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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인문역사/남왜공정

일본의 재침을 우려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by 전경일 2015. 9. 25.

일본의 재침을 우려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 일본은 한반도를 주기적으로 침략해 왔고

지금도 일본 군국주의 세력은 한반도 재침을 획책하고 있다.

 

일본은 대륙진출이라는 광포한 욕망으로 1620년간 한반도를 자그마치 900여회나 침략했다. 이는 인류 역사상 유래 없이 긴 전쟁으로 지금도 현재진행형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의 치밀하고 집요한 한반도 공략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가? 인식은 고사하고 MB처럼 뼛속까지 친미, 친일이라는 부왜적(附倭的) 사상이 극을 이루고 있다. 한반도사에 이 같이 망국적 발언이 횡행한 적이 있던가?

 

21세기 들어서도 일본의 한반도 침략 야욕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인간의 삶처럼 역사도 탄생기, 성장기, 전성기, 쇠락기가 존재하지만 일본의 한반도 침략사에는 쇠락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주기적 침략성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일본의 끊임없는 주기침략, 그 시작에는 왜구가 있으며, 지금 일본의 신()왜구는 왜구주의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고대로부터 1149년간 이어지는 왜의 신라 정토계획(761)’, ‘고려 침공계획(1275/1281)’, ‘임진왜란(1592)’ 그리고 강화도 조약에서 한일합방(1876/1910)’까지, 일본의 한반도 침략의 끝은 어디인가? 각 침략행위 간 시차를 살펴보면, 각각 514/520, 311/317, 284/318년의 간극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일본의 한반도 침략은 주기성과 불변성을 띠고 있다.

 

일본은 한반도를 주기적으로 침략해왔다. 앞으로도 한반도를 재침할 여지가 있고 예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한반도 재침은 필연적이다. 따라서 그 시기를 예비하는 자세는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이율곡은 십만양병설을 주장하며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대비케 했다. 또한 임진왜란 종전 후, 류성룡은 후대에 있을 일본의 한반도 재침에 대비해 징비록을 저술했다. 이 책 남왜공정: 일본 신왜구의 한반도 재침 음모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분석하여 미래에 있을 후환을 경계하는 징비懲毖의 차원에서 쓰여진 것이다. 전경일이 주목하는 바는 바로 이 점이다.

 

일본의 한반도 재침설에는 필연적으로 숫자의 법칙이 뒤따른다. 여기에는 명백한 근거가 있다. 일본 명치유신과 강화도 조약까지의 시차는 9년이다. 9년은 일본이 한반도 무력 개입을 법제화한 2002년 상황과 일본 정치인이 독도 침구를 목적으로 한국에 입국한 2011년까지의 시차와 같다. 그렇다면 일본의 한반도 재침이 예정되어 있는 시기는 언제쯤일까? 이의 기준은 강화도 조약에서 한일합방까지의 시차인 34년이 될 수 있다. 이를 반영해 보면 일본의 재침이 가능한 시점은 2045년이 된다. 그렇다면 2011년과 정확히 34년의 시차를 보이고 있는 2045년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이는 일본의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다시 돌아오겠다고 선언한 기한과 같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민이 제 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이처럼 일본 침략을 통한 한일 양국사는 과거와 현재의 씨줄과 날줄을 꿰면 기름이 흠뻑 젖은 실타래와 같다. 이미 일본 침략 야욕의 불은 당겨졌다. 일본은 2045년까지 맹렬히 타오르는 침략 야욕으로 한반도를 집어 삼킬 준비를 하고 있다.

 

 

2. 일본은 왜구의 정체를 은폐조작 하고 있다.

 

한일관계에서 왜구의 존재는 특별하다. 공존과 균형보다 파괴와 살육으로 점쳐진 양국사와 괘를 같이 해온 왜구는 일본의 흉기로 한반도 900여회 침략해왔으며, 한일관계사의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해 왔다. 과연 왜구의 실체가 무엇이 길래 일본은 감추려하는 것일까?

 

1221, 일본에서는 조정과 막부 간 권력 다툼으로 조큐의 난이 발생한다. 이 난을 주도했던 일본 고토바 상황은 결국 패하게 되는데, 이때 조정 편에서 싸우던 대다수 무사들은 토지를 몰수당한다. 이후 이들은 새로운 생존 조건을 찾아 해상 무장 약탈 세력인 왜구로 극적 변신하게 꾀하게 된다. 1392, 일본의 남북조 시대가 남조의 멸망으로 막을 내리자 패배한 일족은 바다에 들어가 해적이 된다. 우리 역사상 극악스런 경인년(1350) 왜구는 바로 이들을 가리킨다.

 

일본은 오랜 한반도 침략의 주역인 왜구의 존재를 부정하려 획책하고 있다. 왜 그럴까? 대륙으로부터 꾸준히 문명의 혜택을 받았음에도 그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과거사를 왜곡하는 열등감이 자리잡고 있다. 일본이 지금은 잘 나가는 듯하나 속내는 과거에 대한 콤플렉스로 똘똘 뭉쳐있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함께 동반자로 거듭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동아시아 평화의 주역이 될 테지만, 그럴 의사는 전혀 없어 보인다. 일본의 불행은 여기에 있다.

 

이보다 더 큰 문제점이 있다. 일본은 왜구를 통한 역사 왜곡의 위험성을 전혀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 왜 그럴까? 이에 대해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 박노자 교수는 다음과 같이 통찰하고 있다.

 

가해자들이 피해자의 탈 쓰기를 좋아하는 것은 역사의 법칙중 하나이다.

 

일본이 침략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 해가며 가해 사실을 은폐하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실에서 벗어난 왜곡은 이성을 마비시키지만, 일본은 이 같은 조작 행위에 익숙하다. 여기에는 일본의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 역사 치매현상도 한 몫 한다.

 

지금 일본은 현대 왜구라 할 수 있는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득세, 정치 리더십 부재, 끝날 줄 모르는 기나긴 경제 불황, 극심한 자연재해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내부의 혼란을 외부로 분출시켜 해결하려 했던 왜구의 특징으로 보아서 지금 일본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다. 한반도 주기 침략의 밑그림이 다시 그려지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3. 1930년대 일본은 수도 도쿄를 서울(경성)으로 천도하고

한반도민 800만명을 강제 이주 시킬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였다.

 

현재의 FTA에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자.

 

1930년대, 조선에서는 일본 군국주의자 도요카와 젠요란 자에 의해 경성천도론이 강력 주장된다. 그는 일본 수도 도쿄가 너무 동쪽에 치우쳐 있어서 만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수도를 조선의 경성(서울)로 옮겨, 도쿄와 신경(길림)을 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일본은 일본인 대량 이주와 정주를 위한 거점으로 황해·발해 지역을 검토했고, 서울이나 근방인 김포, 용인 지역으로의 도쿄를 옮기려고 계획하였다. 이는 일제가 대동아공영권을 이루기 위한 목적에서였지만, 한편으로는 일본 내 지진으로 인한 잦은 피해로 수도를 한반도로 옮기려는 계획 차원이기도 했다. 수도 이전 시 일본은 조선인 800만 명을 만주로 이주시키고, 대신 일본인 800만 명을 경성으로 이주시킴으로써 한반도를 영구히 차지하고자 했다. 자연 재해든 정치적 격변이든 일본 내 불안은 이처럼 늘 한반도 침구 야욕으로 귀결되고 있다.

 

오늘날 일본 내에 지진·쓰나미 등의 자연 재해가 잇따르고 있고, 총리가 일 년에 한 두 번꼴로 바뀌는 등의 정치적 격변이 일어나고 있다. 게다가 원전 사태가 벌어져 일본 동북부의 땅이 황폐화되고 있다. 이는 역사적 사건과 비교해 보면 한반도 침략으로 이어질 요소가 충분히 무르익어 가는 일본 내부의 조건이 된다. 일본의 한반도 주기침략과 재침의 역사를 예증하는 주장이 될 수 있다. 지금 일본 극우주의의 준동은 동북아를 전화로 몰아넣을 위험요소로 커져만 가고 있다.

도요카와 젠요는 한반도의 중요성을 설파하면서 한반도민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조선민족은 4천년 동안 한반도에 거주해 왔을 뿐 지금까지 이곳을 지배했던 적이 없다.

 

오늘날 일본 극우주의자의 한반도 인식은 여기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동북아에서 일본발 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4. 독도문제는 오래 전부터 지속되어 왔지만

지금의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60년 전의 샌프란시스코 조약 때문이다.

 

현재 독도문제를 야기하게 된 중요한 부분을 살펴보자.

 

작금의 독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미건조한 주장이나 감정에의 호소가 아닌 그 실체로의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60년 전,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현장으로 가야 한다. 우리는 독도문제의 실상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2차 대전이 끝나고 4년이 지난 1949년 초부터 미국은 전후 일본 문제의 처리를 위해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독도 영유권에 대해 명확한 규정을 삽입하지 못한 채 195198일 샌프란시스코 조약은 49개국이 서명한 가운데 체결된다.

당시 미국 측의 전후 최대 관심사는 반공의 교두보로서 일본 경제의 조속한 부흥과 재건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2차 대전 시 미군폭격기지로 사용된 독도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미국의 국익을 위해 기상 혹은 레이더 기지로 쓰일 이유가 있는 것으로 고려되었고, 그런 차원에서 일본에 유리하게 조약이 작성되었다. 미국은 일본의 힘을 지켜주고 환심을 사기 위해 한국과 중국의 이익을 희생시켰고, 그 희생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독도와 조어도 열도이다. 이처럼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충실히 따르는 정책을 수행해 왔다.

 

국제법상 독도가 일본으로 넘어간다면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언급 안 된 한반도 내 모든 부속 도서를 대상으로 일본 영유권을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이 점이 독도문제의 핵심이지만, 한국에서는 여기까지 생각하고 있지 않다. 독도와 마찬가지로 다른 섬들도 우리가 실질적 지배·점유를 하고 있는 까닭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역사적으로 일본이 보여줘 온 행태를 감안해 볼 때 침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5. 일본의 독도침구 방식은 다양한 전략 하에 움직이고 있다.

 

한일 양국에서 독도문제에 대해 어처구니없는 발언, 망언, 행동을 한 이는 일본뿐만이 아니다. 한국 측도 만만치 않은 패착을 범해 왔다.

 

196293일 일본 외무성에서 열린 한·일 예비절충 4차 회의에서 독도문제로 대립하게 되었을 때 김종필은 "독도를 폭파해 버리자"고 주장했다고 보도되었다. 이는 오히라와 회담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김종필이 기자들 앞에서 "독도에서 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갈매기똥도 없으니 폭파해버리자고 말한 일이 있다"는 자신의 말로 확인되는 듯했다. 후에 김종필은 198713대 대선 토론회에서 한일협정 시 독도문제에 대한 질문에 "젊은 혈기에 폭파하는 한이 있어도 독도를 지키려 했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최초 발설자임을 시사했다.

 

2008년 들어서 독도문제와 관련되어 신중하지 못한 태도가 표면화된다. 이 해 715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200879일 일본 홋카이도 고야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때 후쿠다 총리가 (일본 사회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다케시마를 (일본땅이라고) 표기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통고하자, 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는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MB 발언 이후 미국은 2008년 독도에 대한 기술(記述)에서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바꿔 버렸다. 이때는 앞서 이 대통령이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라고 말한 715일자 보도가 나가고, 일본이 바로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선언하고 난 지 겨우 열흘 남짓 지났을 때였다. 이와 관련하여 20085, 한국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이 이명박 대통령은 뼛속까지(to the core) 친미·친일이니, 그의 시각에 대해선 의심할 필요가 없다라고 한 발언은 국익을 저버리는 집단의 행태를 잘 보여주는 바, 국제 외교상 그 진행 상황이 더뎌 보이나 결과적으로 2011년 들어 미국 정부가 한일 간 가장 첨예한 문제인 동해의 일본해 단독표기 지지를 밝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당시 MB의 속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단순 실언인가? 진실은 무엇인가?

 

그 후 20118, ‘독도 영유권 강화조치 견제 차 울릉도에 가겠다고 나선 일본 자민당 의원들이 한국에 입국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들은 입국 불허 조치로 철수했지만, 한국정부와 한국 국민을 상대로 겁박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고 일본이 정치인을 통해 구체적으로 행동화 한 사건이었다.

당시 입국한 일인(日人)들은 역사적 궤적으로 한반도를 오랜 시간 침구한 왜구와 동일 선상에 있다. 일본의 한국 식민 지배와 중국 남경대학살 등 역사적 책임을 부정하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을 주장해 온 이들은 중의원 의원 신도 요시타카, 참의원 의원 사토 마사히사, 중의원 의원 이나다 도모미 등 일본 내 강경 우익 극우파들이다. 이들은 한반도 영토 침탈을 목적으로 침구한 지금까지의 마지막 3인의 왜구이다.

 

 

6. 2010, 서울에서 있었던 일왕생일연은 단순한 축하 행사가 아니다.

 

일본에서는 일왕의 생일을 천황의 탄생일이라는 의미로 천장절(天長節)이라고 부른다. 물론 일본 입장에서는 특별한 날이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어떠한 일이 벌어졌을까?

 

한일합방이 이루어진 1910년에는 전국적으로 천장절 행사가 개최되었다. 충남 익산 보통학교에서는 헌병분견소 주체로 천장절 봉축 행사가 친일파와 지역주민들을 대거 동원한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또한 진주군수 박창규는 천장절 행사를 위해 조선인은 상당한 예복을 착용하고 참석할 것을 지시한다. 천장절은 이처럼 친일파와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침략을 위한 상징적 행사였다.

 

반면 우리에게는 일왕생일연과 관련되어 잊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윤봉길 의사이다. 1932429, 윤봉길 의사는 상해 홍구공원(현 노신공원)에서 일본군이 상해사변 승전기념식을 겸해 일왕생일연을 벌이고 있을 때 도시락으로 위장한 폭탄을 단상으로 던져 상해파견군사령관 시라카와 대장과 거류민단장 가와바타 등 2명을 현장에서 즉사시키고, 일본 제3함대 사령관과 9사단장 등 군 수뇌부 10여명에게 상해를 입히는 전과를 거두었다. 이처럼 천장절은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과 나라를 구하려는 자들 간에 전혀 다른 역사성을 띠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

2010126,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는 주한·일본대사관이 주최하는 연례행사로 일왕의 생일을 기념하는 천황 폐하 탄신 축하 파티가 성대하게 열렸다. 행사는 500여명이 몰린 가운데 성황을 이루었다. 이날 파티장에서 눈에 띈 것은 기업과 기관들이 보낸 화환이었는데, ‘祝 天皇誕辰日(축 천황 탄신일)’이라는 한자 문안과 ‘Congratulation!’이라는 영어 문안이 주종을 이루었다. 이날 생일연의 주인공은 아키히토 일왕으로 그는 조선을 병탄한 무쓰히토 일왕과 2차 대전 전범인 히로히토 일왕의 손자이자 아들이 된다.

 

화환을 보낸 기업과 정치인들의 명단을 다음과 같다.

 

[기업()]

LG(구본무, 회장), 롯데그룹(신동빈, 부회장), 호텔롯데(좌상봉, 대표), 한진그룹(조양호, 회장), 하나금융그룹(김승유, 회장), 대한상공회의소(손경식, 회장), 신한은행(수송동 지점, 최종성, 지점장), 서울사이버대학교(이세웅, 이사장)

 

[정치인]

이상득(한나라당 국회의원), 고건(전 총리), 남덕우(전 총리), 박종근(한나라당 국회의원), 김태환(한나라당 국회의원), 박정호(한일의원연맹 사무총장), 이용경(창조한국당 국회의원), 정대철(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이상우(국방선진화추진위원장, 대통령직속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 외)

 

이들은 과연 일왕 생일연의 역사적 의미를 알고나 있을까?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 정녕 통탄할 노릇이다. 반면, 이 사실을 알고도 그와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더욱 통탄해 마지않을 노릇이라 하겠다.

 

 

7. 남왜공정은 400년 넘게 존재해왔다.

 

일본은 1620년 간 한반도를 침략해 왔다. 오랜 왜구 침략사는 현재 일본의 남왜공정으로 구체화 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일본 남왜공정의 본질을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1(1602~1876: 274년간)

조선이 화호和好에 불응하면 이는 예가 아니므로非禮 재침하고 말겠다.”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왜장倭將

 

2(1876~1945: 69년간) -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 했지만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 조선총독

 

3(1945~2011: 66년간) -

독도는 무가치한 섬이며 크기가 히비야 공원 정도인데 폭파라도 해서 없애버리면 문제 가 없을 것이다.” -이세키 유지로伊關佑二郞 일본 외무성 아시아 국장

 

4(2011~2045: 34년간) -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합사 된 이들이 A급 전범자라는 것은 군사 법정의 견해일 뿐이며 법적으로 명예 회복이 된 만큼 일본에서는 전범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

 

2011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4남왜공정은 한반도 영토 침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작금 일본의 극우주의자들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왜구와 그 궤를 같이 한다.

일본 내 ‘21세기형 왜구를 근절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일본 내부의 평화 세력을 활용하는 방법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는 대다수 일본민으로부터 일본 내 극우주의자를 분리하여 고립화시키는 것을 말하는 바, ‘()왜구를 막는 일본 내 조건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일본 내 극우주의자들을 견제하는 범아시아 평화세력과의 연대를 통해 일본 극우주의를 고립·제어하는 방법도 고려해야만 한다. 일본 내 극우주의 준동을 평화 선린 세력을 통해 억제할 수 있게 외교적 영향을 강화하는 작업은 이들 세력의 고립화를 더욱 강화시켜 줄 것으로 본다. 역사상 일본이 일으킨 모든 전쟁의 불행을 고스란히 떠안은 대다수 일본민이야말로 진정한 평화 진영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우방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민을 이용하려는 책략적 차원이 아니라, 일본 극우파에 맞선 국제 평화 연대의 차원이 그 만큼 크다는 뜻이다. 세계 어느 국민인들 자신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전화戰火를 반기겠는가?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