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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해녀처럼 경영하라

멘토링의 시작과 끝

by 전경일 2013. 6. 10.

멘토링의 시작과 끝

지식은 후배 해녀들에게 전파되며 해녀 사회의 발전을 꾀한다

 

해녀사회의 구심점은 불턱이다. 불턱은 휴식과 지식이 함께 이루어지는 곳이다. 물질하고 온 해녀들이 요란스럽게 나누는 대화속엔 갖가지 정보가 실려 있다. 바다의 작황에 대한 전망, 조금 전 바다에서 영역을 침범한 해녀에 대한 고발과 변명, 일상생활에 대한 애환 등 주제도 참 많다. 듣는 이나 말하는 이나 잡담 같아 보이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멘토링과 카운슬링, 코칭이 동시에 벌어지는 셈이다.

 

어린 해녀에게 불턱은 더할 나위 없는 지식 전수의 장이다. 바다에서 당한 고충이나 궁금증을 질문하면 상군 해녀로부터 즉석 현장교육을 받을 수 있다. 일테면 오늘 같은 물때에는 바다 속에 들어가서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며 해산물을 채취해야 체력을 아끼는지, 전복이 좋아하는 해조류는 무엇인지, 보호색을 띠고 있는 독가시 고기를 식별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 실제 경험에 바탕한 산지식을 전해 준다. 또한 이곳에서는 사고 사례를 통해 ‘바다에서는 욕심이 사고를 부른다’는 교훈을 되새겨 주기도 한다. 리스크 매니지먼트와 기회 포착이 동시에 벌어지고 다른 한편, 바다라는 일터에서의 기회, 위험요인이 분석되기도 한다. 기업에서처럼 스왑(SWOT) 분석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바다 지형도에 대한 지식 전수는 전체 사업 환경에 대한 조망권을 넓혀 준다. 어떤 곳에 어떠한 종류의 해산물이 있으며, 물 흐름이 빠른 바다는 어느 목이라는 환경 분석과,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헤엄을 치기 위한 방법 등 매우 구체적인 물질 행동요령까지 알려준다. 환경 분석과 대안까지 동시에 제시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쌓여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작업 중 터득한 이론과 작업과정 중 겪은 실제상황을 정확히 전달한다. 지식이 충실히 후배 해녀들에게 전파되는 것이다.

 

이처럼 해녀 사회는 철저한 현장교육을 통해 다음 세대의 해녀를 배출해왔다. 해녀 멘토링은 철저하게 위험을 안고 사는 직업의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된다. 그러기에 어느 직업보다도 현장성이 강하다. 아무리 현장성이 강해도 바다는 늘 움직이기에 이들의 지식은 뭍의 지식과 달리 움직여야 한다. 가장 가변적인 환경에 놓여 있다 보니, 무엇보다도 변화주도형이 되어야만 한다.

 

해녀가 배우고 숙지해야 하는 것은 해산물 채취에만 있지 않다. 파도가 넘실대는 작업 환경은 스킬만이 아닌, 개개인의 완성된 인간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에 멘토링은 성과에 집중되지 않는다. 성과를 이루고, 조직의 지속발전가능성을 꾀하기 위해서라도 일에 임하는 자세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격도야나 인성관리는 전체 조직의 성과와 관련 깊다. 해녀사회는 개인의 인격을 도야하고, 자신에 엄하며, 동료에게 관대하고, 자연 앞에 겸손할 줄 아는 것을 불문율로 간직하고 있다. 이는 대자연에 맞서 겸손함을 알게 함으로써 자연을 넘게 하는 것이다. 마치 에베레스트 등반가들이 하나같이 등반 성공을 위해 기도할 때, “산이 나를 허락해 달라”고 염원하는 것과 같다. 자신에게 엄격하지 못했을 때는 자기 물질기량을 과대해 모험을 하게 됨으로써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자신을 늘 조심시키는 것이다. 이건 대자연 앞에 선 사람들에게나 해당되지 인간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수많은 경영 리더들이 겸허할 줄 모르기에 무너졌다. 겸허할 줄 모르면 들뜨게 되고, 그러면 온갖 위협요인이 간과된다.

 

1989년 3월 24일 미국 알래스카 부근 프린스 월리엄 해협에서 유조선 엑슨(Exxon) 발데스호가 암초에 전복되어 3,700여 톤의 원유가 알래스카 해안에 석유를 쏟아내기 시작했을 때, 회장인 로렌스럴(Lawrence Rawl)은 언론에 매우 강한 불신감을 드러내며 전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의 불손한 태도에 언론은 물론 미국인들은 ‘오만한 기업’으로 엑슨을 낙인찍었다. 그가 만일 겸손하게 대응하기만 했어도 여론은 그렇게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모두 자만이 불러 온 결과였던 셈이다.

 

불턱에선 상군 해녀가 도덕률에 대한 강의가 수시로 반복된다. 물속이라 하여 삶의 기준이 없어지는 건 아닐 터, 물질을 시작하는 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이 같은 인성 교육은 계속된다. 초년기 해녀들은 ‘잠수바다’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므로 물질작업에 대해서는 언제나 윗사람의 지시에 따른다. 그리고 이 같은 고된 훈련의 과정을 거쳐 해녀가 되고, 상군이 되어서는 해녀로서 후배들에게 오랬동안 지켜온 ‘가치’를 전파하는 것이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