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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경영/이끌림의 인문학

텍사스 유정(油井)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생각하다

by 전경일 2016. 6. 9.

텍사스 유정(油井)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생각하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오스틴 쪽으로 향하다보면 푸른 초원 한가운데로 유정(油井)이 보이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석유밭이다. 원유채굴하면 자연히 열사(熱沙)의 사막을 떠올리곤 하지만, 중국 요동성에 있는 유정도 옥수수 밭 사이에 방아깨비처럼 생긴 펌프가 수없이 절을 하며 원유를 끌어 올리고 있다. 그러니 텍사스의 이런 풍경은 낮선 건 아니다. 100년 동안 원유를 퍼 올렸지만 텍사스 주는 여전히 매일 11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해 내고 있다. 미국이 보유한 약 1640여개 석유탐사 시추정 중 대략 45퍼센트가 텍사스 주에 있다. 여전히 원유 생산의 본고장인 셈이다. 여기서 캐는 석유를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라고 부른다.

 

오랫동안 영원히 마를 것 같지 않던 이 샘도 점차 기우는 추세에 있다. 20세기 절반 동안 텍사스 주는 미국 내 전체 원유 생산량의 50퍼센트를 뽑아 올렸지만, 노쇠해 가는 유정은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더 이상 발견될만한 초대형 유전도 없어 보인다.

 

이런 때에 세계 유가는 계속해서 오르내리고 있다. 늘 불안정성을 안고 있는 중동 정세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줄어드는 석유 가격이 내려가길 기대하기란 쉬운 기대는 아니다. 유가가 올라갈수록 석유 기업 관계자들은 더 많은 석유를 찾아낼 방법에 골몰하고 있다. 이 난관봉착의 상황에서 과거에 없던 기술이 등장하며 석유 발굴과 유정 사용의 수명을 늘려주고 있다.

 

알다시피 유정 발굴에는 시추작업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요는 여기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탄성파 탐사자료를 참조해 시추 위치를 획정해도 석유의 부존 유무, 매장량, 생산 가능성 등은 알 길이 없다. 만약 석유 기업 관계자에게 석유가 얼마나 있겠어요?”하고 묻는다면, 그들의 대답은 한결 같을 것이다. “파봐야만 알죠.”

 

결국엔 파봐야만 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유정 사업은 흔히 도박에 비유되곤 한다. 어떤 경우엔 지각 아래로 5마일까지 파내려 가서야 가까스로 석유를 발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구멍만 뚫어 놓고 손을 털고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만약 가치 있는 유정을 발굴한 뒤 그것을 내색하지 않거나 숨겨두는 경우라면 다를까 채산성 문제라면 탐침 비용은 그대로 손해로 작용한다. 운이 좋아 채산성 있는 적지를 발견하고 숨겨둔다면 그런 것을 이 분야 사람들 전문용어로 좁은 구멍(tight hole)이라고 부른다.

 

석유 탐사는 그리 높은 확률 게임은 아니다. 그러다보니 유정 사업은 오랫동안 가치에 대한 인식에서 크게 변화를 겪어왔다. 그 인식의 변화는 마치 기업들이 본 사업 내부에서 신규 사업을 찾는 것처럼, 기존에 뚫어 놓은 유정에서 새로운 유정을 찾는 식으로 발전해 왔다. 비즈니스에서 기존사업 대() 신사업이란 틀에 박힌 대척점을 무시하고 내부에서 다시 찾는내부 혁신의 한 양태와도 같다. 주요 혁신은 대부분 내부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은 석유 산업에도 마찬가지이다.

 

일전에 나는 석유 업체의 한 임원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가 들려 준 말도 이런 것이었다. 텍사스의 유정은 직선으로 시추공을 박아 원유를 다 뽑아 올린 뒤에 기존 업자가 떠나 버리면 그곳을 인수한 다른 업체가 다시 사선(斜線)으로 탐침하면서 직선식 탐침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던 미발견 원유를 찾아낸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미 경영 용어화 된 다각화(多角化)이니 가치전환이니 새로운 시도같은 말들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런 것은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틀로 폐유정을 바라보고 거기서 효율성을 최대한 끌어올린 것이다. 단순히 직선으로 탐침 하는 것보다 잠재된 기회와 만나는 면적이 확장된다는 점에서 창조적인 발상으로 인식된다. 경영 컨설턴트인 크리스 주크에 의하면, 석유 산업에서 가장 강력한 기술력은 풍부한 새 유정이 아니라, 오래된 유정에서 다시 석유를 뽑아내는 것이다. 마치 가장 혁신적인 농법이 가장 척박한 땅에서 개발되듯이 기존에 다 뽑아버린 유정의 잠재 가치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미 철광석 분야에서는 이 방식이 널리 쓰이고 있다.

 

오랫동안 광산업자들은 철분 함유량이 높고 채굴하기도 쉬운 헤마타이트 광석을 캐낼 동안에는 저질의 타코나이트 광석은 내버려두었다. 그러다가 양질의 광물이 바닥나자 광물 중에서 가장 딱딱한 타코나이트광을 잘게 부숴 철광석 조각을 추출해내는 방법을 개발해 냈다. 처음엔 별 실효가 없을 것으로 얕잡아 보았지만 점차 그 방법은 효율성이 매우 높아 오늘날 거의 모든 철광석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얻어지고 있다. 이 방식을 처음으로 찾아낸 사람은 미네소타 대학의 교수였던 에드워드 W. 데이비스였다.

 

광산업자들이 타코나이트에 관심을 가진 것은 1870년경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이 저질 철광석을 활용할 생각을 하진 않았다. 데이비스는 남들이 관심 안 갖는 바로 이 문제에 주목했다. 그는 1913년 타코나이트에서 철을 채취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해 철을 함유하고 있는 부분이 자기(磁氣)를 띠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불순물과 산화철을 구분하는 자기선별기(磁氣選別機)를 개발해 냈다. 이 방식 개발에 20년이 소요되었다. 본격적으로 상업적 차원에서 활용된 것이 1955년이었으니 연구에서 실용화까지 근 40년 넘게 걸린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그 오랫동안 타코나이트를 쓸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일까? 그것은 양질의 헤마타이트광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양질의 철광석을 다 캐낸 다음에야 철을 얻을 수 있는 이 돌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궁즉통(窮卽通)이 불러온 결과다. 석유 산업에서도 이 원리는 똑 같이 적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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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텍사스 석유 탐침 지도. () 석유 펌프. 원유가 고갈되어 가는 텍사스 유정 지대의 새로운 선택은 기존에 미발견 된 가치를 추적해 새로운 기술과 방식으로 시추 혁신을 꾀해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전에는 찾아지지 않은 새로운 유정을 발굴하는 것이다. 과거에 폐유정으로 버려졌던 것이 이런 방식 때문에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 품질이 낮은 철광석인 타코나이트에 함유된 철광 성분 비율은 고품질 철광석의 약 30퍼센트에 불과하다. 이렇게 품질이 떨어지는 타코나이트 광석은 운반비를 절감하기 위해 제철소로 운반되는 게 아니라, 제철소를 아예 광산으로 옮겨 제련 과정을 거치게 한다. 암석 성분은 제거되고 미세한 분말로 갈아 둥근 환약같이 만들어 운송한다. 풍부한 자원 이용이 어려워졌을 때 자원 활용도를 최대한 높이고자 이런 방식이 개발되었다. ‘새로운 영역을 찾아내는 것만이 아닌 새로운 해석을 가하는 착상 혁신은 원유 부분과 마찬가지로 철광석 채굴 분야에서도 혁신 공법으로 쓰이고 있다. 이런 것은 물론 자아를 찾는 작업에서도 활용할만하다.

 

 

폐유정을 새로이 발견한 것은 기술적 문제라기보다는 사고의 전환이 가져온 결과였다. 기존에 용도 폐기되었거나 망실된 가치를 새롭게 해석하여 완전히 다른 차원의 가치로 승화시킨 것은 오늘날 경영 세계가 추구해야 할 모범 답안과 같다. 텍사스 폐유정 재활용 사례는 기업들이 실패를 통해 배우는 폐기학의 일면도 아울러 일깨워 주고 있다. 실패든 성공이든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기 때문에 영원한 승자야말로 지속적인 시도 자체일 뿐이라는 말은 원유 시추업에서 가장 적절한 교훈이 되고 있다

 

모든 면에서 생각을 달리하면 경쟁의 축을 바꾸거나 다른 시장을 겨냥하거나 없던 시장을 착안해 낼 수 있다. 통째로 경쟁의 프레임 자체를 바꾸어 버릴 수도 있다. 이 같은 접근법은 목적은 같아도 담아내는 컨텐츠는 같다. 그렇다면 이 같은 시도들은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 기존의 것을 전혀 다른 낯선 눈으로 바라보는 신착안(新着眼)을 가질 때라야 이전의 관성적 인식에서 해방된다. 이 점에서 같은 것을 달리 보고, 남들이 못 본 것을 보길을 강조한 위대한 르네상스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훌륭한 선례가 된다. 그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 있다.

 

관찰이 전부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라. 그리고 눈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에서 배워라.”

 

인식의 벽을 깨부숨으로써 발견을 이루어내라는 이야기다. 다빈치 식 이런 사고는 그의 당대에도 고전의 자구 해석에만 얽매여 있던 건축기술자들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파격은 잡다한 관심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발견으로 몸을 떨게 만드는 극도의 일체감에서 나온다.

 

다빈치의 화가로서 위대함은 역설적으로 화가가 아닌 다른 발상과 분야에서 나온다. 그의 압도적 강점은 사물의 메커니즘을 파악해 다른 여러 장르에 연결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혼령스럽고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였다. 탁월한 예술가는 현실에서 본 것을 바탕으로 그 이상의 문제를 찾아 눈앞에 있는 것의 모습을 바꾸려 하고, 그 과정에서 그 순간까지 존재하지 않던 무언가를 보고 찾아내며 창조하는 것이다. 다빈치는 그런 경험을 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는 작품을 만들 때에도 작품 하나하나에 전 정력을 쏟아 부어 한 작품의 성공을 다음 작품에서 되풀이하는 뭇 예술가들과 차별화 했다. 그만큼 창조의 샘이 넘쳤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늘 새로운 분야를 찾아 나섰다. 범인들의 눈에는 같은 것으로 보일뿐이지만, 그는 사물과 세상을 달리보고 거기에 다른 생명의 숨결을 불어 넣었다. 이런 발상자재가 다빈치가 지닌 위대함의 본령이었다. 이 점은 당대 거장들과 비교해 봐도 명확하다. 필리포 리피, 도나텔로, 마사치오, 기베르티, 브루넬레스키,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라파엘로, 우첼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베로키오, 프라 안젤리코 등 수많은 빛나는 천재들이 있지만, 그 어느 누구보다도 크고, 어느 그 누구보다도 예술가적 본질을 지니고 있으며 고정된 틀을 깨부쉈다. 이런 진면목이 다빈치의 모습이다. 예술로서 낡은 정신을 찢어 버렸고, 초라한 인간 몰골을 깨우쳐 일깨웠다. 텍사스 유정 앞에서 무지불식간 다빈치가 떠오르는 이유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참된 땅은 새로운 땅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그 신기원이 지금 그대 앞에 펼쳐져 있지만, 이 또한 보는 자에게나 보일 뿐이니 대부분 인간들의 삶은 진실과 대면하지 못한 채 일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하여 대부분 낡고, 쇠하며, 썩고, 추레하게 문드러져 인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삶의 정곡과 지금 마주해야 할 이유는 너무나 뚜렷하다. 더 늦기 전에 삶을 새롭고 봄으로써 나의 실체와 만나고 싶은 것이다. ⓒ인문경영연구소, 전경일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