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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CEO산에서 경영을 배우다

흔들바위 앞에서의 명상

by 전경일 2013. 1. 8.

흔들바위 앞에서의 명상

산꾼 경영자는 흔들릴지언정 뽑혀 나가지는 않는다.

 

“저 바위만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설악산 계조암에 이르렀을 때, 흔들바위 쪽을 바라보며 최희상 사장이 입을 열었다.

 

“저게 언제부터 저 자리에 놓여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생김새도 특이하고 들르는 놈마다 죄다 흔들며 찝쩍대도 조금 움직일 뿐 뽑혀 나가지는 않습니다. 저걸 보면 꼭 내 인생 같다니까요. 허허허.”

 

최 사장은 흔들바위 앞에만 서면 온갖 시련에도 끝내 살아남은 자신과 회사가 생각난다고 했다. 흔들바위가 까딱거릴 때는 지조도 없고 주관도 없어 보이지만, 기어코 자기 자리를 지켜내는 것이 꼭 인생을 가르쳐주는 것 같다고 했다. 그 바위도 뽑혀나가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며 속으로 인고의 심지를 박아 넣고 있으리라. 그 아픔을 생각하니 슬며시 정이 솟구친다. 수없이 밀어대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경영자의 모습처럼 말이다.

 

최 사장은 세파에 흔들려도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흔들바위를 보면 자신의 인생역정과 클로즈업이 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사업을 하며 숱한 부침을 겪었다. 어떤 때는 하루아침에 뒤바뀐 정부 정책으로 부도직전까지 내몰렸고, 또 어떤 때는 바이어가 거래처를 바꾸면서 공장이 한순간에 멈춰버린 적도 있다. 어디 그뿐이랴. 회사를 뛰쳐나간 내부 임원이 소송을 걸어 송사에 휘말리는 것은 물론, 적대적 인수합병을 추진해온 대기업 때문에 사장자리가 흔들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세파는 그를 몹시도 흔들어댔다. 하지만 그는 가슴 밑바닥에서 인생의 끈을 놓지 않는 뭔가를 부여잡고 용케도 견뎌왔다.

 

그런 시련 속에서도 최 사장이 지금껏 회사를 지켜온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자신이 강하기보다 약했기 때문에 회사를 유지하고 지탱해올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유약함이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했다는 얘기다. 휘어지되 부러지지 않고 갖고 싶되 계륵처럼 보이는, 갈구하되 흠이 있어 보이는 그의 특성이 회사를 지키게 한 힘이었던 것이다.

 

“나보다 강한 회사나 사장들은 이미 오래 전에 죄다 부러졌어요. 저 나무 보이죠?”

 

그는 등로 옆의 계곡 쪽으로 부러진 채 썩어가고 있는 나무 동강을 가리켰다.

 

“자신이 세다고 생각하면 휠 줄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시류에 맞춰 살아왔어요. 사업도 그렇게 해왔고... 힘이 없기에 굴신도 했죠. 사람들은 참 이상한 구석이 있습디다. 내놓지 않으려고 하면 뭔가 더 있을까 싶어 흔들어대지만, 다 내놓겠다고 하면 괜스레 입맛을 잃고 오히려 손을 거두거든요. 마치 까탈스런 여자는 어떻게 해서든 꺾어보고 싶지만, 고분고분한 여자에게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죠. 나는 갈댑니다. 늘 그렇게 믿고 사업을 해왔어요. 인생도 그렇게 살아왔고요. 남들보다 강해 보이면 뭐해요. 목수의 톱 세례나 받지. 갈대를 톱으로 썰겠다고 덤비는 나무꾼은 없잖아요. 그렇다고 갈대가 약한가요? 들불을 놔도 다시 살고 산불이 나서 몽땅 타도 다음해에 제일 먼저 싹이 올라오죠. 강하다는 건 어쨌든 살아남는 겁니다. 뿌리는 살려놓는 겁니다. 내가 저 흔들바위를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나 같은 사람이 저것 보며 막걸리 한 잔 들이키는 게 설악산 산행의 묘미지 꼭 대청봉을 올라가야 제 맛인가요? 하하하.”

 

그는 남들이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강점이라고 말한다. 남들은 욕망에 대한 강한 흡착력으로 바위를 넘고 산도 오르지만 그는 벌레처럼 기듯 천천히 오르며 생각을 하고 다짐도 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단다. 그런 그의 달통한 듯한 모습에서 허허실실의 경영자 모습이 엿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사업을 포착하는 눈과 타이밍을 얘기할 때 그의 눈은 매처럼 번뜩였다. 나는 그런 그가 한편으론 섬뜩하기조차 했다.

 

“사내는 칼을 품고 다녀야 합니다. 사업이 칼처럼 단단하지 않으면 소용없어요. 실은 나는 칼집만 품고 사업을 해온 거나 진배없어요. 그래서 상대가 내 회사를 집어삼키려 할 때, 내가 칼도 없이 칼집만 휘두른다는 것을 모르게 하고 싶었죠. 저 아래는 고수들이 참 많아요. 내 사업은 실은 쭉정이라 저들이 손을 뗐구나 하고 생각했던 적도 많지요.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도 하고. 그때마다 빈 칼집을 더듬으며 갈대처럼 울었지요. 내 칼이 어서 자라기를 고대하면서 말입니다. 흔들리면서도 내 길은 곧추 걸어왔고 칼을 키웠습니다. 이제 조금은 사업이 자리를 잡아가는 듯합니다.”

 

세상에 대충 사업을 하고 대충 성공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말은 대충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산의 매력에 푹 빠져드는 건 온갖 풍상에도 용케 버티고 있는 바위가 전해주는 도를 깨달아서가 아닐까? 산꾼의 얘기가 목탁 소리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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