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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해녀처럼 경영하라

경쟁은 삶의 기본 조건

by 전경일 2013. 1. 28.

경쟁은 삶의 기본 조건

원칙을 지키고 이를 실행하는 것은 조직 발전의 기초가 된다

 

바다에서의 삶은 경쟁의 연속이다. 협업과 협력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자기 능력에 따른 물질이다 보니 경쟁력은 물질의 기본 조건이 된다. 해녀들의 치열한 삶이 가져오는 경쟁의 면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일반인이 알고 있는 것과 달리, 마을에서 관리하는 바다는 날마다 해산물을 채취하는 곳이 아니다. 해산물의 씨를 바다에 뿌리고 가꾸고 동시에 채취해야 한다. 공동 채취 날짜를 정해 하는 것을 해경(解警)이라고 한다. 바다의 경계를 푼다는 뜻이다. 해경 하는 날에는 해경시간이 가까워지면 바닷가는 인파로 북적인다. 입어자격이 없는 다른 마을 해녀들은 입어가 용납될 수 없다. 입출어 시간을 엄수해야 되기 때문에 누구라도 1분 1초라고 빨리 들어가기 위해 손에 땀이 젖는다. 마치 마라톤 출발 직전에 대열에 가득한 긴장감을 연상시킨다. 생존을 위한 경쟁이랄까, 친하고 안하고를 가릴 것 없이 입어시간은 철저하게 지켜진다. 그만큼 프로들의 세계다.

 

입어신호가 떨어지기 전에 물에 뛰어들거나, 출어신호를 어긴 해녀는 내부 룰에 따라 엄벌에 처해진다. 재판관은 어촌계장과 해녀회장이 맡는데, 벌칙은 뭇 해녀들이 받아들일 만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동체의식은 철저하게 지켜진다. 벌칙으로 심지어는 채취물을 모두 압수당하기도 하고, 공개 사과하거나, 상군해녀의 하루치 채취량을 기준으로 해산물을 해녀회에 벌금으로 내놔야 한다.

 

바다밭은 뭍과 달라서 경계를 똑바로 그을 수 없다. 경계가 흐릿하다고 해서 자기 혼자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사람은 해녀 사회에선 좀처럼 발붙이기가 어렵다. 해경 날이면 이웃 동네 해녀들과 해녀집단끼리 격렬한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자신의 수익모델이자, 생명 밭인 마을바다를 관리하는 영락없는 관리자의 모습이다. 더구나 해경기간 동안 채취되는 소득은 1년간 가계 수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에 자칫하다단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규칙 위반에 대해서는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위법을 냉정하게 처리한다. 삶이 각박하기에 규율로 서로를 제어하고 관리하는 식이다.

 

해경시간이 되면 예전엔 큰 고둥을 불어 신호를 알렸다. 하지만 요즘엔 호루라기나 싸이렌으로 알린다. “물에 들라”, “나오라”는 구령으로 지시하기도 하며 백기나 하얀 수건을 높이 치켜들기도 한다. 그 신호는 통상 어촌계장이 맡는다. 일본의 해경은 한 노파가 산에 올라가서 헌옷을 걸친 길쭉한 막대기를 높이 들어 올림으로써 신호하기도 한다. 한ㆍ일간 관습이 비슷하다.

 

미역을 채취하는 해경기간 동안, 바다나 마을은 사람과 미역으로 넘쳐난다. 미역철에는 온 마을이 넘쳐나는 미역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미역을 널어 말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미역 차지다. 말리지 못한 미역은 썪는다. 때문에, 미역을 말리는 것은 채취 후 가장 큰 과제이다. 미역을 말릴 공간을 ‘나리’라고 하는데,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전쟁에 가깝다. 이것을 ‘나리잡다’고 말한다. 예전엔 미역을 말릴 ‘나리’를 확보하는 싸움이 왕왕 벌어졌다. 굳건한 해녀 공동체 사회이지만, 생존을 위해선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상호 협력도 하지만, 경쟁이 기본인 기업의 활동상을 보는 듯하다.

 

경쟁이 기본이더라도 경쟁논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해경제도는 말할 것도 없이 해산물이 잘 자라게 하고 공동으로 소유하는 바다를 공평하게 활용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균등한 수평의식이 배어 있는 조직문화인 셈이다. 이 모든 민간지혜는 삶의 환경을 반영한 것이자, 해녀 사회의 합리성에 바탕을 둔 것이다.

 

어느 조직이나 크고 작은 관행엔 그 나름의 까닭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삶이란, 경영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해진 선 모양이라기보다는 ‘소라 속처럼 나선형으로 조금씩 변모’하며 발전해 왔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어느 조직이든 사풍이라는 게 있는데, 이는 창업자 정신부터 차근히 진화하며 발전해 온 것이다. 급격한 변화보다는 서서히 안착해 가는 조직 문화가 오래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해경제도는 공동체를 유지하려는 공생의 원칙에 근거한다. 해산물을 잘 기르고, 해녀들 각자가 꼭 같은 조건으로 물질하려는 차원에서 볼 때 민주적이다. 해녀들은 이런 슬기를 오랜 경험을 통해 정착시켰다.

 

해녀는 거친 파도와 싸운다. 그러면서도 상생과 공영을 도모해야 살아남는다. 해녀 사회의 공동체의식이 어떤 조직보다도 강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공동이익 앞에서는 곧 단결된다. 경쟁도 하지만, 공동이익에 보조를 맞추는 해녀사회는 기업처럼 개인별 역량강화와 ‘조직 먼저’라는 대원칙이 작용한다. 경영 원리를 말하기 전에 기업은 삶이 가져온 이 탁월성의 경영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