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인조 정부는 눈가리개가 씌워져 있는 양, 무모하게 명분론에만 집착했다. 이전 정권인 광해군 정부의 모든 것을 지워버리듯 대외정책에서 무리수를 두기 시작한다. 내부에서는 논공행상의 불협화음이 나타나 이괄의 난을 불어온다. 새로 집권한 세력에겐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생각 외에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해서 백성들은 반정공신을 향해 “너희들과 (광해군 정부) 사람들이 다를 게 뭐냐?”고 반정공신들을 풍자하는 상시가(傷時歌)가 회자될 정도였다. 선조 이후 조선을 분열과 전화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인조를 만나본다.

-왕께서는 광해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았는데, 국정 운영이 너무 형평성에서 멀어진 감이 있고, 권력의 독점 현상으로 결국 이괄이 난을 일으켰었는데요.

“왜? 내가 아무 노력도 안했다는 건가? 광해군 시기 이원익을 다시 영의정에 등용하기도 하지 않았는가?”

-그렇죠. 하지만 서인 내부의 인사정책인 이조참판 이하 자리에만 남인 등용이 가능하다는 원칙은 특정 정파만 권력을 독점하려는 것 아니었나요? 집권 세력 내부에서도 논공행상에 불만이 많아 결국 이괄의 난을 자초한 것이구요.

“허 참. 이괄의 난이 삼일천하에 불과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반정이 아닌 역성혁명이 성공할 뻔한 일 아니었나.”

-이괄의 반란군이 도성을 점령했을 때 왕께서는 한양을 버리고 공주로 피신하였지요? 수도를 버린 건 선조에 이어 두 번째 일이고 이로써 백성들의 민심은 완전히 이반되었는데요.

“그건 측근들이 나를 잘 보필하지 못해 일어난 일이니 내가 무슨 잘못인가?”

-왕께서는 일말의 반성의 기색도 없군요. 문제는 이괄의 난으로 후금 침략의 명분을 준 것인데요.

“그래서 내가 결국 삼전도에서 그 굴욕적인 치욕을 치르게 된 것 아닌가? 오랑캐에 대한 원한이 골수에 사무치네.”

-그러시다면 명분론보다는 소현세자가 보여줬듯 실리외교를 했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뭐라? 그러면 광해를 치고 들어선 나와 인조정부 전체를 부정하란 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설 곳이 어딘가? 임진왜란 이후 우리에게는 명분이 중요할 수밖에 없었네. 국가적 기량이 약할 때에는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해서 오랑캐에 대한 적개심을 버릴 수 없는 거네. 숭명배금하지 않으면 인조정부가 어디 가서 설 수 있단 말인가?”

-그 결과가 소현세자의 죽음으로 이어진 것일 텐데요. 소현세자는 심양에 볼모로 끌려가 발전하는 청을 보며 실리를 추구하였는데요. 그것이 그리 못마땅하였습니까?

“나는 소현이 청에 끌려갈 때, 당부해 둔 말이 있네. 너는 한나라 소무(蘇武)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소무는 한 무제 때 흉노에 잡혀가서도 19년 동안 흉노의 온갖 회유에도 굴하지 않은 인물이었네. 그런데 어찌 소현세자의 그 따위 행태를 용인할 수 있었겠나.”

-국익을 위한 것이라면 정권의 정체성와 다르면 내치는 것이 정치는 아닐 텐데요. 때마침 청나라가 조선왕을 교체하고 왕을 심양으로 들어오게 한다는 소문이 떠돌며 아들을 더욱 정적으로 보게 되지 않았나요?

“무슨 소리... 세자가 취한 영리 활동이나, 청에서 세자를 바라보는 태도가 못마땅하기는 했지만, 내가 죽일 까닭이야 있었겠나.”

-그럼, 소현세자가 귀국하자마자 두 달만에 독살당한 것은 무슨 까닭은 무엇입니까? 게다가 세자빈 강씨도 유배지에서 의문사를 당하게 되었고요.

“여보게. 정치란 어느 집단이 국가를 운영하는 것이네. 내가 서인들의 도움으로 집권을 하게 된 이상 그들의 뜻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거네. 나의 지지 기반이라곤 백성도 아니고, 남인이나 다른 정파도 아닌, 오로지 서인 밖에 없었네. 내가 누굴 잡아야 하겠는가? 세자는 개인이 아닌 이상 정치적 대상이 될 수밖에는 없는 거네. 그게 정치의 본질 아닌가?”

-물론 그럴 수 있겠죠. 하지만, 임금은 국정의 중심에 백성을 놓지 않았기에 백성들은 양대 호란을 겪으면서 더욱 조정을 불신하게 되었고, 소현세자의 역할이 더 부각된 것 아닌가요?

“백성이 임금 위에 있다고 자네는 지금 말하는 겐가?”

-그럼 백성이 하늘이라는 유자(儒者)의 가르침을 부정하는 것입니까?

"그런 아니네만... 나는 백성을 다스리지 백성을 떠받드는 게 아니네. 임금도 지키지 못한 백성들이...”

조선을 전화로 몰아넣고도 스스로 만든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조. 그는 아들과 손자까지 죽였지만, 그에겐 죽어서 인조(仁祖)라는 시호가 내려진다. 제 아무리 서인 천하였다 해도 어찌 백성들의 바람과 달리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해서 이후 급격히 쇠퇴해 가는 조선과 오로지 명분만 취하다 망국의 길로 접게 들게 한 CEO가 인조 아니었을까? 지금의 정치가 후세에 미치는 영향을 돌보지 못한 인조였기에 어찌 통탄해 마지않을 쏜가!
전경일. <창조의 CEO, 세종>의 저자. 인문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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