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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해녀처럼 경영하라

해변의 아크로폴리스, 불턱

by 전경일 2013. 2. 28.

해변의 아크로폴리스, 불턱

가장 민주적인 조직이 성과 향상을 가져온다

 

불턱은 휴식 공간만이 아니다. 해녀 집단의 집중 멘토링이 이루어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경험 많은 해녀들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식을 전달하기도 하며, 때론 삶의 애환을 서로 풀어놓기도 하는 감성 치유소이다. 지식과 감성 영역이 동시에 위로받고, 삶의 기운을 북돋우는 것이다.

 

불턱은 그 성격이 복합적이다. 워크샵을 가서 함께 한 모닥불의 추억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듯, 해녀들의 불턱도 이와 같다. 불턱은 앞으로 해녀공동체를 어떻게 이끌고 나가야 할지 협의하는 세미나 장이기도 하며, 마을의 소문이 집중되는 정보교환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여론이 집약되기도 하고, 그에 따라 해녀 사회의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전천후 상시 회의장이다. 바다에 대한 지식과 삶의 지식을 쌓아가는 지식 나눔터의 공간이자, 동시에 일과 휴식이 함께 어우러지는 인간미 넘치는 직업 환경이기도 하다.

 

대화의 주제도 다양하다. 물질하면서 전복을 놓친 일, 채취량, 채취과정과 채취물에 대한 정보도 나누고, 나아가 마을의 대소사도 공유한다. 만일 먼 바다로 며칠씩 나가는 ‘난바르’ 물질이라면 배 위에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불턱을 삼기도 한다.

 

불턱을 해녀들의 아크로폴리스라고 하는 이유는 모든 주제의 대화가 집결되고, 자유스럽게 토론에 붙여지기 때문이다. 대상군이라고 대화를 독점하는 것이 아닌, 모두가 동시에 이야기 한다. 그러다보면 어떤 문제건 결론에 이르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결론을 도출해 내는 것은 대상군일 수도 있고 모두일 수도 있다. 그래서 민주적이다. 더군다나 합의에 이르는 결론의 내용은 모두가 이미 공감하고 있는 것들이어서 별도의 설명도 필요 없다. 조수와 시간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는 바쁜 물질이다 보니 이 아크로폴리스 향연은 대략 20여분을 넘지 않는다. 물때에 맞춰 작업을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흔히 어느 조직이건 회의가 많을 경우, 회의 시간만 길어질 뿐 어떤 건설적 결론에도 이르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회의 목적도 잃고, 결론도 도출하지 못한 채 비생산적으로 끝난 버리고 만다. 심지어는 다음번 회의 일정을 잡는 것이 회의의 목적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조직내 지식인 그룹들이 하는 회의와 달리, 해녀들의 회의는 의사결정이 뚜렷하다. 해녀들의 회의는 여성성이 반영된 면도 있지만,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도 다르다. 사안별로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사안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으로 끝맺음을 한다.

 

왜 그럴까?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은 결론, 모두가 공감하는 것, 형평성을 맞추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주제에 따라서는 누구나 함께 ‘정성’을 올리는 것이 가장 합당한 대안이 되기도 한다. 또한 물질에 욕심내지 말고 반드시 명심해야 하는 것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모두가 타당하게 여겨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각자 결론에 이르게 되고, 그런 결론은 대부분 해녀 조직의 결론과 궤를 같이 한다.

 

오늘날 기업에서는 많은 경우,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기업이 원하는 커뮤니케이션은 상당 부분 공유 절차가 생략된 결과 중시의 커뮤니케이션에 머문다. 심지어는 결론을 전달 받아 피동적으로 실행하는 정도를 가지고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노사나 상사와 팀원 간 소통은 겉돌기만 한다. 해녀 사회의 의사결정 방식을 보면, 공유, 공감이 우선됨을 알 수 있다. 그런 공감대가 소통의 기본이자, 원칙임을 알게 한다. 기업 경영에서 주의 깊게 들어야 할 대목이다.

 

그런데 만일 어떤 안건이 나왔을 때 의견차가 많이 나거나, 의견 차가 커 결론에 이르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이때가 바로 평소에 리더십을 인정받아 온 대상군이 나설 차례다. 의견 일치를 못 보는 안건에 대해서는 예전엔 ‘대상군’ 집단의 의견을 따랐다. 하지만 요즘엔 어촌계의 회의를 통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 다분히 민주적일 수밖에 없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