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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이면, 그리고 화해법…『마릴린 먼로와 두 남자』

by 전경일 2018. 1. 21.

한국전쟁의 이면, 그리고 화해법…『마릴린 먼로와 두 남자』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유엔군 위문차 대구 동촌비행장을 방문한

           마릴린 먼로의 모습.

 

 

 

 

 

 

 

'마릴린과 두 남자'/ 전경일 지음/ 다빈치북스 펴냄

 

 

미국 배우 마릴린 먼로가 1954년 2월 대구 동촌비행장을 방문했다.

 

당시 마릴린 먼로(이하 먼로)는 미국 프로야구 선수 조 디마지오와 결혼식을 올리고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는데 첫날밤도 보내지 못하고 한국으로 가야 했다. 한국전쟁은 끝났지만 한국에 주둔하고 있던 유엔군 위문 공연 때문이었다. 대구를 방문했을 때는 배우 백성희와 최은희가 마중을 나갔으며, 동촌비행장은 환영 인파로 난리가 났다. 먼로는 4일 동안 대구에 머물면서 총 10차례의 대대적인 공연을 펼쳤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섹시한 드레스를 입고 노래하고 춤추는 먼로의 모습은 당시 전 세계적으로도 화제가 됐다. 먼로 역시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먼로는 생전 인터뷰에서 "내 생애에 가장 기억에 남는 나라는 한국이었다"고 회고했다. 지난해 강원도 인제군이 소양강 가에 마릴린 먼로 동상을 세운 것도 당시 군부대를 방문한 먼로를 기리기 위함이다.

 

먼로와 대구의 흥미로운 인연은 여기까지만 소개한다. 먼로의 이름만으로도 섹시한 제목의 이 책은 전경일 작가가 5년 동안 쓴 원고지 7천 매 분량의 장편소설이다.

 

이 책은 한국전쟁 당시 신인배우 마릴린 먼로를 세계적 대스타로 만들기 위해 종군기자 칼 마이어스가 기획한 기상천외한 발상에서 시작한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전 세계 젊은이들 머리 위로 그녀의 누드사진을 살포한다. 당시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괴한 마케팅이었지만 대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칼은 처음의 치기 어린 생각과 달리 한국의 전쟁터에 가서 전쟁의 참상을 보면서 인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로 인해 그는 '라이프' 지의 종군기자 하워드와 전쟁을 보는 인식 차이로 극심한 갈등을 빚게 되고, 1급 군사 작전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군 정보 당국에 끌려가는 위기에 빠진다. 이 위기를 피하고자 칼은 진눈깨비가 퍼붓는 야밤에 도주함으로써 결국 군당국 기록에는 공식적으론 사망한 것으로 처리된다. 그로부터 50년 후, 미국 뉴저지 옥수수 농장에서 생활하는 90세 노인 하워드에게 칼의 유해사진이 날아온다. 칼과 대립관계를 유지하던 주인공 하워드는 한국전쟁을 회고하게 되고, 급기야 유골 인수식에 참석하고자 한국으로 날아간다.

 

하지만 그때, 은밀히 접근한 AP 기자가 믿기 힘든 정보를 흘렸다. 칼이 중국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소식. 결국 하워드는 북경으로 날아가게 되고, 마침내 칼과 50년 만에 운명적으로 재회하게 된다. 칼 마이어스와 하워드의 전쟁을 회고하는 스펙터클한 대화가 이 책의 주된 메시지다.

 

마릴린 먼로를 등장시킨 것은 단순히 흥미를 유발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 속에 전쟁 속 인간, 이념적 갈등하의 인간, 인간 본연의 욕구인 사랑과 애증, 원망과 희구를 드러내는 인간 보편적 이야기를 역사의 포연 속에 담기 위함이다. 두 종군기자의 눈으로 진실을 파헤치다 보니, 그간 반공 이데올로기 하에서만 본 한국전쟁의 진실도 낱낱이 드러난다.

 

결국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진실, 화해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이 오늘날의 남북관계에도 훈풍을 바라는 마음과 닿아있다. 그는 정전 65주년 기념 벽두에 이 책을 내놓으며, "어쩌다 동족의 심장을 향해 총을 겨누게 된 우리는 어떻게 화해해야 할까요"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 책은 종군기자들이 느낀 진실을 향한 고뇌를 잘 엿보여주며, 그로 인해 극대화되는 갈등 국면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종군기자 간의 대화 중에 흥미로운 대사가 있다. "내게는 두 개 눈이 있소. 현상을 보는 눈과 진실을 보는 눈 말이오. 카메라의 눈과 육안 중 어느 것으로 볼 때, 진실을 더 잘 볼 수 있을까요? 카메라는 무엇을 담아내야 하죠?" 전경일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우리 한반도에 다시는 전화(戰火)가 있어서는 안 되며, 인간의 피로 물든 대지는 누구에게도 복되지 않다는 강력한 평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1권 491쪽, 2권 498쪽, 3권 494쪽. 각권 1만5천원.

 

권성훈 기자 cdrom@msnet.co.kr