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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통섭과 초영역인재

복식조가 승리하는 시대

by 전경일 2011. 8. 25.

경영전략 전문가인 미시건대 경영대학원의 프라할라드 교수는 “영원한 경쟁우위 요소는 없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항상 새로운 원천을 발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끊임없는 혁신이 생존에의 조건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혁신은 개선사항을 찾고 효율성과 생산성을 올리는 다분히 대량생산체제에서의 이노베이션을 뜻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창조시대에는 이노베이션이 아닌, 인벤트를 통해 문제에 접근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혁신의 보다 광의적인 개념인 창조는 실리콘 밸리의 경우 우리보다 대략 10여년은 앞서 있는 느낌이다. 그간 우리는 벤치마킹 해 온 것의 효율성을 강화하는데 혁신이란 말을 제한적으로 사용해 왔다. 실리콘 밸리 열풍이 불던 1999년《산호세 머큐리 뉴스》지에 실린 휴렛 팩커드사의 기업 PR 광고는 기업사(起業家)정신과 더불어 세상을 바꿀 인벤트를 창조개념으로 강조하고 있다. 창업 자체가 창조 과정을 전제로 한 점이 우리보다 앞선 기업들의 특징인 셈이다. 

Rules of the garage.
차고(車庫)의 법칙

Believe you can change the world.
믿어라, 당신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Work quickly, keep the tools unlocked, work whenever.
빨리 일하고, 도구[수단]을 잠가두지 말라. 언제든지 일하라

Know when to work alone and when to work together.
알아라, 언제 혼자 일할지를 그리고 언제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할지를.

Share – tools, ideas. Trust your colleagues.
나눠라 – 도구[수단], 아이디어를. 믿어라, 당신의 동료들을.

No politics. No bureaucracy. (These are ridiculous in a garage.)
정치란 없다. 관료주의도 없다. (이런 것들은 차고에서는 웃기는 것들이다.)

The customer defines a job well done.
고객이 일이 잘되었는지 정의내릴 것이다.

Radical ideas are not bad ideas.
급진적인 생각들은 나뿐 것들이 아니다.

Invent, different ways of working.
만들어 내라,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것을.

Make a contribution every days. If it doesn’t contribute,
매일 매일 기여하라. 만일 기여치 못한다면,

It doesn’t leave the garage.
차고를 떠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Believe that together we can do anything.
믿어라, 우리가 함께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Invent.
개발해 내라.


기업의 혁신역량이 강화되려면 창의적 인재가 중요하다는 점은 새삼 강조할 나위 없다. 직원의 자질+전문능력+창의적 사고+도전정신의 합이 승수 작용을 일으킬 때 ‘창조’는 탄생한다. 오늘날 기업들은 직원들의 창발성을 이끌어 내기 위해 직무교육에 여러 기술(스킬), 능력을 터득하도록 교차훈련(cross-training)을 포함시키고 있다. 직원이 혼융된 일을 소화해내고 수행해 내게 하려는 것이다. 나아가 다면적 이해에서 오는 ‘새로운 발견’을 촉진시키고자 한다.

기업 내 인력개발은 구체적으로 기업이 바라는 인재상, 즉 비전과 전략을 수행하는 데 있다. 기업 성장의 주축이 사업이 아닌, 사업을 주도적으로 개발하고 탁월한 성과를 내는 인재에 있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다. 글로벌 무한 경쟁의 시대에는 ‘카피(copy)’로는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다. 이처럼 창조적 인재개발은 기업사활의 핵심을 이룬다. 인재가 지닌 지적 깊이와 경험의 폭을 씨줄 날줄로 엮어서 그 기업의 고유한 능력으로 발전시키고, 지적 영역과 깊이를 더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발전을 꾀하기란 쉽지 않다.

직원들의 표출된 가능성을 더욱 개발하고, 잠재가능성조차 찾아내 현실화시키는 것이 기업의 의무로 부각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런 연유로 기업 교육이 복수학위, 복수 커리어, 복수 스터디 그룹 운영, 독서 마일리지 등 다양한 입체적 지력(知力) 배가 활동을 제시하는 것은 통합적 사고가 그만큼 중요해 졌기 때문이다.

과거의 지식, 사업은 반쪽짜리만을 잘 개발해 나머지 반쪽과 잘 꿰맞추는 것을 목표로 했다. 나머지 반쪽을 찾는 것을 아웃소싱이라고 표현했고, 말 그대로 외부에서 찾으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내가 궤를 꿰지 않고 통합분야의 지식을 자산화하기는 어렵다. 이 점은 이미 많은 글로벌 리딩 컴퍼니들에 의해 입증됐다. 누가 코어(core) 지식(또는 앞서 언급한 종자지식seed knowledge)를 쉽게 남에게 내어주겠는가? 지식의 산물로써 상품(혹은 서비스 등의 고객가치)을 넣고 끼워 팔 수 있지만, 원천지식은 영구히 자기 소유다. 오늘날 컨설팅 회사 등의 막강한 자산이 다른 학습을 통해 내부 자산화 한 것들이다. 고객의 노하우, 분석 매트릭스 툴(tool), 수많은 사례, 혁신 기법, 새로운 실험을 통한 지식 축적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동안 우리 기업은 지식을 자산화하고, 이를 원천지식으로 발전시키는데 뒤처짐으로써 경영행위 자체가 하나의 ‘결함’을 만들어 왔다. 이런 경험은 통찰의 결핍에서 온 것이다. 어느 하나의 해법으로 기술을 구현하고, 세상을 해석하고, 고객을 대하고자 했지, 전체로써 경영행위를 하나의 자산으로 승화시키지 못했다. 이 점이 우리의 경쟁력을 취약하게 만들고, 기술 종속을 가져온 원인이었다는 점은 부정키 어렵다.

빈센트 꽁트(Vicent A. Conte)는 “한국사회는 외부의 사회, 기업 모델을 채택함으로써 단기적인 성과를 얻었지만 한국의 경쟁 우위를 확보하는데 일관성이 부족했다. 다양한 국가의 모델을 경험하면서 여러 관행이 모아졌지만, 정작 한국적 문화의 기본적인 특징들을 무시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근로자와 일반 시민들에게 스트레스와 불안정만을 야기했을 뿐이다. 한국이 외부에서는 배우려 하지 않고 독자적인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과거 쇄국주의 정책을 폈을 때로 돌아가는 게 좋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대신 한국 사람의 강점과 전통 문화를 살려 경제적 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독특한 전략을 창조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는다. 그의 분석을 경영에 비유하면 이보다 적절한 말은 없을 듯 하다.

적어도 십여 년 전쯤에 풍미한 과거 인재론의 중심을 이루었던 사상은 급격한 진화를 이뤄냈다. 한 가지 특출난 전공 분야(업무 분야)의 스페셜리스트와 일반 지식경험을 총체적으로 파고 들어가는 제너럴리스트 개념이 그것이었다. 이 둘은 택일 개념이었다가, 그 후 (예컨대 단순 비유로)우수 영업 인력 정도라면 회계장부 정도는 꿸 수 있어야 한다는 식의 스페셜제너럴리스트(special-generalist)로 논점이 옮겨졌다. 직원의 능력을 키워내는 면적과 깊이의 양면에서 이 같은 결합은 지극히 단순한 것이었지만, 꽤나 설득력이 있었다.

복수 전공은 이 시대 하나의 학습 대안으로 제시돼 많은 사람들이 여러 학위를 따는 학위수집가(degree collector)가 되도록 하기도 했다. 하지만 본질은 통섭형의 학습대안이라기 보다는 졸업장을 하나 더 추가하는 학력 보조의 기능이 강했다. 그나마도 과거보다 진일보한 개념이었다.

그렇다면 21세기형 인재상은 어떠해야 할까? 물리적 결합이 톱니바퀴처럼 얽혀 돌아간다 해도 그것이 화학적 결합에서처럼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을 창출해 내지는 못한다면 가치는 질적 도약을 이루기 힘들다. 이 같은 과거의 방식에 대한 결핍을 인식하며 제기되는 것이 보다 밀접한 학문간 연결, 지식간 연계를 통한 통섭력이다. 학력첨가제가 아닌, 본원적으로 탁월한 인재를 만들어 내는 개념이 초영역 인재이다. 예를 들어 요즘 게임업체에서는 인문학 전공자로 물리엔진의 이론에 박식하고, 상상력을 자산으로 하는 업의 특성상 등단 경험 등 문학적 배경을 갖춘 복합능력형 인재를 찾고 있다. 문사철이 중요해지면서 기업 활동에서 많은 스토리 텔링이 보강되고 있어 글투를 통한(특히 인터넷 환경에서) 고객 소통을 필요로 하는 경영환경은 글에 고명을 얹질 수 있는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 최근 들어 생물학자라든가 자연과학자, 공학자들 사이에 글쓰기 수준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서적이 출간되는 것도 양측의 요구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은 과거의 인재형과 달리 적어도 어느 분야세서는 궤를 꿰는 통섭형 인재 유형에 속한다. 이에 따라 아날로그형 인재에서 디지털로, 디지털에서 크로스 오버형으로 핵심인재상이 진화해 나가는 것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재전쟁의 한 현상이다. 복식조 시대로의 진입은 오늘날 경영자들에게 다학문적 경험을 쌓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모든 것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능력은 비즈니스 현장에서 (조정 능력과 함께) 경영자들에게 요구되는 하나의 통합 능력이다. 잘 묶는 자가 지식의 들판에 펼쳐진 개별 지식의 볏단을 자기 기업에 유리하게 옮겨 놓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게임의 방식이 멀티로 이루어지는 시대에 복식조 식의 지식과 경험은 새로운 창조적 성과를 가져온다. 지식이 깊고 넓어야 궤를 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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