨진 가치가 실현되기 전에는 가치로써 인정되기는 커녕 관심거리도 되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누군가에 의해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고 해석되면서 이전의 무가치가 가치로 뒤바뀐 것이다. 이런 혁신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기업 경영용어로는 ‘초발혁신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가치는 어떻게 발견(발현)되는 것일까? 그것은 학문의 발달이나, 사회적 변화, 새로운 인간의 욕망 등 여러 필요조건이 함께 작용해야 한다. 이런 환경 요인(경영용어로 요구needs)이 작용할 때, 가치는 숨어 있다가도 불현듯 등장해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거나, 인간의 욕구 개발을 촉진시켜 주는 것이다.
이런 것이 단순히 물질만이 아닌 사회적 가치로 환원되면 세상을 움직이는 시스템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새로운 질서를 잉태해 내기도 한다. 전세계적으로 친환경이니, 녹색이니 하는 키워드들이 21세기의 첫 10년을 풍미하고 있는 이유도 알고 보면 우리가 그간 간과해 온 ‘가치’에 대해 새삼 환기시켜주는 면이 크게 작용한다. 환경문제가 크게 대두되지 않았을 때 이 같은 관심사는 소수의 사람들의 취미에 불과했었지만, 지금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라는 사회적 인식이 함께 하며 환경은 가치의 중심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인간을 규명하는 여러 가치에 대해 우리는 관심을 가지고 해결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가치가 아직 안보일 때 그것은 그냥 굴러다니는 뼈다귀에 불과할런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인간의 역사를 규명할 풍부한 재료임에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금 만들어 내는 어떤 것들은 당장 인류의 재부가 아닐지 모르지만, 먼 훗날엔 오늘날을 규명할 가치의 집합체일지 모른다. 요는 그것을 보는 우리의 눈이다. 가치를 보고자 하는 안목에서 가치가 나올 것은 분명하다. 가치를 읽는 힘은 지금 내가 보고, 만지고, 더듬는 사소한 것들에서 나온다.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초영역 인재》저자.
인문경영/통섭과 초영역인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