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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왜공정]-일본 신왜구의 한반도 재침음모 (전경일)

by 전경일 2011. 12. 9.


남왜공정
일본 신 왜구의 한반도 재침 음모

 

이번에 장장 7년의 세월을 들여  <<남왜공정: 일본 신왜구의 한반도 재침 음모>>를 냈다. 감회가 새롭다. 다룬 바는 그간 쓴 책들의 범주나 주제를 뛰어 넘었으나, 서기 193년부터 2011년까지의 방대한 연구 조사가 선행되어야만 했고, 한일사를 꿰는 지식의 광대함이 요구되었다. 게다가 "역사가 현재를 설명하는 생생한 교훈이 되지 못하면 그저 본령에서 떨어져 나간 박편薄片에 불과하다"는 생각 하에 현대사와 한일 미래사까지 내다보느라 자못 자라목이 기린 목은 된듯하다. 책 중에 친일, 친미의 역사적 뿌리를 더듬어 본 것은 민족사에 크나큰 이정표로 삼을 만하다. 그만큼 영토, 영해 문제의 갈급한 현실에 대한 발언이기도 하고, 감히 서애西厓의 대저를 빌러 보자면 민족 운명에 '징비懲毖'코자 한 면이 자못 크다.  매번 글이 책으로 묶여 나올 때 후미가 흔쾌하지 않은 것은 글의 졸속함 때문이 아니라 생각의 짦음 때문이리라. 자못 글은 현실에 대한 발언이 되고, 창과 칼이 되어야 한다. 난마의 조국 현실은 풍전의 등화와 같으나, 역사 전개를 단견으로 바라보는 작금의 행태는 크게 우려스럽다.  

책 내용을 소개한다.



오랜 구원舊怨과 첩첩한 욕망에 침식된 한일 양국사
1620년간 이어져온 일본의 ‘남왜공정’이 다시 시작된다!

살육과 공존, 균형과 파괴
그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시작이 우리 민족 앞에 펼쳐진다. 
 

아무도 접근하지 못한 일본 왜구의 탄생, 성장

그리고 왜구 침구의 음모를 직시하라.

지금, 일본 신왜구는 한반도 침구 시점만 노리고 있다.

앞으로 34년 후인 2045년 내 일본은 반드시 재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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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한반도를 주기적으로 침략해 왔다.
일본 신군국주의는 지금 한반도 재침을 획책하고 있다!


일본은 대륙진출이라는 광포한 욕망으로 1620년간 한반도를 자그마치 900여회나 침략했다. 이는 인류 역사상 유래 없이 긴 ‘전쟁’으로 지금도 현재진행형 중에 있다. 21세기 들어서도 일본의 한반도 침략 야욕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같은 일본의 침략은 ‘주기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일본의 끊임없는 주기침략, 그 시작에는 왜구가 있다. 저자는 이와 같은 일본의 한반도 침략사를 새롭게 정립하며 그동안 아무도 접근하지 못했던 왜구 침구의 내막을 정교하게 파헤치고 있다.

고대로부터 1149년간 이어지는 왜의 ‘신라 정토계획(761년)’, ‘고려 침공계획(1275/1281년)’, ‘임진왜란(1592년)’ 그리고 ‘강화도 조약에서 한일합방(1876/1910년)’까지, 일본의 한반도 침략의 끝은 어디인가? 각 침략행위 간 시차를 살펴보면, 각각 514/520년, 311/317년, 284/318년의 간극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일본의 한반도 침략은 주기성과 불변성을 띠고 있다.

일본은 한반도를 주기적으로 침략해왔다. 앞으로도 한반도를 재침할 여지가 있고 예정되어 있다고까지 할 수 있다. 일본의 ‘한반도 재침’은 필연적이다. 따라서 그 시기를 예비하는 자세는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이율곡은 ‘십만양병설’을 주장하며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대비케 했다. 또한 임진왜란 종전 후, 류성룡은 후대에 있을 일본의 한반도 재침에 대비해 ‘징비록’을 저술한다. 이 책 ⟪남왜공정: 일본 신왜구의 한반도 재침 음모⟫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분석하여 미래에 있을 후환을 경계하는 징비懲毖의 차원에서 쓰여진 것이다.

일본의 ‘한반도 재침설’에는 필연적으로 숫자의 법칙이 뒤따른다. 여기에는 명백한 근거가 있다. 일본 명치유신과 강화도 조약까지의 시차는 9년이다. 이 9년은 일본이 한반도 무력 개입을 법제화한 2002년 상황과 일본 정치인이 독도 침구를 목적으로 한국에 입국한 2011년까지의 시차와 같다.

일본의 한반도 재침이 예정되어 있는 시기는 언제쯤일까? 이의 기준은 강화도 조약에서 한일합방까지의 시차인 34년이 될 수 있다. 이를 반영해 보면 일본의 재침이 가능한 시점은 2045년이 된다. 그렇다면 2011년과 정확히 34년의 시차를 보이고 있는 2045년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이는 일본의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다시 돌아오겠다고 선언한 기한과 같다. 일본은 지금 2045년을 목표로 한반도를 집어 삼킬 준비를 맹렬히 전개하고 있다.


이른바 ‘잘 나가는’ 일본은 왜 왜구의 정체를 은폐·조작 하고 있을까?

한일관계에서 ‘왜구’의 존재는 특별 취급 대상이다. 공존과 균형보다 파괴와 살육으로 점철된 왜구는 일본의 흉기로 한반도를 900여회나 침략한 척후병이었다. 오늘날 일본은 왜구의 실체가 어떻길래 감추려드는 것일까?

1221년, 일본에서는 조정과 막부 간 권력 다툼으로 ‘조큐의 난’이 발생한다. 이 난을 주도했던 일본 고토바 상황은 결국 패하게 되는데, 이때 조정 편에서 싸우던 대다수 무사들은 토지를 몰수당한다. 이후 이들은 새로운 생존 조건을 찾아 해상 무장 약탈 세력인 왜구로 극적 변신하게 꾀하게 된다.

1392년, 일본의 남북조 시대가 남조의 멸망으로 막을 내리자 다시 패배한 일족은 바다에 들어가 해적이 된다. 우리 역사상 극악스런 ‘경인년(1350년) 왜구’는 바로 이들을 가리킨다.

일본은 오랜 한반도 침략의 주역인 왜구의 존재를 부정하려 획책하고 있다. 왜 그럴까? 대륙으로부터 꾸준히 문명의 혜택을 받았음에도 그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과거사를 왜곡하는 열등감이 자리잡고 있다. 일본이 지금은 잘 나가는 듯하나 속내는 과거에 대한 콤플렉스로 뭉쳐있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함께 동반자로 거듭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동아시아 평화의 주역이 될 수 있을 테지만, 지금 그럴 의사가 없어 보인다. 일본의 불행은 여기에 있다.

이보다 더 큰 문제점은 일본은 왜구를 통한 역사 왜곡의 위험성을 전혀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이에 대해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 박노자 교수는 다음과 같이 통찰하고 있다.

"가해자들이 피해자의 탈 쓰기를 좋아하는 것은 ‘역사의 법칙’중 하나이다."

일본이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 해가며 가해 사실을 은폐하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실에서 벗어난 왜곡은 이성을 마비시키지만, 일본은 이 같은 조작 행위에 익숙하다. 여기에는 일본의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 ‘역사 치매현상’도 한 몫한다.

지금 일본은 ‘현대 왜구’라 할 수 있는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득세, 정치 리더십 부재, 끝날 줄 모르는 기나긴 경제 불황, 원전사고 등 잦은 자연재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내부의 혼란을 외부로 분출시켜 해결하려 했던 왜구의 특징으로 보아서 지금 일본의 움직임은 심상치가 않다. 한반도 주기 침략의 밑그림이 다시 그려지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도쿄의 경성(서울) 천도 계획과 한반도민 800만명 강제 이주 계획

1930년대, 일본의 군국주의자 도요가와 젠요란 자에 의해 ‘경성천도론’이 강력 주장된다. 그는 일본 수도 도쿄가 너무 동쪽에 치우쳐 있어서 만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수도를 조선의 경성(서울)로 옮겨, 도쿄와 신경(길림)을 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일본은 일본인 대량 이주와 정주를 위한 거점으로 황해·발해 지역을 검토하기도 했고, 서울이나 근방인 김포, 용인 지역으로의 도쿄를 옮기려고 계획하기도 했다. 이는 일제가 대동아공영권을 이루기 위한 목적에서였지만, 한편으로는 일본 내 지진으로 인한 잦은 피해로 수도를 한반도로 옮기려는 계획 차원이기도 했다. 수도 이전 시 일본은 조선인 800만 명을 만주로 이주시키고, 대신 일본인 800만 명을 경성으로 이주시킴으로써 한반도를 영구히 차지하고자 했다. 자연 재해든 정치적 격변이든 일본 내 불안은 이처럼 늘 한반도 침구 야욕으로 귀결되고 있다.

오늘날 일본 내 지진·쓰나미 등의 자연 재해가 잇따르고 있고, 총리가 일 년에 한 두 번꼴로 바뀌는 등의 정치적 격변이 일어나고 있다. 게다가 원전 사태가 벌어져 일본 동북부의 땅이 황폐화되고 있다. 이는 역사적 사건과 비교해 보면 한반도 침략으로 이어질 요소가 충분히 무르익어 가는 일본 내 조건이 된다. 일본의 한반도 주기침략과 재침의 역사를 예증하는 주장이 될 수 있다. 지금 일본에서 어떤 극우주의자가 이 같은 팽창주의적 생각을 하고 실행에 옮길 준비를 하고 있을지 주의해 보아야 한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60년 나비효과와 평행이론

현재의 ‘독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미건조한 주장이나 감정에의 호소가 아닌 그 실체로의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60년 전,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현장으로 가야 한다. 우리는 독도문제의 실상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2차 대전이 끝나고 4년이 지난 1949년 초부터 미국은 전후 일본 문제의 처리를 위해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독도 영유권에 대해 명확한 규정을 삽입하지 못한 채 1951년 9월 8일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49개국이 서명한 가운데 체결된다.

당시 미국 측의 전후 최대 관심사는 반공의 교두보로서 일본 경제의 조속한 부흥과 재건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2차 대전 시 미군폭격기지로 사용된 독도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미국의 국익을 위해 기상 혹은 레이더 기지로 쓰일 이유가 있는 것으로 고려되었고, 그런 차원에서 일본에 유리하게 조약이 작성된다. 미국은 일본의 힘을 지켜주고 환심을 사기 위해 한국과 중국의 이익을 희생시켰고, 그 희생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독도와 조어도 열도이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충실히 따르는 정책을 수행해 왔다. 작금의 한미 FTA도 오직 그들의 이익만을 위한 정책이 될 우려가 크다.

국제법상 독도가 일본으로 넘어간다면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언급 안 된 한반도 내 모든 부속 도서를 대상으로 일본 영유권을 주장할 가능성도 있다. 역사적으로 일본이 보여줘 온 바를 감안해 볼 때 침구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독도문제의 중대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일본의 ‘독도’ 침구 방식

한일 양국에서 독도문제에 대해 어처구니없는 발언, 망언, 행동을 하는 이는 일본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은 패착을 범해 왔다.

1962년 9월 3일 일본 외무성에서 열린 한·일 예비절충 4차 회의에서 독도문제로 대립하게 되었을 때 김종필은 "독도를 폭파해 버리자"고 주장했다고 보도된다. 이는 오히라와 회담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김종필이 기자들 앞에서 "독도에서 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갈매기똥도 없으니 폭파해버리자고 말한 일이 있다"는 자신의 말로 확인되는 듯했다. 후에 김종필은 1987년 13대 대선 토론회에서 한일협정 시 독도문제에 대한 질문에 "젊은 혈기에 폭파하는 한이 있어도 독도를 지키려 했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최초 발설자임을 시사했다.

2008년 들어서 독도문제와 관련되어 신중하지 못한 태도가 표면화된다. 이 해 7월 15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2008년 7월 9일 일본 홋카이도 고야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때 후쿠다 총리가 (일본 사회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다케시마를 (일본땅이라고) 표기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통고하자, 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는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MB의 속마음을 무엇이었을까? 단순 실언인가, 사실무근인가, 진실인가?

그로부터 3년 후인 2011년 8월, ‘독도 영유권 강화조치 견제 차 울릉도에 가겠다’고 나선 일본 자민당 의원들이 한국에 입국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들은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입국 불허 조치로 일본으로 철수했지만, 한국정부와 한국 국민을 상대로 겁박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당시 입국한 일인日人들은 역사적 궤적으로 한반도를 오랜 시간 침구한 왜구와 동일 선상에 있다. 일본의 한국 식민 지배와 중국 남경대학살 등 역사적 책임을 부정하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을 주장해 온 이들은 중의원 의원 신도 요시타카, 참의원 의원 사토 마사히사, 중의원 의원 이나다 도모미 등 일본 내 강경 우익 극우파들이다. 이들은 한반도 영토 침탈을 목적으로 침구한 지금까지의 ‘마지막 3인의 왜구’이다.


‘일왕생일연’의 역사적 의미를 알라!

일본에서는 일왕의 생일을 ‘천황의 탄생일’이라는 의미로 ‘천장절天長節’이라고 부른다. 물론 일본 입장에서는 특별한 날일 것이지만 과연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의미가 있고 또 어떠한 일이 일어났을까?

한일합방이 이루어진 1910년에는 전국적으로 천장절 행사가 개최되었다. 충남 익산 보통학교에서는 헌병분견소 주체로 천장절 봉축 행사가 친일파와 지역주민들을 대거 동원한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또한 진주군수 박창규는 천장절 행사를 위해 조선인은 상당한 예복을 착용하고 참석할 것을 지시한다. 천장절은 이처럼 친일파와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침략을 위한 상징적 행사였다.

반면 우리에게는 일왕생일연과 관련되어 잊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윤봉길 의사이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는 상해 홍구공원(현 노신공원)에서 일본군이 상해사변 승전기념식을 겸해 일왕생일연을 벌이고 있을 때 도시락으로 위장한 폭탄을 단상으로 던져 상해파견군사령관 시라카와 대장과 거류민단장 가와바타 등 2명을 현장에서 즉사시키고, 일본 제3함대 사령관과 9사단장 등 군 수뇌부 10여명에게 상해를 입히는 전과를 거두었다. 이처럼 천장절은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과 나라를 구하려는 자들 간에 전혀 다른 역사성을 띠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2010년 12월 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는 주한·일본대사관이 주최하는 연례행사로 일왕의 생일을 기념하는 ‘천황 폐하 탄신 축하 파티’가 성대하게 열렸다. 행사는 500여명이 몰린 가운데 성황을 이루었다. 이날 파티장에서 눈에 띈 것은 기업과 기관들이 보낸 화환이었는데, ‘祝 天皇誕辰日(축 천황 탄신일)’이라는 한자 문안과 ‘Congratulation!’이라는 영어 문안이 주종을 이루었다. 이날 생일연의 주인공은 아키히토 일왕으로 그는 조선을 병탄한 무쓰히토 일왕과 2차 대전 전범인 히로히토 일왕의 손자이자 아들이 된다.

이들은 과연 일왕 생일연의 역사적 의미를 알고나 있을까?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 정녕 통탄할 노릇이다. 반면, 이 사실을 알고도 그와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더더욱 통탄해 마지않을 노릇이라 하겠다.


‘남왜공정’을 획책하고 있는 일본 ‘신왜구(주의)’를 고립시켜라!

일본은 1620년 간 한반도를 침략해 왔다. 오랜 왜구 침략사는 현재 일본의 ‘남왜공정’으로 구체화 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일본 ‘남왜공정’의 본질을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 1차(1602년~1876년: 274년간)
“조선이 화호和好에 불응하면 이는 예가 아니므로非禮 재침하고 말겠다.”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왜장倭將

● 2차(1876년~1945년: 69년간) -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 했지만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 조선총독
● 3차(1945년~2011년: 66년간) -
“독도는 무가치한 섬”이며 “크기가 히비야 공원 정도인데 폭파라도 해서 없애버리면 문제 가 없을 것이다.” 
                                    -이세키 유지로
伊關佑二郞 일본 외무성 아시아 국장

● 4차(2011년~2045년: 34년간) -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합사 된 이들이 A급 전범자라는 것은 군사 법정의 견해일 뿐”이며 “법적으로 명예 회복이 된 만큼 일본에서는 전범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

2011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4차 ‘남왜공정’은 한반도 영토 침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작금 일본의 극우주의자들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왜구’와 그 궤를 같이 한다. 일본 내 ‘21세기형 왜구’를 근절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일본 내부의 평화 세력을 활용하는 방법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는 대다수 일본민으로부터 일본 내 극우주의자를 분리하여 고립화시키는 것을 말하는 바, ‘신왜구’를 막는 일본 내 조건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일본 내 극우주의자들을 견제하는 ‘범아시아 평화세력’과의 연대를 통해 일본 극우주의를 고립·제어하는 방법도 고려해야만 한다. 일본 내 극우주의 준동을 평화 선린 세력을 통해 억제할 수 있게 외교적 영향을 강화하는 작업은 이들 세력의 고립화를 더욱 강화시켜 줄 것으로 본다. 역사상 일본이 일으킨 모든 전쟁의 불행을 고스란히 떠안은 대다수 일본민이야말로 진정한 평화 진영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우방’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민을 이용하려는 책략적 차원이 아니라, 일본 극우파에 맞선 국제 평화 연대의 차원이 그 만큼 크다는 뜻이다. 세계 어느 국민인들 자신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전화戰火를 반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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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_
전경일

일제시대 조부와 부친이 강제 징용에 끌려갔다 온 가족사를 들으며 자라났다. 민초로써 그들 삶에 천착해 우리 역사의 굴곡사를 바로 잡으려는 작업에 오랫동안 깊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왜구의 한반도 침략사를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남왜공정’으로 정의하며, ‘왜구-근대 왜구-신왜구’로 이어지는 일본 ‘신왜구주의’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2011년 일본 정치인의 침구행위와 2045년 일본 재침을 역사적 증빙에 기초해 예견하면서 오늘날 일본 극우주의의 망령이 오랜 기간 한반도를 침략한 ‘왜구’와 끈질기게 맞닿아 있음을 밝혀내고 있다.

장장 7년 동안 사료를 찾아 왜구사와 그에 맞선 한민족 응전사를 밝힘으로써 일본의 재침을 경고하고 징비懲毖케 하는 육중한 역작의 무게감을 전해주고 있다. 한일 간 독도문제, 역사교과서 왜곡문제 등 치열한 영토․전쟁이 벌어지는 때에 한민족 생존 방향을 톱아봄으로써 민족 생존의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왜구’에 의해 찢기고 갈린 한국사에 중대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본다.

전경일은 그간 서른 여 권의 책을 썼다. 『이순신, 경제전쟁에 승리하라』,『창조의 CEO, 세종』,『더 씨드: 문익점의 목화씨는 어떻게 토요타자동차가 되었는가』,『광개토태왕 대륙을 경영하다』등 주로 역사․경영적 원리를 뽑아내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여왔다. 현재 인문경영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E-mail: humanity365@naver.com
Blog: http://humanit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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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_왜의 재침은 없는가?

1장. 일본의 한반도 침공 시나리오

일본의 한반도 주기 침략
의 침구 연결고리: ‘신라 정토征討계획’
의 이국정벌론: ‘대고려 침공계획’
지속가능 전쟁의 결정판: ‘임진왜란 7년 전쟁’
일본 재침의 현재성: ‘강화도 조약’과 ‘한일합방’

일본의 한반도 재침론
재침 시차 예측의 단초
‘시차’의 유사성이 드러내는 것들

정한론征韓論, 근대 왜구의 침략 연료
아시아 정복을 위한 가장 가까운 나라, 조선

한반도 재침의 징후들
한반도 침략 불변의 법칙

2장. 일본의 흉기, 왜구의 시작
왜구, 그 질긴 악연의 시작
‘일본발 왜구’의 발호①- 조큐의 난
소강상태가 불러온 더 큰 침구
‘일본발 왜구’의 발호②- 남북조 시대
‘일본발 왜구’의 발호③- 료슌의 정치공작
왜구의 주체는 ‘도망자 무리’
동아시아 전체의 골칫거리, 왜구
일본 정부의 ‘모르쇠’ 전략
가까운 이웃과 만고불변의 원수

3장. 뿌리 깊은 왜구의 한반도 침략사
고구려의 경우 광개토태왕 대 백제와 왜구
신라의 경우 집중 침구 대상
공·수의 전환점: 장보고 시대
고려·조선의 경우 왜구는 한반도의 왕권을 두 번이나 바꿨다

4장. 왜구, 전쟁으로 전쟁을 말하다
병상신속兵尙神速 치고 빠지는 약탈 근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침소분용侵消紛用 내외부 혼란을 통해 자국의 분란을 해소한다
구사협갈驅使脅喝 위협과 공갈로 광포한 이중 전략을 구사한다
쟁지선점爭地先占 잦은 침구로 주변국의 결정적인 목을 노린다
적시장서適時場噬 적절한 침구 시점을 노려 물어뜯고 확장한다
불신불측不信不測 기만과 불예측성으로 상대를 혼란에 빠뜨린다
일조돌변一朝突變 변신과 약탈로 지속침구의 조건을 상시화한다
부정가복不正假伏 상황이 불리하면 거짓항복으로 본심을 꾸민다
만무근린萬無近隣 철저하게 ‘이웃이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병이사립兵以詐立 사실왜곡으로 끈질기게 목적한 바를 사취한다
위국개동僞國個動 국가적 활동을 개별집단의 준동으로 위장한다
점입대담漸入大膽 초기에 불씨를 끄지 않으면 점점 대담해 진다
우물찬적優物纂敵 상대의 우위요소를 재침구 수단으로 활용한다
폭살왜성暴殺倭性 사무라이와 왜구 근성으로 광포하게 살육한다
만육지락蠻戮至樂 끝없는 노략질과 무자비한 살육만행을 즐긴다

5장. 왜구, 어떻게 막을 것인가?
격왜시장擊倭始場 바다의 적은 기필코 바다에서 막아라
막강 조선 수군이 사라진 이유
현장 중심 사고의 필요성
초비응왜招備應倭 국가혁신으로 대왜구전 우위를 갖춰라
전략무기의 등장
선공후비先攻後備 문제의 근원을 초기부터 뿌리째 뽑아라
강공근절의 방책
왜구토벌사의 생생한 교훈
병형상수兵形象水 적의 형세에 맞춘 ‘맞춤형 전략’을 짜라
왜구 퇴치를 위한 다각화 전략
고려, 힘에 의한 ‘절반의 성공’
조선, 다원적 해법을 찾다
회유책을 통한 외교적 해법의 한계

6장. 가해자의 피해자 탈 쓰기
중국의 ‘가짜 왜구들’
‘왜구’ 왜곡과 미화의 극치
왜구 미화의 말 못할 속사정
‘잘 나가는’ 일본의 역사 열등감
우리 역사에 나타난 가왜·부왜들
임진왜란 시기의 가왜·부왜들

7장. 불사왜구不死倭寇 부절왜침不絶倭侵
죽지 않는 왜구의 망령
왜구적 전통과 경험의 근대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왕국
현대의 왜구들
‘독도 문제’를 가져온 두 외부 세력 일본과 미국
한국 측의 대응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해석문제와 일본의 재침 가능성
한일회담 독도를 국제분쟁화하라
독도문제 전개 방식의 비사秘史
1910년 ‘일왕 생일 행사’ 풍경
2010년 ‘일왕 생일 행사’ 풍경
일본의 ‘남왜공정南倭工程’ 공작
왜구 근절을 위한 역사적 해법들
이이제이以夷制夷 방법론은 유효한가?
아시아 영토 분쟁 대책 동맹

맺음말_일본 ‘신왜구주의’를 경계한다

참고문헌 및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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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침구’와 함께 일본의 한반도 재침·침구가 예상되는 유력한 시기인 ㉬은 언제쯤일까? 이의 기준은 강화도 조약(1876년)에서 한일합방(1910년)까지 시차인 34년이 적용될 수 있다. 즉 침구 행위가 구체적으로 벌어졌고, 이를 조약 형태로 강제한 강화도 조약과 그 결과로 합방에 이르는 시점을 기준으로 볼 수 있다. 이 시차를 반영해 보면 일본 ‘재침설’이 가능한 시차표에 ‘( ? )’으로 남아 있는 시점(㉬)은 2045년이 된다.
그렇다면 일본 ‘신왜구’의 준동이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2011년과 정확히 34년 시차를 보이고 있는 2045년은 한일 양국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우리로서는 해방 후 100년이 되는 시점이다. 이 시기까지 일본은 우리의 뜻과 상반되게 어떤 식으로든 독도문제를 국제분쟁화하는 데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력이 사태의 악화를 가로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책임은 의심할 나위 없다. –(1장)

조큐承久 원년(1219년) 1월, 3대 쇼군 미나모토 사네토모源実가 조카 구교曉에게 암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에 막부는 새로운 쇼군으로 마사나리雅成 친왕을 맞이하고 싶다고 고토바後鳥羽 상황上皇에게 요청한다. 이에 대해 고토바 상황은 승인의 전제 조건으로 막부가 자신의 애첩의 소유 영지에 대한 권리를 철회할 것을 내세운다. 호조 요시토키北条는 이것을 막부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으로 보고 거부한다. 호조는 친왕을 쇼군으로 세우려 했지만, 고토바 상황의 반대에 부딪치자, 섭관가攝關家의 후지와라 요리츠네九條賴經를 새 쇼군으로 맞이한다. 이 같은 일련의 사태로 조정과 막부간 긴장은 날로 높아졌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권력 회복의 의지가 높던 고토바 상황은 조큐 3년(1221년) 가마쿠라 막부에 맞서 토벌군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 병란兵亂을 ‘조큐의 난’이라고 부른다. 이 난에서 상황上皇의 조정은 패하게 되는데, 이때 공가(公家, 조정) 편에서 싸우다 패한 무사들[武家]은 대다수 서국西國의 무사들이었다.
난의 결과, 패배한 공가 무사들은 토지를 몰수당하게 된다. 그러자 이들은 새로운 생존 조건을 찾아 세토瀨戶 내해內海에서 해상 무장 약탈 집단인 왜구로 세력으로 극적 변신을 꾀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왜구 발생에는 일본 내 혼란이 크게 작용한다. 또한 내해의 영주와 토착세력들이 약탈 행위에 깊숙이 연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2장)

(학살자들은) 부인 등을 보면 양편으로 좌우의 다리를 벌려 생식기를 검으로 찔러 일신一身을 사분오열로 자르며 여자는 이렇게 하여 죽이는 것이 묘미가 있다고 웃으면서 담화하였다. 또 우리 동포를 전차가 지나가는 다리에 목을 매달고 양다리를 끈으로 묶어 좌우에서 다수인이 끈을 잡고 신호하고 호응하면서 그네와 같이 흔들어 죽인 일도 있다. 신체를 전신주에 묶고 처음 눈알을 도려내고 코를 찔러 그 애통한 광경을 충분히 구경한 후에 배를 찔러 죽인 일도 있다. 각 기차 중에서는 다수의 왜노 등이 (조선인의) 사지四肢를 잡고 창밖으로 던져 역살轢殺하였고 남녀 수 십 인을 발가벗겨 보행시키고 또는 춤을 추게 하여 수 시간 동안 동물적 희롱을 감행시킨 후 찔러 죽인 일도 있었다. 또한 죽은 사람의 목을 묶어 끌고 다니면서 찌르고 차면서 시체에까지도 능욕을 가했다. 이후에는 한인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왜정부는 각 경찰서 구내 또는 병영에 이송 집합시키거나 광장, 하변에 끌고 나가 기백 기십인을 일시에 죽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동포의 시체가 퇴적하여 우전천隅田川은 흐름이 막혀 우리 동포의 피가 썩는 그 악취는 통행인의 호흡도 막히게 할 정도였다. –(4장)

일본 측의 연구를 보면, 가왜에 관한 기사를 근거로 왜구로 인한 피해보다 가왜에 의한 피해가 훨씬 더 컸다는 식으로 평가하고 있다. 심지어는 왜구집단을 “일본인과 고려, 조선인이 연합한 집단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며 ‘왜구=고려인 연합·주체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제주도민이 왜구로 활약했고, 왜구의 대장이었던 아지발도마저 제주도 출신일지 모른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경인년(1350년) 이후 고려 멸망 때까지 약 반세기에 이르는 동안 왜구의 발호 중 ‘연합’이라는 용어에 어울릴만한 대규모 화척이나 재인 집단이 왜구와 공동 작전을 수행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일본이 이처럼 한국은 물론 동아시아 국가로부터도 공분公憤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왜구 주체와 발생 원인을 한반도 내 사정으로 돌리는 저의는 무엇일까? 이는 문제의 원인을 상대에게 떠넘김으로써 왜구에 대한 책임 부담감에서 벗어나려는 전형적인 ‘왜구식 전술’의 일환이다. 이 점에서 뚜렷한 역사적 증빙으로써 왜구의 근거지가 북규슈 지역 일대의 도서 연안이었고, 발생 원인도 일본 내 혼란한 정치 상황에 기인한다는 점은 철저하게 회피된다. –(6장)

이들의 취지와 의도가 어떻든 간에 한일 간 일본의 독도 침탈 문제,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등으로 나라의 존망存亡이 달린 상황에서 이들의 행태는 심히 위험천만한 행위이자, 경솔하고 역사 인식에 무지한 태도로 비춰질 수 있다. 나아가 일본에 정치적으로 악용될 우려마저 있다. 무토가 한 "일본은 여러분과 함께 가고 있다"는 발언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그가 지칭하는 ‘여러 분’은 누구를 말하는 것이며, 무엇을 ‘함께 가고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일본대사가 하는 발언의 속뜻을 간파할 필요가 있다.
기업과 기관도 비난 받아 마땅하다. 기업이 국가를 대표하는 것은 기업 경영상의 분야일 뿐이지, 민족의 존립 문제와 직결된 국가적 역린逆鱗마저 건드릴 수는 없다. 이 같은 행태는 이들이 주장하듯 ‘예의·예우·관례’ 따위와도 상관없다. 또한 ‘보통행사’로 인식되거나 ‘사업상 차원’에서 벌어질 수도 없다. 이런 행태가 기업들의 ‘비즈니스적’ 차원이라면 일본과 거래를 하는 한국의 모든 기업들이 천황 생일에 화환을 보내기라도 해야 한다는 말인가? 과연 기업과 기관들의 이 같은 행태를 국민들이 선선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기업들이 이 점을 망각하고 국가의 자존自尊과 생존 문제 앞에서 방자히 경거망동 한다면, 그 같은 기업·기관을 공기公器로써 받아들일 까닭이 어디 있을까. 기업 수백 개의 이름을 세운 들 나라가 없어지면 무슨 소용이며, 나라를 구하는 한, 기업 수천 개의 이름을 뇌리에서 지운 들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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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아있는 고난사가 존재한다. 인류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1620년간 이어진 900여회의 한반도 침략사. 일본은 그 장구한 시간 동안 ‘남왜공정’이라는 이름하에 침략을 되풀이 해왔다. 현재진행형인 이 침략사의 진앙지는 어디 일까? 그 뿌리를 찾아 들어가 보자.

오늘날 일본의 침략성은 일제의 군국주의에 기초하고, 한일합방과 임진왜란, 결국에는 1620년간 이어진 900여 회에 달하는 한반도 침구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 시작과 끝에는 일본 ‘왜구’가 있다. 오랜 시간 한일관계사를 관통하는 왜구 침구의 약탈·살인·피로의 연결고리가 현재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불행한 역사일수록 반복성은 두드러진다. 앞으로 일본의 재침은 없는가? 우리는 일본 왜구의 재침에 대비한 예비서가 필요하다.

저자는 우리 민족의 생존을 끊임없이 위협해 온 왜구의 존재를 앎으로써 한반도의 존립 근거를 보다 튼튼히 하고, 적을 앎으로써 나를 알고자 하는 목적에서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는 일본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듯하나, 기실 일본이 저지르는 행태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단지 ‘학습된 증오’, ‘막연한 동경’ 내지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생각과 자세로는 또 재침을 당하지 말란 법이 없다.

지금 한일관계사에서, 우리는 안팎으로 시련을 맞이하고 있다.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는 해인 2010년, 서울 한복판에서 성대히 치뤄진 일왕日王의 생일축하연에 한국의 정치인·기업인들은 일왕을 천황으로 높이며 생일을 경축하였고, 2011년에는 ‘마지막 왜구’ 3명의 독도 침구 시도가 있었다. ‘침구의 현재성’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을 알려면 ‘왜구’의 존재를 알고, 그들이 행해왔던 ‘남왜공정南倭工程’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현대 일본의 ‘극우주의’, 근대 일본의 ‘군국주의’, 고대·중세의 ‘왜구, 사무라이’가 일맥상통 한다. 저자는 이를 지금까지 일본이 지향해 온 침략주의 사상의 발로라는 점에서 ‘남왜공정’이라는 용어로 정의하고 있다. 고구려사 편입을 획책하는 중국의 ‘동북공정’은 귀에 익숙하지만, 일본의 팽창주의적 행태와 재침구를 우려하는 남왜공정에 대해서는 우리 내부에서조차 공론화된 적이 없다.

이 책은 한·중·일 각국이 공통적으로 경험한 바이자, 지금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문제들을 다뤘으며, 이를 구체적 사료를 통해 풀어가고 있다. ‘징비懲毖’의 차원에서 동아시아 사에 적지 않는 영향을 줄 것으로 믿는다. 저자의 오랜 고투의 흔적과 역작으로써 무게감이 읽힌다. 감히 평하건데, 21세기 들어 이보다 더 육중한 메시지를 던지는 책이 있었을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