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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해녀처럼 경영하라

해녀들의 바다는 우리들의 바다와 다르다

by 전경일 2013. 2. 12.

 

해녀들의 바다는 우리들의 바다와 다르다

바다라고 다 같은 바다가 아니듯, 경영 리더라고 다 같은 경영 리더가 아니다

 

바다는 춤춘다. 늘 유동적이다. 그러다보니 물질하는 바다는 움직임에 따라 다양한 이름이 붙여져 있다. 해녀들의 바다에는 등급이 있다. 어린 소녀들이 잠수를 배우는 가장 얕은 바다는 ‘애기바당’이라 하고, 상군이나 대상군 그룹만 갈 수 있는 먼 바다는 ‘난바르’라고 한다.

 

해녀는 훈련을 쌓으며 점차 깊은 바다로 나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여름철 해수욕을 오는 일반 행락객 앞에 펼쳐진 바다와 달리, 해녀들의 바다는 프로들의 바다라 할 수 있다. 프로들의 바다로 가는 길은 길고 멀다. 그 여정에서 누구보다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프로해녀들을 만날 수 있다.

 

해녀들이 부르는 바다는 이름도 다양하다. 진주가 나오는 바다를 ‘진주바다‘라 하고, 수심이 깊으면 ’깊은 바다‘, 바닷가에서 멀리 나간 바다면 ’나간 바다‘라고 부른다. 거리가 아득히 먼 바다를 ’긴 바다‘, 가까운 바다는 ’짧은 바다‘라고 한다.

 

바다 이름이 각기 다르듯, 물살 종류도 다르다. 자그만 물결을 ‘족은누’, 큰 물결을 ‘큰 누’라고 부른다. 자그만 물결마저 일지 않는 잔잔한 바다는 ‘사발물’이라고도 한다. 사발에 담근 물처럼 고요하다는 뜻. 이런 바다는 종종 ‘기름잔’에 비유되기도 한다.

 

또한 갑자기 몰려오는 물결을 ‘문둥절’이라고 한다. 물질 중 느닷없이 ‘문둥절’이 눈에 띄게 되면 해녀들은 “아이고, 저기로 ‘문둥절’이란 큰 물결 온다.”라고 하며 같은 배를 타고 어장으로 나간 잠수를 향해 소리친다.

 

반면, 잔잔하게 치는 물결은 ‘사스레기’라고 한다. “시스레기 인다.”라고 표현한다. 귀염둥이처럼 예쁘장한 물결을 ‘고장놀’, 또는 ‘꼿놀’이라고 하고, 바닷속 거친 해류를 ‘웨살’이라 일컫는다. ‘웨살’의 반대말은 ‘족살’이다. ‘웨살’은 조수의 주기, 곧 무수기와 깊이 관련된다.

 

무수기의 제주어는 ‘물찌’로서, 15일 단위로 되풀이되는 1회의 무수기를 ‘ 물찌’라고 한다. ‘ 물찌’가 해녀사회에서는 삶의 리듬을 이룬다. 이처럼 바다가 모든 것의 기준이 된다.

 

해녀의 물질은 모든 것이 프로세스화 되어 있고 사용되는 각 도구들은 물질에 최적화된 것들이다. 즉, 도구를 착안해 낸 것도 모두 바닷 속, 삶의 현장에서 고안된 것이다. 집적된 지식이 생산도구의 혁신을 가져온 셈.

 

많은 장구 중 몇 가지만 예를 들면, ‘닻돌’은 망사리 밑바닥에 매다는 돌을 일컸는데 해녀가 작업하는 동안 망사리가 조수에 휩쓸려 멀리 흘러가지 않도록 닻의 역할을 한다. 해녀는 작업 현장에 도착하면 이것을 바위틈에 흘려 넣고, 작업이 끝나면 망사리에 넣고 이동한다. 망사리와 닻들을 연결하는 줄인 ‘닻줄’도 작업하는 수심에 따라 다르다. 수심이 깊은 물에서 물질하는 상군해녀의 닻줄이 긴 건 당연하다. 이처럼 역량에 따라 도구를 활용하는 건 프로세스와 되어 있다. 또한 작은 성과물을 관리하는 방식도 해녀장비엔 고스란히 나타난다. 예컨대, ‘오분재기조락’은 오분재기만 넣는 조락을 말하고, ‘조게홍사리’는 조개를 파서 담는 조락을, ‘파치조락’에는 그날의 채취물 중에 작아서 팔수 없지만,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들만별도로 넣어 둔다. 물론 해산물을 많이 채취취할 때를 대비해 ‘굴룬조락’을 준비하기도 한다. 여분의 조락을 말한다.

 

해조류를 캘 때 쓰는 장비도 각 쓰임새가 다르다. ‘정개호미’는 미역, 톳, 모자반과 같은 해조류를 채취할 때 사용한다. 농사에 사용하는 낫과 형태는 같으나 바닷물에 적합하게 혁신해 낸 것이다. 성게 채취용 호미인 ‘성게호멩이’는 바위틈에 박힌 가시투성이인 성게를 후벼 파기 위한 용도로 개선된 호미다. 물론 떡조개를 채취하기 위해서는 ‘오분재기호멩이’를 별도로 사용한다. 장비혁신은 문어를 잡을 때 쓰는 ‘뭉게까꾸리’의 경우에도 철저하게 대상물의 채취 특성을 반영해 만들어 낸 것이다. 모든 장구는 오랜 물질 프로세스 혁신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현장을 모르고서는 이런 도구 혁신이 이루어질 수 없기에 물질은 끊임없는 개선의 과정과 맞닺아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해녀들의 개념과 피서객으로 찾는 뭍의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다. 해녀들의 ‘섬’은 우리가 생각하는 섬과 다르다. 해녀 ‘섬’에는 바다 밑에 누워있거나 썰물이면 들어나는 ‘여’가 추가된다. ‘여’란 암초를 뜻한다. 이곳은 어장을 결정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물론 해초가 듬뿍 자라는 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물 밖에선 볼 수 없는 암초 또한 해녀들에겐 경영현장으로써 하나의 ‘섬’이 된다.

 

현대 사회는 보이는 것만이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 보이는 상품은 산업혁명 이후부터의 상품이지만, 디지털은 다르다. 보이지 않지만, 무궁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검색엔진 하나로 시작한 구글이 시가총액 170조에 해당되는 것은 새로운 가치의 힘을 엿보게 한다.

 

가치란 보이지 않는 경영의 바다 밑 속을 꿰뚫어 보는 것이자, 거기 놓여 있는 미답의 사업 영토를 찾아내는 것이다. 오랜 물질을 통해 뭍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암초까지도 섬으로 인식하는 제주해녀들은 지식경영의 주도자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매핑하는 작업을 수행한 해녀들은 필시 불확실성의 경영에 하나의 메시지가 되어 줄 것임에 틀림없다. 바로 여기가 물질과 경영이 만나는 지점이다.

 

 

<해녀들의 역량에 따른 바다의 명칭>

 

 

 

 

 

 

 

 

<물질하러 바다로 나가는 해녀><사진자료: 해녀박물관>

 

기업에서는 신입사원이 대리, 과장, 차장, 부장을 거쳐 임원이 되고 경영진이 되듯, 각자 지위별로 맡은 바 업무가 다르고, 수준이 다르다. 해녀들이 대하는 바다도 이와 같다. 해녀들은 난이도가 쉬운 바다에서부터 높은 바다로 점점 나아간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자신의 역량을 넘어선 바다를 탐내면 그럴 땐 위험이 닥친다. 당연히 판단력의 리더십이 의심을 받게 된다. 바다 이름에 따른 해녀들의 역량을 살펴보자.

 

바당 : ‘앞바당’이라고도 하는 데 바닷가에서 바로 보이는 그리 깊지 않은 바다를 뜻한다. 아주 얕은 바다를 지칭하는 ‘안고냥’이라는 말도 있다. 해녀로 정식 입문하면 ‘바당’에서 작업을 하면서 기량을 계속 연마해 나가게 된다.

 

할망바당 : 65세 이상 된 할머니들을 위한 심이 얕은 마을 앞 전용 바다 구역을 말한다. 이 구역을 침범하는 젊은 해녀는 해녀공동체는 물론이고 마을 전체에 비난거리가 되어 입방아에 오르고 심지어는 징계감이 되기도 한다. 배려할 줄 모르는 행동은 나중에 아무리 뛰어난 역량을 지닌 해녀로 성장하더라도 대상군 그룹이 되지 못하고 그저 상군에만 머문다.

 

ㆍ난바르 : 마을을 한참 벗어난 먼바다를 말한다. 수심이 10미터에서 20미터 가량 되는 해산물이 풍부한 바다로 ‘먼바르’라고도 한다. 누구나 쉽게 작업할 수 있는 바다가 아니어서 중군 이상의 그룹만 작업장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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