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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경영/남자, 마흔 이후 | 마흔 살의 우정

살아보면 알게 되는 게 있다

by 전경일 2012. 10. 29.

살아보면 알게 되는 게 있다

 

나이를 얘기할 때 흔히 잃는 것에 주안점을 둔다. 건강과 의지와 용기, 그리고 경제적 자립도 같은데서 잃게 되는 것들이 쉽게 그 예가 된다. 하지만 나이를 먹는 게 잃기만 하는 것일까? 나이 때문에 얻을 수 있는 비장의 무기도 따지고 보면 참 많지 않을까? 거저 얻는 게 아니라, 인생을 통해 갈고 닦는 가운데 얻게 되는 것들 말이다. 원숙한 경험과 두터운 인적 관계, 그리고 오랜 시간 사회적 활동을 통해 쌓아온 명성이나, 관련 지식들은 나이가 주는 특별한 보너스들이다. 이 같은 요소들은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 제 아무리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인간 간에 쌓아온 활동의 결과를 단 시간 내에 얻을 수는 없다. 이런 것들은 속성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 물속의 조약돌처럼 부딪치며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중요한 지표로 인성에 바탕을 둔 인적 관계를 꼽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누구건 극복될 수 없는 인생의 강점은 세월 속에서 비바람을 맞고 단련된다. 우리는 생애의 나머지 시간을 통해 자신을 완성시켜 나가는 과정에 있다. 아직 남아 있는 시간이 있길레, 그래서 행복하다. 내 은사는 이를 가리켜 삶이 주는 특별한 선물이라고 말한다. 삶에는 처리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대부분 의미 있는 것들은 뒤로 미루게 된다는 것. 소중한 친구를 오랜만에 찾아가 만나는 일은 부모님 상(喪)을 당했다는 연락이 왔을 때에나 이루어지고, 가족간의 대화는 단절이 된 후에나 이를 복구하기 위해 시도된다.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목표를 사는 셈이다.

 

많은 사람들은 생색나고, 좋아하는 일에 집착해 진정으로 보람된 것,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들에 인색하다. 자기 마음을 풀어서 세상의 중심에 다가갈 때 우리는 인생의 참다운 가치를 알게 된다. 산다는 것은 그냥 사는 게 아니다. 그것은 이유 없이 살기 위해 숨 쉬는 것과 바를 바 없다. 인류의 일부로 태어났다는 것, 그럼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해야 하는 것 만큼 삶의 목적에 부응하는 인생은 없다. 나이 들고 세상에 부딪치고 깨지며 이런 것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인생엔 이론이나 학식 따위의 것들이 아닌 살게 됨으로써 알게 되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그것은 우리가 삶을 지속시키는 주요한 이유가 된다. 삶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다면, 우리는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상실한 채 세상에 표류하는 것인지 모른다.

 

나는 부모님과 오랜 시간을 살았으나, 그 분들의 말로 전해들은 그분들의 삶을 전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었다. 어느 날 문득, 딸아이와 얘기하다가 ‘이것은 나이 들어서도 꼭 알아 두거라. 아빠가 살아오며 느낀 것들이니까.’하고 당부를 했는데, 돌아서서 생각해 보니 그런 부질없는 일이 어디 있을까 싶었다. 내 스스로 부모 되어 하는 말이었으나, 나조차 내 부모님의 삶에 대해 아는 바도 별로 없었다. 그저 살며 들은 이야기가 다였지, 내가 직접 찾아가 많은 시간을 할애해 그 분들의 얘기를 청하거나, 그 분들이 겪은 인생에서 무엇을 느끼게 되었는지 물어 본 적도 없다. 인류로 만나 나의 부모가 되신 분들에 대해 나는 무엇을 정작 알고 있는가? 자식을 낳아 기르며 나도 부모가 되었건만, 정작 들려 줄 얘기란 무엇인가? 밥 먹어라, 공부해라, 정직 하거라, 노력 하거라... 따위의 얘기가 아닌 사람이 사람에게 남기고픈 영혼을 울리는 대화를 시도해 보기라도 했는가?

 

불혹을 넘어 앞으로 남은 내 생애에 나는 먹고 사는 문제 말고도 또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까? 거기에 내 남은 생애의 숙제가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내 은사가 얘기했듯 가장 큰 선물은 아닐까?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