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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포해전: 전투수행을 위한 협력체계를 강화하라

by 전경일 2014. 9. 3.

웅포해전: 전투수행을 위한 협력체계를 강화하라

 

부산포 해전 이후 5개월간 장군은 해상전투를 하지 않았다. 유능한 지휘관은 기다리는 동안 전략을 짠다고 하던가? 휴전상태에 있는 동안 장군은 새로 선박을 건조하고,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등 전력을 다했다. 또한 결원 인원 보충에 모든 노력을 집중했다. 다음 싸움을 위한 일대 점검 차원이었다.

 

그 무렵인 1593122일과 25, 선조는 두 차례에 걸쳐 장군에게 유서(諭書)를 내렸다.

 

명나라 이여송이 대군을 거느리고 평양, 황해도, 서울을 수복하려고 진군을 하면 왜군이 도망 갈테니 수군을 지휘하여 왜군의 귀로를 차단하고 전멸하라.

 

유서를 받은 장군은 모든 전선을 동원하여 본영 앞바다에 집결하도록 하고, 전라우도와 경상우도 수사에게도 합동으로 출전하도록 지침을 통보한다. 5차 출전일을 22일로 정했으나 연일 계속되는 세찬 겨울 비바람에 해상조건이 호전된 6일에야 출전할 수 있었다. 6일 항해를 시작하여 106시쯤 온천량을 출항하여 바로 웅포로 향했다. 당시 웅포는 부산포 해전 이후 적들이 다시 집결하여 교두보로 삼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적들은 웅포를 중심으로 안골포, 제포, 장문포, 영등포, 천성, 가덕 등지에다 성을 쌓고 군사기지화하고 있었다. 장기전을 꾀한 것이다. 당시 적들은 전선 115척에 수군 1만여 명의 대군으로 수륙병진을 위한 거점을 삼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느 한곳이 공격당하면 상호 지원과 방어를 할 수 있도록 연계성을 염두에 두어 군사기지화 하는 치밀한 전략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장군은 적을 바다로 유인하려고 했다. 그러나 산기슭 진지에서 응사하며 포구로 나오지 않는 적과 맞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 웅포해전은 8대 해전 중 최장기전으로 무려 1개월여나 이어졌다. 이 시기 장군은 최초로 대규모 상륙작전을 감행해 웅포의 적을 세 방향에서 포위 공격한다. 당시 조명연합군이 배후에서 포위 공격했다면 적은 완전 박멸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육지에서 들어와야 할 명군(明軍)이 지원도 없고, 2개월여 해상작전으로 물자도 부족해 장군은 삼도 합동 함대를 해체하고 전라좌수영으로 귀항했다.

 

이 시기에는 조선수군 내부의 곪은 문제가 적잖게 표출되는데, 원균과의 불화가 작전 수행에 큰 악영향을 끼친 점이다. 발포 2호선과 가리포 2호선이 명령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에게 돌입했다가 습격을 받은 것과 진도 지휘선이 적에게 포위되어 구할 수 없게 되었는데도 경상도의 좌위장과 우부장이 못 본 체 하며 구해내지 않은 것은 모두 원균 때문이었다고 장군은 적고 있다. 웅포해전에서 이순신과 원균 두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틀어지고 만다

 

조직 내 일사불란한 명령 체계와 상호 합동작전의 의미를 퇴색케 한 웅포 작전은 당파라는 조직 이기주의가 조선수군 내부에 깊숙이 침투한 것을 뜻한다. 그만큼 내부의 통일되지 않는 작전은 힘들고 위험스럽기조차 했다. 장군은 작은 이해에 집착하는 원균의 태도에 참담함을 느꼈을 법하다.

 

기업 내부의 협력체계는 조직이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데 윤활유가 된다. 기업 구성원들이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고 구성원들 간에 상호협력하지 않을 때에는 성과 향상은 고사하고, 기업이 존속하기도 어렵다. 구성원들 상호간에 일하고 싶어 하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기업이 목표를 달성하는데 전제조건이다. 구성원들 간에 개인적 차이나 동기를 초월해 하나가 되는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기업성과는 향상된다. 경영학에서 협력을 일컬어 기업성공의 필수요소이자, 기본 개념으로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기업에서는 조직간 협력이 62퍼센트, 개인 간 협력이 21퍼센트, 집단 간 협력이 17퍼센트 순으로 관심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문간·부서간·팀간 기능별(cross-functional) 협력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집단과 조직 차원의 협력도 실은 도움을 주고받는 행위의 주체가 개인이기에 개인차원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나이, 인종, 직급을 떠나 상호신뢰하고 협동하는 조직은 동질성과 다양성 및 책임감 면에서 훨씬 높은 점수를 보인다. 이순신과 원균은 개인 간 협력은 물론이고 집단 간 협력도 쉽게 이룰 수 없었다. 만일 두 사람 사이에 협력이 보다 원활했더라면 전란은 사뭇 다르게 전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원균은 자만과 오만에 빠져 협력보다는 자신의 명망과 나이만 내세운 면이 크다. 원균이 칠천량에서 대패하고 자신까지 죽음으로 몰고 가며 조선수군을 궤멸상태로 몰아넣은 것은 단연코 상호협력 정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개인의 이기주의가 조직을 좀 먹었던 것이다. 우리 조직에 이런 소아병적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지 않은지 돌아 볼 일이다

 

원균과의 불화로 웅포해전은 큰 문제를 야기하지만, 강화협상에는 적잖은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즉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입국을 멈추게 하고 왜군의 서울 철수를 불가피하게 만드는데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