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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인문역사/남왜공정

일본의 한반도 재침론

by 전경일 2012. 8. 16.

일본의 한반도 재침론

 

일본이 역사상 국가적 차원에서 주도한 공식적이며 대대적인 한반도 침략 행위를 분석해보면 일정한 패턴이 있다. 국가 차원의 대대적 침략 준비 행위를 포함해 일본에 의한 주요 침략 행위 및 그에 맞선 우리 측의 대응을 살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시점과 시차를 보인다.

 

[왜(倭)의 국가적 침략 시점과 시차표]

침구시점

(침구대응시점) ㉠ 295년- 왜구 침구에 대한 신라의 왜구 근거지 정벌계획(실행안됨)

침구시차 (96년)

㉡ 391년- 왜와 백제군의 고구려 침공(실행)

(6년)

㉢ 397년- 백제와 화통한 왜의 지원군이 신라국경 침범(실행)

(10년)

㉣ 407년- 왜구 침구에 대한 신라의 왜구 근거지 정벌계획(실행안됨)

(256년)

㉤ 663년- 왜 백제구원군의 백촌강 전투(실행)

(68년)

㉥ 731년- 왜의 신라침공(300척의 전함을 동원해 신라를 침공했으나 패배)

(30년)

㉦ 761년- 왜의 ‘신라정토 계획’(실행안됨)

(514/520년)

㉧ 1275(1281)년- 왜의 대(對)고려 침공 계획(실행안됨)

(1,2차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에 대한 보복성격으로 고려 정벌계획)

(311/317년)

㉨ 1592년- 임진왜란(조․일전쟁)(실행)

(284/318년)

㉩ 1876년- 운양호사건(1875년)으로 강화도 조약 강제 체결(실행)

1910년- 한․일합방(실행)

(34/69년)

㉪ 1945년 해방

(66년)

㉫ 2011년-현재 시점

( ? 년)

㉬ ( ? )년 재침

 

위의 표에서 보듯이 서기 295년, 신라가 왜구의 침구에 대응해 왜구 근거지를 정벌하려 했던 계획은 이미 그 이전부터 신라가 왜의 집중적인 노략질 대상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이 정벌 계획은 실행에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신라로써는 ‘대(對)왜구전’ 양상을 띠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96년이 지난 391년, 왜와 백제군은 고구려를 침공하고, 6년이 지난 397년에는 백제와 화통한 왜의 지원군이 신라 국경을 침범하고 있다. 이에 맞서 신라는 10년 후인 407년 왜구의 근거지에 대한 일대 정벌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이 계획은 295년 의 계획 때처럼 실행에 옮겨지지는 못했다. 그로부터 256년 지난 663년 들어 백제의 부흥군과 왜의 백제구원군은 백촌강(白村江)에서 나당연합군과 교전하고 패한 왜의 백제구원군은 한반도에서 완전 철수하게 된다. 이로써 한반도 서남지역에서 발흥했던 백제는 멸망하고 한반도는 통일 신라로 재편되는 새로운 정치 지형도가 한반도 내 형성되게 된다. 이처럼 고대 시기 왜와 한반도는 오랜 기간 상호 무력을 주고받으며 침구와 그에 대응한 정벌로 맞서며 상호 견제해 왔다.

 

그런데 백촌강 전투를 기점으로 백제는 완전 멸망하지만 왜의 한반도 침구마저 종식된 것은 아니었다. 68년 후인 731년 왜가 다시 300척의 전함을 동원해 신라를 침공한 것이다. 이 전투에서 왜는 패배하지만, 30년 후를 다시 기약한다. 중국에서 일어난 ‘안사의 난’과 맞물려 일본이 계획한 761년 ‘신라정토 계획’이 이것이다.

 

이상과 같이 고대 시기 왜에 의한 일련의 침구와 그에 맞선 우리의 정벌 계획은 한․일 간 피할 수 없는 대립과 침구-대응 관계를 잘 보여준다.

 

761년 왜의 신라정토 계획 때로부터 일본의 침구시기 및 시차를 살펴보면, 각 침략 행위는 앞 사건과 각각 514/520년(㉦-㉧), 311/317년(㉧-㉨), 284/318년(㉨-㉩)의 시차를 보이고 있다. 특히 1275(1281)년 일본의 ‘대(對)고려 침공 계획’과 1592년 임진왜란 사이의 시차는 311(317)년, 임진왜란과 운양호 사건으로 인한 강화도 조약․한․일합방 사이는 284(318)년의 시차를 보이고 있다. 두 개의 침략 행위는 시점 상 자로 잰듯한 유사점을 보이는 특징이 있다. 앞서 벌어진 침구와 그에 대응한 ‘대(對)왜구전’ 및 또 다른 침구 행위와 달리 특별히 이 두 개의 사건이 시기와 시차 면에서 유사성을 보이는 것에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역사 전개에서 부동의 법칙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과거 일본의 침략 패턴을 분석해 보면 고대 시대 전쟁과 달리 중세 이후로 접어들면 왜구 침구 시차는 거의 유사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 또한 시대를 불문하고 앞에서 보듯 ㉡, ㉢, ㉤, ㉥, ㉨, ㉩은 구체성을 띤 실질 침략 행위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크고 작은 수많은 왜구 침구와 한․일관계의 지형도라는 변수가 반영되어 나타난 결과이지만, 특이점은 한․일 간 비교적 원만한 외교관계나 경제교역이 이루어질 때조차도 침략이나 침구 제어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과 ㉩은 시기나 상황면에서 다르지만, ‘침략’이 ‘상수’로 작용하는 데에는 변함없다.

 

그 외에도 ㉧-㉨과 ㉨-㉩ 사이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전자가 한반도로부터 문화적으로 수혈 받으면서도 지속적으로 왜구 침구가 나타난 게 특징이라면, 후자는 임진왜란 이후 일본이 서구 열강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제국주의로 발전하다가 종국에 한반도 침략을 감행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발견된다. 즉 ㉧ 이후 262(268)년 후인 1543년 일본은 서구 화기인 조총을 입수하면서 물리력 면에서 침략의 동력을 마련함으로써 49년 뒤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비교해 ㉨-㉩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이 근대에 들어서며 제국주의 사상과 침략적 본성을 강화해 대대적으로 군비 확충에 나선 끝에 한반도 침탈에 본격 나선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임진왜란 이후 ‘지속가능 전쟁’으로써 강화도 조약과 한․일합방을 준비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앞서 임진왜란 이후 ‘조선 정부’와 ‘일본 막부’간 외교 재개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전란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처럼 ㉧-㉨과 ㉨-㉩은 시차 상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한․일관계사에 드러난 침략의 과거 패턴이 앞으로도 작용할까? 이 같은 침략의 시차가 반복될 경우 일본에 의한 한반도 재침략은 ‘반드시 예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으로부터 나타나는 시차를 통해 다음과 같은 예측이 가능하다.

 

① 514(520)년 ② 311(317)년 ③ 284(318)년 ④ (34/69)년 ⑤ 66년 ⑥ ( ? )년

 

일본의 한반도 재침이 예정되어 있다면, 그 시기(㉬)는 언제쯤일까? 또한 위의 해당 시점(⑥)은 언제쯤으로 예상될까?

 

현재 한․일 간 갈등 국면으로 볼 때 그리 오래지 않은 시점에 일본에 의한 침략이나 그에 준하는 위태로운 침구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앞으로의 침구 행위는 과거와 달리 다양한 형태를 띨 수 있다. 이 점에서 명치유신기 일본 내에서 군국주의자들이 득세해 가는 과정은 이후 근대시기에 일본의 한반도 재침 가능성을 예측케 한 하나의 지표가 된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 [출처: 남왜공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