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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강의/이순신 | 경제전쟁에 승리하라

[이순신] 이순신 장군의 통섭적 상상력

by 전경일 2011. 10. 6.

필자는 휴가를 이용해 남해 한려 수도 일대를 돌아보았다. 집필과 관련된 여행이었지만, 나름 휴가를 자청한 여정이기도 했다. 남해 일대에 들어서는 순간,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유적지가 이토록 많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 정도로 ‘이순신’은 가까이 있었다. 400여 년 전의 조선의 삼도수군통제자였던 이순신을 만나며 남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23전 23승의 무결점 완벽 승리야 익히 아는 바이지만, 승리의 원천을 만들어 낸 ‘이순신적’ 힘은 어디서 온 것일지 궁금했다. 돌아와 자료도 찾고, 쓰던 글편들을 다시 훑으며 이순신적 힘은 인문과 타학문 분야가 결합된 ‘통섭형 발상’에 있음을 알게 됐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가 익히 아는 거북선은 조선수군의 주력 함선인 판옥선과 함께 핵심 전선인데 배의 건조 방법이 특이하다. 거북선은 간소화 선형 방식의 설계를 따름으로써 건조시간, 비용, 노력 등 여러 면에서 경쟁우위를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간소화 선형이란 요즘 경영용어로 핵심에 집중한 단순화(simplicity)를 말한다. 또 전투 시 우리 지형에 맞는 구조를 적용해 적을 제압할 수 있었다. 남해안의 낮은 연안 수심을 고려해 회전력과 기동성을 높인 것은 이처럼 배의 평평한 구조가 큰 영향을 미친다. 또한 선체가 커서 화포나 총통 등 육중한 무기를 싣고 다니는 데에도 크게 유리했다. 이는 이순신 장군이 ‘조선학’ ‘지리학’ ‘해양학’을 두루 고려한 것을 뜻한다.

거북선은 오랜 시간 집적된 선박 지식의 모든 특장점도 반영하고 있다. 적을 무력화하기 위해 창선을 꽂고, 화약무기, 철갑판, 선수방패 등을 탑재함으로써 압도적 경쟁우위를 살린 혁신 전함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 건조 시 자라와 거북을 방안에 두고 3개월 동안 관찰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고 보니 자라나 거북의 배 밑 구조와 판옥선 및 거북선의 배 밑 구조는 모두 평평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군은 바닷물이 들고 나는 것을 정확히 관찰해 배의 구조를 설계하도록 했고, 또 전투 시 전략적 타이밍을 정확하게 계산해 적을 궤멸로 몰아넣었다. 이는 장군이 ‘생물학’과 ‘조류학’적 지식을 거북선 창제시 고려했음을 알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임진왜란은 지식과 과학의 전쟁이었는데, 거북선의 경우에는 오랜 시간 누적된 조선 선박 지식의 집합체이자, 지식통섭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거북선선을 만든 각 선소의 위치도 절묘하다. 임진왜란 당시 장군의 지휘 하에 건조된 세 척의 거북선은 여수 일대 각기 다른 선소에서 제작되었다. 전라좌수영 본영 앞의 선소, 돌산 방답진의 선소, 쌍봉 선소가 그 셋이다. 이순신 장군이 이렇게 각기 다른 선소에서 거북선을 제작케 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는 목재 등 자원 채취의 용이성, 동시다발적 제작의 필요성, 진수 후 작전 투입의 적지성(適地性), 건조 지역의 제 조건, 프로젝트 관리상의 백업 시스템 차원 등 여러 이유가 반영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일종에 제작 포트폴리오를 분산해 위험요인을 줄이고, 효과성을 높인 것이다.

거북선 R&D 센터의 '골든 트라이 앵글'로 볼 수 있는 각 선소들의 위치는 본영 선소는 남해를 통한 경상도 해역 출격 거점으로, 방답진은 고흥반도와 순천만 일대를 포함한 전라 인근 해역 출격 거점으로, 쌍봉 선소는 만의 가장 안쪽에 위치하며 두 선소를 지원하는 백업어(back upper)로써 크게 기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전라좌수군의 본영인 진남관 위치상, 본영은 시제품 개발 센터로 테스트 베드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실질적으로 해상전투용 거북선 건조를 총괄하고, 방답진은 가장 해상 최전방에 위치시키고, 쌍봉은 안쪽 깊이 위치시켜, 제1R&D 센터와 제2R&D 센터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물론 이때에는 쌍봉 선소의 경우 ‘숨겨 둔’ 제2의 센터 역할을 수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각 선소간 거리는 쌍봉-본영(7km), 본영-방답진(15km), 방답진-본영(17km)으로 이순신 R&D센터는 바다를 향해 뻗어나가는 '진격형 골든 트라이 앵글'의 젼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점을 분석해 보면, 장군이 ‘지형학’, ‘설비입지학’, ‘시설 운영학’ 등을 두루 고려해 거북선 제조의 역할을 맡은 선소를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예로부터 여수 선소마을은 고려 때부터 배를 만든 곳인데 자연 지세를 이용하여 이곳 쌍봉 선소 굴강(屈江)에서 거북선을 만들고 대피시켰다고 한다. 굴강은 천연 해안 요새에 구축한 인공호로 썰물 때는 물이 빠졌다가 밀물 때는 물이 찬다. 아마 장군이 만든 거북선은 물이 차오를 때를 기다렸다가 진수식을 거행하며 적을 무찌르기 위해 굴강을 박차고 저 먼 바다로 나갔을 것이다.

장군이 행한 여러 전략, 창제 작업을 돌아보며, 임진왜란 승리는 거져 얻어진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막하 병졸들과 필사즉생의 각오로 전투에 임한 것은 물론, 승리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 부단한 통섭적 노력을 기울인 결과였음이 분명하다. 400년 전 왜적을 맞아 싸운 해전 승리의 밑받침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미국발 경제 위기가 2008년에 이어 2011년에 들어 다시 불거지며, 세계 경제가 한없이 휘청거리고 있다. 우리 기업들도 이에 영향을 받고, 개개인의 삶도 마찬가지로 그 영향권 내에 있다. 이럴수록 이순신 장군의 지혜처럼 다양한 지식을 통섭해 내는 능력을 발휘하면 어떤가? 평소 접하지 않던 분야의 책도 손에 쥐면 다른 분야의 지식에서 전혀 다른 획기적 생각을 얻을 계기를 맞이하게 된다. 가을은 책 읽는 계절이다. 이번 가을엔 굳이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남다른 책을 손에 쥐어 보자.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이순신, 경제전쟁에 승리하라》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