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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강의/이순신 | 경제전쟁에 승리하라

위기의 현실화

by 전경일 2011. 11. 14.

위기의 현실화

1592년 4월 13일 왜군 158,700명이 부산포에 상륙하는 것을 시발로 임진왜란은 발발한다. 마침내 우려했던 전란이 터진 것이다. 이순신은 바로 보름 전인 3월 27일에야 대포 쏘는 시험을 했고, 하루 전에는 지자포와 현자포 발사 훈련을 했다. 그야말로 폭풍이 몰아치기 직전 간신히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전쟁 개시 바로 전까지 부족하나마 준비역량을 강화했다는 점에서 우리로서는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이때는 이순신이 전라좌수사에 부임한지 1년이 되는 때였다. 그렇다면 이 1년은 장군이 전란을 준비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을까? 이 짧은 기간 동안 장군은 어떻게 해전에 대비해 우리 수군의 준비상태를 파악하고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었을까?

이순신의 관직 경험을 보면, 발포만호 시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육전에서 경험을 쌓았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알다시피 발포는 전라좌수영에 속하는 군진이다. 평소 이순신의 준비자세로 보건대, 발포만호로 있던 수군지휘관 경험은 수군의 중요성과 함께 수군 작전에 대한 이해도를 대폭 높인 계기가 된다.

‘준비’란 일이 터지기 전의 예비 상태다. 평상시 준비역량이 곧 기업의 관리능력이 된다. 초유의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치며 불확실성에 대한 준비태세는 경영자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하게 요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준비하는 기업만이 위기를 극복하고, 더 큰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 준비역량이 경영능력의 하나로 평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절·단(守·折·斷)’의 3단계 전략

전라좌수사에 부임한 이순신은 즉각 수군을 재정비하여 전란 대비에 만전을 기한다. 이런 준비역량은 임란 초 옥포, 당포, 한산도 대첩을 승리로 이끌며 남해와 서해에서 제해권을 잡는 결과를 가져온다. 호남의 곡창지대를 지키고, 왜의 수륙병진작전을 좌절시키고, 보급로를 끊어버림으로써 왜의 기세를 잘라버리는 ‘수·절·단(守·折·斷)’의 3단계 전략은 이런 준비역량에서 나온다. 적에겐 빠른 진군이 개전 초 경쟁력이었지만, 머잖아 전선(戰線)이 길어지자 보급이 원활해지지 않게 되며 최대의 약점으로 바뀌는 상황이 벌어진다.

다행스러운 점은 전쟁 발발과 함께 각 성이 처참하게 떨어져 나갔으나 적이 속전속결로 진격함으로써 작전 수행상 필요 거점만 점령했기 때문에 주요간선도로에 접한 큰 마을들은 큰 피해를 받았으나 그 외의 소읍들은 다행히 큰 피해를 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기록에 의하면, 전국 328개소의 읍 중에 44.8퍼센트에 달하는 147개 읍이 피해를 면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 중 상당수가 호남과 호서 지역이었다. 이들 지역을 발판으로 정부는 비축곡과 전세미를 공급받을 수 있어 초기 패전을 극복하고 장기전이 가능해 질 수 있었다. 비록 정유재란 시에는 호남조차 왜적의 침입을 받았으나, 정유재란은 단기전이었다. 그 때문에 왜군에 의한 점령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준비된 역량과 적의 약점으로 인해 위기국면에 우리는 생존의 버팀목을 만들어 내며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기업들은 크든 작든 위기에 맞서 그간 마련한 준비역량으로 손실을 최소화하고, 남들이 혼란스러워 할 때 오히려 기회를 잡는 동적전환능력을 보여야 한다. 위기와 기회가 병존하는 것은 이런 상황의 가변성 때문이다. 장군은 임란 발발 전 최소 자원을 마련함으로써 국난 극복의 전기를 마련했다. 이 점에서 유비무환의 자세로 대응하는 장군의 탁월성의 경영 일면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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