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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통섭과 초영역인재

초발혁신가가 되고 싶다면

by 전경일 2011. 12. 28.

 

만약 인식의 문이 제거된다면,
모든 것들은 무한하게 있는 그대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윌리엄 브레이크, <천국과 지옥의 결혼(Marriage of Heaven and Hel)l>)

세계적인 혁신가 스티브 잡스의 죽음 앞에 전세계 사람들은 그에 대한 추모를 ‘I sad...'라는 말로 함축적으로 드러냈다. 잡스가 타개한지 3개월여. 잡스가 남긴 것이 무엇인지 전 세계 거의 모든 언론과 기업들은 열광적으로 특집을 내보내며 잡스를 다뤘다. 그런데 정작 수많은 잡스 관련 평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잡스의 혁신이 어디에 있는지 그 본령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잡스를 그토록 혁신의 대명사로 만들어 놓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얼마 전 뉴욕의 한 지인에게 잡스 타계 이후 애플 매장에서의 변화에 대해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매장을 찾는 사람들의 ‘인식’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이폰 시리즈를 구입하는 많은 고객들의 입에서 “나는 잡스의 ‘유품’을 산다”는 말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는 잡스가 왜 초발 혁신가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세상에 어떤 비즈니스가 상품이 없어서 셔터문을 내리며 고객을 밤새도록 기다리게 하는가? 전통적인 마케팅 이론에 의하면, 이는 고객 불만의 대표적인 예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 고객들은 잡스와 애플이 대량생산해 낸 모바일 기기를 손에 넣으며 상품을 ‘유품’의 수준으로까지 격상시키고 있다. 그저 모바일 기기일 뿐인 상품이 유품이 되고, 유물이 되며, 아트(art)가 되는 이런 상황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여기에 바로 잡스 혁신의 숨은 힘이 있다.

잡스는 살아서 16세기 영국의 시인인 윌리엄 브레이크(William Blake)에 푹 매료되어 있었다. 가히 잡스의 영적 멘토라 해도 과언이 아닐 브레이크의 힘은 무엇이었길레 이 세기의 혁신가의 영혼을 송두리째 빨아들을 수 있었던 것일까? 이 두 사람은 어떤 접점에서 서로 만나는 것일까?

브레이크는 신비주의(Mysticism)시인이다. 그는 우리 육체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의 작용을 완전히 정지시킴으로써 감각으로는 도저히 체험할 수 없는 신령한 영혼세계의 문을 열어젖히는 시작(詩作) 활동을 했다. 그에 의하면, 하늘을 나는 종달새는 새가 아니라, 신이 보낸 전령이며, 자신은 자기가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음성을 듣고 대필할 분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브레이크에게 있어서 이 신비적인 감응은 그의 시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그에게 있어 예술은 혼신의 열정을 바쳐 추구하는 절대대상이며, 이성적 사고능력이 아닌 직관적인 통합 비전으로 작용한다. 그것을 통해 신(God)이든, 위대한 영혼(Great Soul)으로 불리는 이름이든, 무한(the Infinite)과 만나게 된다. 따라서 창조적 상상력을 말살해 버리는 이성(理性)을 사악함 혹은 죄악이라고 하면서, 그는 이성과 결별하고 자신이 이뤄야 할 문학적 과업이 창조에 있다고 주장한다. 브레이크에게 있어 자기 작품의 진짜 저자는 천국에 있으며, 자기는 그 영적 계시에 대한 비서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그는 예술 창작 활동에 있어서도 초능력 현상으로 영계(靈界)의 직접적인 도움을 얻었고, 그 방법 역시 ‘브레이큰 웨이(Blaken way)’라는 특이한 방법을 사용했다. 이처럼 그의 마음속에 형성된 추상적인 영상은 타고난 비상한 상상력을 통하여 그의 시야에서 구체적인 형상으로 시각화되어 나타난다. 잡스는 바로 브레이크와 자신을 통일시 하며 여기에 빠져든 것이다.

잡스는 감히 누구도 생각해 내지 못했을 때, 애플의 매켄토시 컴퓨터에 처음으로 아이콘을 입혀 딱딱한 정보기술에 생명을 불어넣었고, 쫓겨난 애플에서 새로운 비전을 지닌 채, 죽음으로부터 다시 올라왔었다. 훗날 픽사(Pixar)를 인수하고 <벅스 라이프>를 만들게 된 것도 그가 보았던 어떤 비전이 눈앞에 어른거렸을 것이다. 현재의 혁신을 이루기 위해 미래로 가서 현실의 ‘있어야 할 바로 그 모습’을 그리며 새로운 혁신 기기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 물론 잡스는 거기다가 새로운 비전(미래를 끌어 오는 것)을 송두리 채 들이 부었다. 거기다가 사업적 통찰력으로 시장 추이를 날카롭게 응시하다가 자본, 기술, 마케팅, 디자인, 음악 유통 판도 등 필요한 각각의 퍼즐을 정확하게 꿰맞춘 다음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가 전혀 다른 분야와 시대에 살다간 170여전의 시인에 빠져드는 이유는 이런 놀라운 상상력의 세계를 시인이 열어젖혔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죽기 전 윌리엄 브레이크의 콜렉션을 팔았는데, 그때 나는 그가 인생을 정리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 아마 미래의 역사가들은 스티브 잡스가 픽사와 아이폰의 영감을 얻은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브레이크를 탐색해야 할지 모른다.

오늘날 우리 기업이나 개개인에게 필요한 것은 강한 근육질의 몸매(공장)가 아니다. 상상력이다. 그 상상력이 세상을 통찰한다. 미래의 모습을 강한 압축적 이미지로 드러내는 시인에게서 찾고자 한다면, 아마 기업은 새로운 차원의 변신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잡스는 브레이크와 닿아 있지만, 우리 경영자들이나 직장인들이 시집을 들고 있는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다. 출근길, 휴대폰 속의 어플리케이션 속이나 푹 빠져드는 그들에게서 원천적 영감이 떠오르길 바랄 순 없다. 한국 시인들의 한 달 평균 수입이 25만원 남짓 된다는 말을 듣고, 상상력의 도래를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의 수준으로는 잡스가 이뤄낸 것과 같은 차원 다른 세계를 만들어 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업 혁신의 수준은 그 사회의 문화적 수준과 비례한다. 오늘 우리 수준을 업 그래이드 하기 위해 우리는 낮선 시인들의 세계로 초대받는 ‘초발 혁신의 세계’로 뛰어 들어봄은 어떤가?#
전경일, <초영역인재>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