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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인문역사/경성천도

[경성천도] 동양평화의 보전

by 전경일 2012. 3. 21.

동양평화의 보전

일본에 3대 사명이 있다는 것은 전술한 바와 같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동양평화의 보전은 가장 중대한 사명이다. 그러나 이 곳 동양만큼 평화가 흔들리기 쉬운 곳은 없다. 이곳에는 세계 저기압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이 있다. 그리고 그 부근에는 수많은 국부局部 저기압의 중심이 있다. 몇 년 전까지는 영일英日동맹이 있어 이 저기압을 어떻게든 진압하여 큰일로 번지지 않고 항시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1차)세계대전의 결과 여기에 미합중국이라고 하는 대 고기압이 발생하였다. 그들은 힘이 있는 것을 무기로 빈번히 주변 국가를 압박하며 특히 동양의 대 저기압인 중국을 노리고 단번에 커다란 야심을 채우려 한다. 그들은 야심을 채우는 첫 단추로써 오랫동안 동양평화를 보장해왔던 영일동맹을 폐기시키고, 황금을 뿌리며 중국의 민심을 선동하여 일본에 반기를 들도록 부추기고 있다. 또한 중국의 국내통일을 방해하는 한편 국제연맹의 규약과 부전조약, 9개국 조약 등을 통해 이중 삼중으로 굴레를 씌워 일본의 손발을 묶고, 그 사이에 자신들의 야망만을 마음껏 채우려 하고 있다. 이 후 동양의 정세는 계속 악화되어 왔다.

중국은 열국이 간섭하지 않자 신이 나서 불법적 횡포를 자행하며, 밖으로는 외세배척 운동에 광분하고 안으로는 군벌의 사투가 끊이지 않아 동양의 평화는 완전히 깨져 버렸다. 이러한 때에 자국의 사명을 충분히 자각하지 못한 일본의 태평한 정치가들은 스스로가 동여맨 연맹규약, 부전조약, 9개국 조약 등에 발이 묶여 움직일 수조차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인식이 부족한 중국은 앞뒤 전후 생각지 못하고 그저 다른 나라가 부는 피리소리에 춤이나 추며 일본을 배척하고 모욕하고 있다. 그러던 중 1931년 9월 18일 중국 선양瀋陽의 류타오후에서 만주철도 파괴사건이 일어나 일본도 더 이상은 참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일본군은 분연히 일어나 일본배척의 원흉인 장쉐량을 무찌르고 난징南京 일파가 상하이에서 항전하며, 질풍노도와도 같이 군함과 폭격기를 파견하여 하룻밤 사이에 상하이의 환락지를 초토화시켜버리면서 일본을 깔봐선 안 된다는 기개를 보여주었다. 이제 일본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다. 국제연맹이든 9개국이든 동양평화를 흐트러뜨리는 그 모든 것을 우리의 자위권으로 무찔러야 한다. 치치하얼齊齊哈爾 지역도, 후룬베이얼呼倫貝爾 지역도, 러허熱河지방도, 마잔산馬占山 장군도, 쑤빙원蘇炳文 장군도, 탕위린湯玉鱗 주석도 순식간에 평정하여 이듬해 3월 9일에는 신만주국이 지평선상에 우뚝 서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후버 대통령도, 스팀슨 장관도, 맥도널드 장군도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백 가지 위협도 천 가지 간계도 사명으로 우뚝 선 일본을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이다.

국제연맹은 미국을 옵서버로 하여 대일본정책을 구상하고 마침내 리턴 경을 중심으로 한 리턴조사단을 동양에 파견하였으나 열국의 이해를 대표하는 이기주의자들이 공평한 판단을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여, 결국 42대 1의 결과로 일본은 연맹을 탈퇴하게 되었고 올(편역자주: 1933년) 3월 27일에 이를 연맹에 통보했다. 이제 일본은 연맹에서 나와 고립의 영광 아래서 신만주국을 구하고 혼자의 힘으로 동양평화를 유지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걸로 문제가 끝난 것이 아니다. 아니 앞으로가 진정한 시작이다. 집착이 큰 앵글로색슨 민족이 만든 국제연맹이 이 정도로 물러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예상대로 맥도날드는 오타와 협정을 만들어 전 영국 영토를 연합하여 일본을 경제적으로 봉쇄하려고 책략하여 동양에 대한 무기수출금지, 일인日印통상조약 파기, 일아日阿통상조약 파기를 비롯하여 일본상품을 배척하려고 관세 장벽을 높이거나 네덜란드령 인도차이나에도 이를 사주하는 등 일본 경제를 무너뜨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또한 미국에서는 루즈벨트와 스완슨이 한꺼번에 2억3천만 불의 거액을 투자하여 30여 척의 군함거포를 만들어 군사적으로 일본을 위압하는 동시에, 러시아에까지 접근하고 있다. 이런 정세 속에서 이이제이以夷制夷 주의가 정치외교의 요체라고 여기는 중국이 얌전할 리 만무하여 장기 항일, 강력한 협조거부 등을 외치며 소란을 피우는 것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제 연맹탈퇴의 효력이 2년 후(1935년 4월)에는 완료될 것이고 남양 위임통치 문제, 런던 군축조약의 만기(1936년 4월) 등이 눈앞에 닥쳐있음을 생각할 때, 동양의 앞날을 애타하지 않는 자는 일본의 남아男兒라 할 수 없다. 비유하자면 지금의 일본은 고작 1천의 소병으로 곤고산金剛山의 치하야성千早城에 들어가 89만의 북조군을 상대로 천하를 다투던 무장 구스노키 마사시게正成의 처지와 같은 처지이다. 무기는 어떻게 하고 식량은 어떻게 할 것인가. 삼척동자도 백 살 먹은 노인도 모두가 각오를 다져야 하는 비상시국을 맞게 된 것이다.
참고: <경성천도: 도쿄의 서울 이전 계획과 조선인 축출공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