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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해녀처럼 경영하라

휴식과 문화 공동체, 불턱

by 전경일 2013. 2. 15.

휴식과 문화 공동체, 불턱

기업내 커뮤니케이션이 불턱처럼 이루어진다면 기업은 초우량 기업이 될 것이다

 

일에는 휴식이 필요하다. 휴식은 쉬는 것만이 아닌, 새로운 도약을 위한 재충전 기능이 있다. 주로 바위 옆이나 우묵한 곳에 돌을 쌓아서 바람막이를 한 곳을 불턱이라고 하는데, 해녀들에겐 불턱이 휴식공간에 해당된다. 물질하고 나온 해녀들은 여기서 불을 피우고 언 몸을 녹인다. 일종의 재충전 장소인 셈이다.

 

불턱을 유심히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불을 쬐는 데서도 해녀들의 위치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모닥불에 둘러앉는데도 자리가 정해져 있다. 상석에 앉은 해녀가 당연 마을의 리더다. 해녀들은 누가 지적하지 않아도 자기 자리가 어딘지 안다. 가장 좋은 자리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다르다. 연기와 불티가 날아들지 않는 자리가 아무래도 가장 좋을 수밖에 없다. 대상군 자리가 바로 이곳. 대상군을 중심으로 좌우에 상군이 앉고 중군과 하군이 그 다음을 차지한다. 해녀가 많아 한 불턱에서 수용할 수 없을 때에는 아예 상불턱, 중불턱, 하불턱을 별도로 만들기도 한다.

 

중군과 하군은 연기와 불티가 나는 곳에 자리 잡는다. 첫 물질을 나선 ‘애기잠수’나 ‘하군’이 ‘상군’의 자리에 앉을 수는 없다. 그 만큼 위 아래, 선임자와 신참자 차이를 둔다. 물질자체가 험난하기에 뭍에 올라와서도 각기 대우가 다른 셈이다. 해녀들은 이곳에서 보온을 위해 ‘뚜데기’를 걸치고, 각자 한 단씩 들고 온 땔감으로 모닥불을 만들어 소라나 미역귀를 구워먹으며 휴식을 취한다.

 

불턱은 아름다운 공동체 장이다. 추위를 많이 타는 해녀나, 먼저 바다에서 올라온 해녀가 불을 지필 수도 있지만, 먼저 일을 끝낸 해녀가 다른 해녀들을 위해 불을 피워놓는다. 물론 뒤이어 올라오는 동료들의 무거운 짐을 받아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서로간의 우의와 신뢰는 이렇게 해서 쌓여진다.

 

물질은 검푸른 바다에서 목숨을 내걸고 하는 일이니 만큼 단합과 헌신의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혼자만 편하려고 하면, 모두의 안전을 해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솔선수범의 정신은 리더의 필수조건이 된다.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리더십이 평가받는 것이다.

 

당장 눈앞의 이익으로 이기적인 태도를 취하는 해녀는 개인적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대상군이 될 수 없다. 물론 공동체의 주요 결정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일종의 섬김의 리더십, 즉 서번트 리더십을 통해 구성원에 봉사해야만 리더로 인정받는다. 상위권 진인 요건은 이처럼 배려정신에 바탕을 둔다. 피곤에 지친 상태에서는 누구도 꼼짝달싹하고 싶지 않을테지만, 해녀들은 이런 솔선수범을 통해 리더십을 배양한다.

 

그런데 대상군 자리는 어떻게 정해질까? 최상석은 스스로 대상군이 됐다고 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자리는 모두의 합의에 의해 민주적으로 추대된다. 아무리 해산물 채취에 탁월하더라도 평소 리더십에 의문을 받았다면 그 자리에 오를 수 없다. 공동작업인 ‘개닦기’에 자주 불참한다든가, 다른 해녀의 영역을 침범한다든가, 조직 결속에 저해되는 이기적 행동을 보이면 그 해녀는 대상군이 될 수 없다. 그저 스킬 면에서 상군에 머물 뿐이다.

 

물질은 체력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대상군일지라도 스스로 체력과 판단력이 저하됐다고 판단되면 그 자리에서 주저 없이 내려앉는다. 그것이 전체 조직의 안전과 성과를 지켜나가는 방법이다. 그럼으로써 나이듦에 따라 젊은 해녀 집단과 세대교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마치 기업이 젊은 피를 수혈함으로써 조직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과 같다. 물러난다고 해서 전체 해녀 조직에 대한 기여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뒤로 물러선 향도 기러기처럼 뒤따르며, 조언하고, 격려한다.

 

더 이상 나이가 들어 체력이 달리면 이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바다로 간다. ‘할망바당’이 바로 그것이다. 일종에 조직 역할의 선순환 구조, 선임자에 대한 배려, 조직에서의 신구간 갈등을 원천적으로 해소하는 조직 운영 시스템에 해당된다.

 

불턱은 생체의 원기충전 장소지만, 리더십을 테스트 받는 자리이기도 하다. 나아가 대상군, 상군, 중군, 하군 해녀들의 위계질서를 익히고, 구성원으로서 의무와 도리를 다하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다. 이런 멘토링의 장을 통해 어린 해녀는 서서히 리더십을 갖춘 해녀로 성장하는 것이다. 기업에서 이루어지는 인재 육성과 ‘좋은 직장 만들기’가 해녀 마을에서는 자연스럽게 불턱에서 이루어지는 셈이다.

 

<불턱에 모인 해녀들> <사진자료: 해녀박물관>

(사진)현대식 샤워시설을 갖춘 탈의장이 생기면서 불턱은 더 이상 사용되고 있지 않다. 하지만, 해녀들의 휴식과 정보 교환 장소로서 불턱의 의미는 현대 경영의 정보교류장과 다를 바 없다. 나아가 일하기 좋은 직장(Great Work Place)의 개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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